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큐바니즘'

밴드 '큐바니즘' ⓒ 큐바니즘


지난 5월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는 전설적인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 중 현재까지 생존해 음악활동을 이어가는 유일한 보컬인 89세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메인무대에 섰다.

고령 때문에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이는 내한 공연에 아쉬워하는 관객들을 위해 오마라는 '베사메무초'를 앵콜곡으로 불렀다.

"Perderte despues. (그대를 잃을까 봐 두려워요.)
 Quiero tenerte muy cerca. (그대를 곁에 두고 싶어요.)"


저물어가는 카리브해의 클래식한 석양 같은 사운드는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또 다른 사운드로 붉게 타올랐다. 우리 곁에는 쿠바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처럼 아프로큐반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 '큐바니즘'이 있다.
 

아프로큐반(Afro-Cuban)은 쿠바가 스페인의 식민지이던 시기,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아프리카의 리듬과 스페인의 멜로디, 중남미의 토착문화를 섞어 만든 음악 장르다. 라틴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 '큐바니즘'을 만나기 위해 지난 21일 홍대입구역 근처의 한 합주 연습실을 찾았다.
 
 큐바니즘의 데뷔 싱글 앨범 < Huella Nueva > 커버 이미지

큐바니즘의 데뷔 싱글 앨범 < Huella Nueva > 커버 이미지 ⓒ ㈜이앤스토리뮤직

  
이것은 음악인가 열정인가

큐바니즘은 2015년에 데뷔 싱글 앨범을 발표하며 타이틀곡 'Vamos a Bailar'의 뜻(함께 춤추자)처럼 대중들이 몸을 흔들게 만들고 있다. 특히, 2016년에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에 참가해 우승하며 탄탄한 실력을 음악 팬들에게 알렸다. 관객 투표가 중요한 변수였던 경연이었기에 현장에서의 생동감 있는 무대가 없었다면 얻기 어려운 결과였다.

MBC <듀엣가요제>에서는 가수 린과 짝을 이뤄 참여해 1위를 차지하며 가창력을 입증했던 큐바니즘의 보컬 김민정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연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첫 번째 노래가 끝나고 아직 저희의 소개 멘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버리는 거예요. 오로지 큐바니즘의 음악만 듣고 쏟아지는 환호, 기대 이상의 반응에 감동받았어요."
 
 2016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에서 우승한 큐바니즘

2016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에서 우승한 큐바니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큐바니즘은 보컬 김민정, 드럼 한송이, 퍼커션 전유진, 키보드 김다희, 피아노 김은경, 기타 선란희, 베이스 재영 등 7인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멤버 모두가 실용음악을 전공한 이들은 지금까지 발표한 8곡 전부를 직접 작사, 작곡, 편곡하고 있는 완성형 그룹이다.

거기에 더해 뮤직비디오 촬영·편집과 앨범 커버 디자인까지 손수 해내는 재주꾼들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시민PD이기도 한 재영(베이스)이 영상을 담당하고, 선란희(기타)는 앨범 재킷을 디자인하며, 최근 발표한 '불타올라'를 작곡했던 김은경(피아노)은 다른 앨범에서 커버모델로 등장한다. 이들은 이렇게 기획사 없이 자체적으로 음반제작과 홍보, 공연을 스스로 하며 인디 뮤지션이라는 '극한 직업'을 수행한다.

지루함의 반대말, '큐바니즘'

처음에 큐바니즘 밴드를 기획했던 건 전유진(퍼커션)이었다. 쿠바음악에 매료되어 한송이(드럼)와 함께 머나먼 쿠바까지 여행을 다녀온 그는 낯설지만 신나고 재미난 라틴음악을 같이 할 아티스트들을 주변에서 추천 받아 '라틴뮤직 어벤저스'를 꾸려냈다.

큐바니즘 밴드나 아프로큐반이라는 장르는 아직 생소하지만 이들의 라이브 공연은 거대한 힘을 지닌 '인피니티 스톤'처럼 청중을 사로잡는다. 2018년 8월에 방영된 OBS TV <이것이 인생>은 큐바니즘의 활동 모습을 따라다니며 영상에 담았는데, 흥이란 것이 폭발하는 사운드에 관중들의 내적댄스가 어느새 밖으로 두둠칫 발현되는 현장을 보여준다.
 
 첫 싱글 발매 후 한국음악발전소 주최 '2015 무소속 프로젝트' 경연에 참가한 큐바니즘. 이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다.

첫 싱글 발매 후 한국음악발전소 주최 '2015 무소속 프로젝트' 경연에 참가한 큐바니즘. 이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다. ⓒ 큐바니즘

  
밴드의 리더인 김다희(키보드)는 "우리가 하는 아프로큐반 음악은 몸을 맡기면 재밌어지는 음악"이라고 '큐바니즘 사용법'을 알려줬다. "라틴음악이 대중적이지 않다보니까 저희도 처음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었어요. 하지만 막상 노래를 들으면 신나는 리듬이라서, 공연을 하면 라틴음악을 몰라도 자연스레 춤판이 벌어지고 반응이 좋더라구요."

큐바니즘은 실력을 갑옷처럼 두르고 저벅저벅 대중들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중이다. 2016년 전통연희페스티벌 폐막공연에서는 동해안별신굿과 라틴뮤직의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이며 음악실험을 수행했고, 전 세계 11개국 뮤지션이 참여한 2018년 ACC월드뮤직페스티벌 공연에서는 코리안 라틴뮤직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특히, 일반인들에게 어색할 수 있는 라틴음악을 친숙하게 풀어내기 위해 2017년 말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는데, 이를 계기로 MBC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크리스마스 특집에 초대되어 라이브 연주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암MBC에 통유리로 밖에서 다 보이는 넓은 스튜디오였는데 K-pop팬들이 지나가다가 우리가 유명한 연예인인 줄 알고 구경하며 사진 찍고 가시기도 했죠. (웃음)"

김다희는 그런 장면이 신기했다고 설명하였는데, 어쩌면 그 K-pop팬들이 미래의 대형 밴드가 될 팀을 안목 있게 알아봐 준 것일 수 있겠다.
 
 2017년 12월, MBC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크리스마스 특집에 출연 후 배철수 님과 큐바니즘 멤버들이 기념 사진을 남기고 있다

2017년 12월, MBC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크리스마스 특집에 출연 후 배철수 님과 큐바니즘 멤버들이 기념 사진을 남기고 있다 ⓒ 큐바니즘


밥 같은 위로 잘 주는 옆집 언니

큐바니즘은 요즘 여름 축제가 많아 전국 곳곳을 다니며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리고 공연 성수기가 끝나면, 준비하는 새 앨범을 올해 안에 내고 싶다고 전했다.

"지금 작업 중인 건 일상소곡집(가제)이에요. 저희가 지금까지 발표했던 곡이 거의 다 걸크러쉬, 쎈 언니 이미지였다면 이번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옆집 언니 느낌으로 다가가 보려고 해요. 가사도 소소하지만 누구나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요."(김다희)

큐바니즘이 추구하는 노래의 주제에 대해 보컬 김민정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사랑 노래는 너무 흔하잖아요."라고 말한다.

멤버들이 골고루 작사를 하고 있지만 특히, 올해 초에 <계간문예>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한 '드럼으로 시를 쓰는' 한송이가 있기도 해서 어떤 노랫말로 삶을 엮어낼지 기대가 된다.
 
 공연 연습 중인 큐바니즘 멤버들. 제일 왼쪽부터 김다희(키보드), 김민정(보컬), 전유진(퍼커션)

공연 연습 중인 큐바니즘 멤버들. 제일 왼쪽부터 김다희(키보드), 김민정(보컬), 전유진(퍼커션) ⓒ 김영동

 공연 연습 중인 큐바니즘 멤버들. 제일 왼쪽부터 한송이(드럼), 선란희(기타), 김은경(피아노),  재영(베이스)

공연 연습 중인 큐바니즘 멤버들. 제일 왼쪽부터 한송이(드럼), 선란희(기타), 김은경(피아노), 재영(베이스) ⓒ 김영동


끝으로, 큐바니즘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멤버들은 "큐바니즘의 이름으로 오래도록 음악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전유진은 "제 20대가 이 팀으로 꽉 차 있어요. 이 멤버로 계속 같이 나이 들고 늙어서 제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밴드활동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2018년 11월 가수 최백호의 콘서트에 초대받아 오프닝 무대에 섰던 큐바니즘이, 음악 속에 살아오며 이마에 오선지 같은 주름을 아름답게 새긴 최백호처럼 완숙한 뮤지션으로 롱런하길 응원해 본다.
큐바니즘 아프로큐반 라틴음악 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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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노래 만들고 글을 쓰고 지구를 살리는 중 입니다. 통영에서 나고 서울에서 허둥지둥하다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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