* 이 글에는 영화 <엑시트>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영화 <엑시트> 포스터, 제작 외유내강,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엑시트> 포스터, 제작 외유내강, 출처 네이버영화 ⓒ 외유내강

 
"1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치킨을 시키느냐 배달하느냐? 이번 여름. 운명을 결정한다! 입시 엔드게임은 OO학원에서..."​

최근 한 건물에 이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고 있는 고소작업원을 보면서 영화 <엑시트>가 떠올랐다. <엑시트>에는 낯익은 생존 문법들이 등장한다. 취업에 실패한 사람에 대한 비웃음, 금수저와 흙수저, 이름은 부점장이지만 실상은 비정규직과 같은 현실,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오르는 싸움, 생존을 위한 턱걸이...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 에이스였던 용남(조정석)은 졸업 후 취업 실패를 거듭하며 가족들 눈치만 보는 신세가 됐다. 용남은 어머니 칠순 잔치를 하러 간 연회장에서 부지점장이 돼 있는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를 만나고, 이후 그들이 있는 빌딩 주변으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의문의 가스가 피어오른다. 두 사람은 과거 산악동호회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건물을 오르고 또 오르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속 구원은 옥상 꼭대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살아남으려면 올라가야한다. 그것도 웬만하면 평범한 건물보다는 더 높은 빌딩 위로, 남들보다 눈에 더 잘 띄는 곳으로 올라가야한다. 문이 잠겨있다면 창문을 깨고, 목숨을 걸고 몸을 던지고, 초인적 기교를 부려서라도 올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주인공이 건물 외벽을 잡고 등반하는 모습은 흡사 히어로물을 방불케 한다. 아슬아슬한 연출은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인적 노력으로 마침내 옥상에 이르는 순간, 주인공이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몸짓 뿐이다.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으며 고군분투했지만, 그들은 건너편의 고층 건물보다 낮은 건물의 옥상에 왔을 뿐이다. 이 장면에서 그들은 결국 히어로가 아니라 재난영화의 한 인물일 뿐이다.

쫓기고 쫓기고, 오르고 오른다. 오르고 오르는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생존은 일부에게만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노력과 고통의 크기는 구원의 속도와는 크게 상관없다. 생존은 원래부터 높은 곳에 있었던 자들에게는 친절하지만, 낮은 곳에 있던 자들에게는 초인적인 노력과 힘을 요구한다. 

달려야만 젊음일까? 탈출 후 내린 비가 의미하는 것
 
 영화 <엑시트> 장면

영화 <엑시트>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고생 끝에 탈출한 조정석과 윤아의 풋풋한 대화와 함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비로 인해 재난상황의 원인이었던 가스가 씻겨져 나가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주인공들이 그토록 갖은 노력을 했건만... 나오자마자 비가 내리자 허탈해 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주인공들은 영화 끝까지 가족과 취업, 불확실한 미래를 모두 떠안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달렸다. 저게 청춘의 모습이라고, 젊을 땐 다 저렇게 살아남는 거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탈출 후 내리는 비는 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의미하면서, 구조를 받기 위해 달리고 오를 수 없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필요 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픈 게 청춘이고, 젊음은 원래 달려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오르고 달려야만 젊음일까? 땀에 젖은 주인공들을 스쳐 지나갔던 무수한 헬기들처럼, 애초에 생존은 노력에 걸맞은 보상으로 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달리지 못하는 젊음에게도 탈출이 필요한 것이다.

"너 지금 네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냐? 우리 지금 재난 속에 있어. 지진, 쓰나미 그런 것만 재난이 아니라 우리 지금 상황이 재난 그 자체라고."

치킨집에서 재난 상황 문자를 받고, 자기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에게 친구가 말한다. 수년째 취업이 안 되는 지금이 재난 아니냐고.

주인공이 목숨을 거는 등반 시도로 재난상황에서도 목숨을 건졌기에, 다시 한번 목숨을 거는 노력으로 취업에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찬 유추를 하기 어렵다. 그의 노력은 재난 상황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취업에 쓸모 없다고 비난 받으며 이미 지속해오던 것이지, 상황이 만들어낸 능력이 아님으로.

그는 자신의 재능이 조금이나마 쓸모 있었던 재난 상황에서, 다시 자신의 재능이 쓸모 없는 재난 상황으로 돌아온 것이다. '1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는 문구가 학원가에 떡하니 붙어있는 사회,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라는 말이 급훈으로 붙어있는 사회, 대한민국.  

어쩌면 그가 정말 탈출해야 하는 곳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아있는 지금 여기 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허프포스트코리아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영화 엑시트 리뷰 청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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