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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화약고 인천 연평도에 '평화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상호 적대행위를 금지하면서부터다. 주민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상의 평온함은 과거보다 비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자체의 안보교육도 북한을 적으로만 규정하기보다 남북한 이질성을 극복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45년 만에 연평도 등대가 재 점등하면서 주민 조업이 기대된다.

전쟁과 평화의 상(相)이 공존하는 연평도는 현재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다녀온 연평도 이야기를 전한다.
 
연평도 주택가 담벼락에는 북한의 포격 실상 등을 알린 대규모 사진들이 붙여져 있다. 섬 전체가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된 셈이다.(사진=최종환 기자)
 연평도 주택가 담벼락에는 북한의 포격 실상 등을 알린 대규모 사진들이 붙여져 있다. 섬 전체가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된 셈이다.(사진=최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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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전체가 '안보교육장'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시간가량 이동하면 소연평도를 거쳐 대연평도에 닿는다. 2010년 북한의 기습 포격으로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곳이다. 지난달부터 8월 중순까지 어민들이 휴식기를 가지면서 마을은 대체로 한산했다.

연평도는 조용하지만 긴장이 흐르는 섬이다.

육지로 가는 관문인 당섬 선착장에서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해상 경계함이 사람들을 반긴다. 1·2차 연평해전 당시 북한군의 도발을 선제적으로 대응한 참수리호다. 북한의 고속정 견제가 주 임무였고, 평상시에는 불법어로와 밀입국, 간첩선을 감시했다.

마을 구석구석에는 북한의 도발에 맞서다 유명을 달리한 국군 장병의 넋을 기린 공간이 있다. 2차 연평해전(2002)에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과 6명의 국군 장병을 비롯해 연평도 포격(2010)으로 세상을 떠난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 흉상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주택가 담벼락도 안보 교육의 소중한 자원이다. 벽돌 사이사이 걸린 사진들은 포격 당시 불길에 휩싸인 마을 상황을 전한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차원으로 벌인 '반공교육'을 연상케 한다. 연평도를 찾은 한 관광객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분단의 아픔을 기렸다.

북한의 포격으로 파손된 주택가는 안보교육장으로 탈바꿈했다. 도발 2주기를 맞은 2012년 문을 연 이곳은 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 주민 안전을 고려해 천장 개·보수 작업이 한창이다. 피폭 현장 바로 옆에 자리한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안보교육관은 총 4개의 전시실과 시청각실 등을 갖춰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인천 옹진군 관계자는 "연평도는 안보교육장과 안보수련원 등을 통해 다채로운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며 "실제 포격 맞은 장소를 선보여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0년 북한의 포격으로 파손된 민간인 주택가. 피폭 현장 바로 옆에는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안보교육관이 들어섰다.(사진=최종환 기자)
 지난 2010년 북한의 포격으로 파손된 민간인 주택가. 피폭 현장 바로 옆에는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안보교육관이 들어섰다.(사진=최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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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사격 없으니 평화가 왔다"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2조 1항

최근 연평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이 결정적 계기였다. 2007년 이후 10년 만에 화해의 손을 내민 남북한은 상호 적대 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분단 70여 년 동안 쌓인 전쟁 공포도 점점 옅어졌다.

마을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대규모 포사격으로 쌓인 긴장은 온데간데 없었다. 선착장부터 북한 해주의 시멘트 공장이 보이는 망향 전망대까지 '일상의 평화'가 펼쳐졌다.

마을의 산증인이라고 자부한 김옥려(86, 옹진군 연평면) 할머니는 "(연평도 포격 당시) 예전에는 북한의 잦은 도발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라며 "최근 남북한 상황이 좋아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경로당에서 또래 할머니와 취미 생활을 즐기는 그다.

김영식(69, 옹진군 연평면)씨는 당시 연평도 포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포탄의 광음에 견디지 못한 차량 내 유리가 산산조각났고, 집기류도 대부분 파손됐다"라는 것.

그는 이어 "북한의 포격 이후 몇 개월간 긴장된 채로 살았다, 언제든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라며 "지난해 남북 정상이 적대 행위를 중단하면서 인근에서 포사격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과거처럼 전쟁 공포가 줄었지만, 북한의 대응을 좀 더 지켜보자는 목소리를 냈다.

연평도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주민 A씨는 "지난해 남북 정상이 손잡고 여러 선언을 한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라면서도 "하지만 연평도 포격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말을 다 믿을 수 없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인천 옹진군은 안보 교육을 강화하고자 지난해 3월 ‘연평평화안보수련원’을 열었다. 남북관계 개선에 힘입어 지난 5월 ‘연평안보수련원’에서 ‘연평평화안보수련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진은 수련원 내 여성용 숙박 공간이다. 남성은 ‘막사형’ 침상을 쓴다.(사진=최종환 기자)
 인천 옹진군은 안보 교육을 강화하고자 지난해 3월 ‘연평평화안보수련원’을 열었다. 남북관계 개선에 힘입어 지난 5월 ‘연평안보수련원’에서 ‘연평평화안보수련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진은 수련원 내 여성용 숙박 공간이다. 남성은 ‘막사형’ 침상을 쓴다.(사진=최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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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수련원'서 '평화안보수련원'으로 바뀌어

인천 옹진군은 마을 주민과 관광객의 안보 교육을 강화하고자 지난해 3월 '연평안보수련원'을 열었다. 수련원은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개관 첫해에는 1000명이 다녀갔다. 올 상반기는 600여 명이 찾을 정도로 연평도의 주요 안보교육시설이 됐다.

교육 프로그램은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센터 강사진이 주로 맡는다. 연평도 안보교육장과 연평부대 방문, 북방한계선 NLL 해상경계 확인 등으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걷기 체험 수요가 늘면서 '철책선 따라 평화 둘레길 걷기'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이용객은 대부분 학생과 공무원, 기업인, 시민단체 회원 등이다. 20명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 할 수 있다. 교육비는 식비와 숙박비를 포함해 1인 기준 '1박2일 4만1000원', '2박3일 7만2000원'이다.

눈에 띄는 점은 입교생의 편의를 극대화한 점이다. 복도 곳곳에는 상시 소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테이블과 소파 등이 있다. 잔디로 꾸며진 운동장에서는 체육대회와 단합 활동이 가능하다. 운영에 큰 지장이 없으면 평일에도 누구나 가볍게 운동을 할 수 있다.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도 있다. 최신 영상·음향기기가 완비돼 입교생의 교육 집중도를 높였다. 생활관은 군대 내무반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분위기다. 여자는 2층 침대를 사용하며, 남자는 관물대가 있는 '막사형' 침상을 쓴다. 대부분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 현대인의 식생활을 고려한 시설이다.

서은미 연평평화안보수련원 팀장은 "접경지대 현실과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연평도만의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입교생의 편의와 교육 여건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라고 소개했다.

최근 남북관계 개선은 이곳에도 영향을 줬다. 지난 5월 조례개정을 통해 '연평안보수련원'에서 '연평평화안보수련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수련원 이름에 '평화'라는 단어를 넣은 것. 안보 교육이 단순히 적대감을 고조시키기보다 평화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영됐다. 포탄의 흔적이 아직도 생생한 연평도에서는 가볍게 볼 수 없는 변화다.

교육도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을 이해하기보다 북한 주민의 생활상과 마음, 통일 등을 담았다. 분단을 이해하면서도 한반도 평화의 여정을 몸소 익힌다는 점이 강조됐다.

서 팀장은 "기존의 안보교육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군사적 측면에서 다뤄졌다"라며 "앞으로는 상대를 이해하고 적극적 안보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생계유지를 하기 위해선 평화가 중요하다, 분단의 아픔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연평도 등대가 지난 5월 45년 만에 불을 밝혔다. 그동안 남북한의 긴장고조로 소등과 점등을 반복해왔다. 주민들은 조업 활동에 기대감을 표했다. (사진=최종환 기자)
 연평도 등대가 지난 5월 45년 만에 불을 밝혔다. 그동안 남북한의 긴장고조로 소등과 점등을 반복해왔다. 주민들은 조업 활동에 기대감을 표했다. (사진=최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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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법 조업 어선 여전히 '활개'

군사적 긴장 해소는 어민들의 조업 활동에도 긍정적 신호다. 평화공원에 자리한 연평도 등대는 지난 5월, 45년 만에 불을 밝혔다.

연평도 등대는 어민들의 조업 활동을 돕고자 지난 1960년 3월 처음 점등했다. 하지만 남북한의 체제경쟁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간첩선의 주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1974년 7월 소등했다. 이어 1987년 4월에는 직원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등대는 유명무실해졌다.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연평도 등대는 지난 5월부터 다시 인근 해역을 비추는 '평화의 등불'이 되고 있다.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넘어가면서 본연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어민들은 야간 조업을 할 수 있게 돼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이선재 연평도 마을이장은 "남북관계 개선으로 마을 분위기도 좋아졌다"라며 "특히 등대 점등은 어민들의 조업 활동에 도움이 되고 있다, 생산량이 많아져 생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다만,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도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좀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꽃게 성어기인 4~6월에는 중국 어선 100여 척이 연평도 해역을 제 집처럼 드나들면서 어업활동은 물론 주민 안전을 위협했다.

이 이장은 "중국의 불법 어선은 우리(어민)가 대응할 수 없는 부분이다"라며 "해양경찰 등이 조처를 하지만 문제가 온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 16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허가받지 않고 조업한 외국 어선은 올해 6월 말 기준 하루 평균 42척이 달했다. 지난해 동기 26척 대비 62% 증가한 수치다.

활동 방식도 점차 고도화됐다. 중국 어선은 남북 접경해역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야간에 고속보트를 타고 조업하다 북한 해역으로 도주하는 등 새로운 유형을 띄고 있다. 해양경찰청은 올해 신형 장비·전술을 도입해 서해 NLL에서만 8척을 나포했다.

서해5도특별경비단 관계자는 "중국의 불법 어선에 대응하고자 경비단은 24시간 대응 체계 갖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라며 "상시 매복 작전을 벌이고 최첨단 진압 시설을 투입해 주민들의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톱데일리(http://www.topdaily.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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