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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마지막 여름 방학, 의미 있는 활동을 하자고 다짐했다. 여행, 이벤트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인턴십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등학생 인턴을 채용하는 기관은 없었다. 나는 막무가내로 약 100개의 대사관, NGO, 기관 등에 내 이력서와 함께 인턴 채용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며칠 후, 모르는 전화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대전 유성구 갑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님이 인턴으로 채용하고 싶으니 지역사무실로 와 보라고 전화를 하신 거였다. 곧바로 유성의 사무실에 가서 면접을 봤고, 7월 1일부터 2주간 조승래 의원실에서의 인턴 생활이 시작됐다. 

실리콘 밸리처럼 자유로운 국회? 

드라마 <보좌관>을 보면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보좌관부터 인턴까지 세련된 정장을 입는다. 내가 처음 의원회관으로 출근한 날, 나를 반겨준 보좌관님은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이셨다. 오히려 넥타이까지 매고 온 나에게 조승래 의원실은 자유 복장이니 편하게 입고 오라고 말씀해주셨다.

국회는 하나의 직장이지만 300개의 고유 문화가 내부에서 공존하고 있다. 의원 개개인의 성격은 의원실의 규율로 직결된다. 다행히 조승래 의원님은 자유와 효율을 중시하셨고, 나도 이튿날부터는 셔츠만 입고 다녔다. 보좌관님이 편하게 입어도 된다고 거듭 강조하셨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턴이 티셔츠를 입는 건 부담스러웠다. 

미디어나 역사책에 등장하는 딱딱한 모습과 달리, 국회도 변화에 순응하고 있었다.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으로 국회에 출근하는 일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암묵적인 복장 규정은 의원에게도 해당해, 남성 의원은 여름에도 넥타이까지 매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 16년 전 '빽바지 사건'을 일으킨 유시민 작가는 나름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직장에서 반바지를 입는 등 편한 복장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가고 있지만, 국회에서 목격한 자유로운 분위기는 예상 밖이었다. 아직도 국회에서 보좌진이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떠올리면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든다. 

법안 발의부터 '패스트트랙 전쟁'의 현장까지
 
 교육위 법안소위에서 진행 중인 조승래 의원
 교육위 법안소위에서 진행 중인 조승래 의원
ⓒ 이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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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래 의원님의 배려 덕분에 짧은 인턴십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최근 조승래 의원님이 대표발의한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은 내가 회관을 돌아다니며 의원 날인을 받았다.

도움을 준 비서님이 다른 의원실에서 도장을 찍어주기 전에 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귀띔해주셨다. 긴장하며 회관을 돌아다녔지만, 다행히도 나에게 개정안에 관해 물어보는 의원실은 없었다.

개정안이 준비되자, 제출을 위하여 본청 의안과를 방문했다. 불과 몇 달 전, 패스트트랙 국회 폭력의 중심지였던 의안과는 뉴스에서 보던 장면과 달리 한산해서 낯선 느낌이 들었다. 비서님은 마치 전쟁터를 다시 방문한 참전용사처럼 이곳이 "국회 빠루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알려주셨다.  
  
반면 회의장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은 지루했다.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는 약간 졸기까지 했다. 나는 의원 간의 고성이 오가는 장면을 기대하며 갔지만, 고성은커녕 의원 간의 소통도 별로 없었다.

일단 의원의 절반이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중간에 나가버렸다. 개회 시간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회의 끝까지 남은 조승래 의원님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급기야 법안에 대해 설명하는 전문위원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기 시작했고, 그대로 잠들 뻔했다. 다행히 옆에서 비서관님이 계속 깨워주셨다. 의원님이 몰래 귤을 건네주시기도 했다. 두 분께 정말 죄송스러웠다. 

드라마 <보좌관>에서는 인턴 한도경(김동준 분)은 의원-보좌진 회의에 나중에야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조승래 의원실도 거의 매일 의원-보좌진 회의가 있었는데 첫날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의원님이 내게도 들어오라고 하셨다.

회의 중 이야기의 절반은 못 알아들었지만, 일단 다 받아적으며 열심히 공부하자고 다짐했다. 직장을 다녀본 경험은 없지만, 조승래 의원님 정도의 직장 상사라면 다닐 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 급식과 비슷한 국회 직원 식당
 
 국회 직원 식당 메뉴
 국회 직원 식당 메뉴
ⓒ 이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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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내에는 여러 식당이 있다. 의원실 보좌관들은 보통 회관 2층에 위치한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3600원짜리 식권을 구매하면 먹을 수 있는 직원식당의 메뉴는 맛있는 날의 학교 급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직원 식당에서 국회의원을 자주 볼 일은 없었다. '거물급' 다선 의원들은 대부분 의원식당을 이용하거나 식사 약속 때문에 직원 식당을 찾지 않는다. 그나마 초선 의원들이 종종 식당을 다녀간다. 
  
그러나 놀랍게도 심상정 의원님을 포함한 정의당 의원님들은 직원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 외에도 의원회관과 본청에서 심상정 의원님과 간간이 마주쳤는데, 아직도 사인을 못 받은 게 후회된다.

다만 당시에는 정개특위 위원장직과 관련하여 정당간의 기싸움이 팽팽했던 시기라 심상정 의원님의 얼굴은 항상 굳어 있었다. 도저히 말을 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 밥과 관련한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느 날은 퇴근 후, 서울의 친구들과 근처 김치찌개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옆자리에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이 (의원실 보좌진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보수정당 의원, 특히 70세를 넘은 다선 의원이 직장인들이 오는 식당에서 회식을 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권위적이지 않고, 직원들과 김치찌개를 나누며 소통하려는 의원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만 조금 쑥스러웠는지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라면 사리를 알맞게 끓이는데 더 몰두하시는 것 같았다.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 본청 앞에서
ⓒ 이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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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십을 끝내며

마지막 날, 조승래 의원님께서 직접 수료증을 주며 계속 연락하자고 말씀해주셨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이미지메이킹에 능하지만, 조승래 의원님은 향토적이고 선한 이미지가 실제 모습과 일치하는 분이셨다. 사실 의원실 입장에서 굳이 청소년 인턴을 채용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내 이메일에 직접 답을 주시고 바쁘신 와중에도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실제 정치 현장은 언론이나 <보좌관>에서 봐온 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세상 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정치도 뉴스를 통하여 보는 피상적인 모습보다 실제 참여하면서 더 많은 사실을 깨우칠 수 있었다. 관망이 아닌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준 2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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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은경의 그림책 편지'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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