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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청소년 카페 톡톡톡에서 미혼부 단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 대표 김지환(42)씨를 만났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부조리를 온몸으로 겪은 이만이 할 수 있는 행동처럼 보였다. 지환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4년 김지환씨는 딸과 함께 거리에 있었다 미혼부였던 김지환씨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어린이집도 갈 수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아기를 데리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지환씨는 위기를 겪었다.
▲ 2014년 김지환씨는 딸과 함께 거리에 있었다 미혼부였던 김지환씨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어린이집도 갈 수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아기를 데리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지환씨는 위기를 겪었다.
ⓒ 이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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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엄마가 떠났다... 출생신고를 못했다... 아기가 아팠다

2014년 봄, 37세의 김지환씨는 거리에 있었다. 그의 곁에는 칼바람을 막기 위해 꽁꽁 싸맨 유모차 속 아기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반듯한 글씨로 자신의 사연을 쓴 종이를 들고 구걸 아닌 구걸을 했다.

10년 전만 해도 지환씨는 많은 이들이 칭찬하는 모범적인 청년이었다. 20대의 그는 장학금을 두 개나 받으며 부모의 도움 없이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생활 내내 흔한 배낭여행 한 번 가지 않고 매 주말과 방학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사 장교로 7년간 복무하며 신임병 교육도 했다.

졸업 후 직장도 다니고 사업도 하며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을 무렵, 지환씨는 사랑이(가명) 엄마를 만났다. 그들 사이에 아기가 생겼지만 복잡한 개인 사정으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함께 살았다. 공교롭게도 그때 지환씨의 사업에 위기가 왔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 아기 엄마는 아기를 낳아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지환씨는 자신을 믿었다. 어떤 난관이 닥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정도는 책임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어여쁜 딸 사랑이(가명)가 태어났다. 그러나 깊은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던 아기 엄마는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의 곁을 떠나버렸다. 설상가상 아기가 아팠다. 폐에 물이 덜 빠져 당장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지환씨는 아내의 행방을 몰라 사랑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출생신고를 못 하면서 아기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고 결국 지환씨는 고금리의 대출을 받았다. 다행히 아기는 회복되었고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때 받은 대출을 여전히 갚아나가고 있지만 딸을 살려준 고마운 돈이기에 그는 비싼 대출이자가 야속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사랑이와 함께 남겨진 순간부터 지환씨의 소망은 단 하나였다. 아기에게 좋은 아빠가 되는 것. 그러나 그 소박한 소망을 지키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어떤 순간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는 지환씨의 '특별한 상황'을 인정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했다. 그는 졸지에 어린 생명과 함께 제도권 밖으로 떠밀렸다.

지환씨의 부모님은 믿었던 장남이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못하고 혼자 아기를 돌봐야 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사랑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를 맡아줄 어린이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아기를 데리고 구직활동을 했다.

그러나 아기를 데리고 출근해 일할 수 있는 직장은 없었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 유모차를 끌고 출근하면 고용주는 반나절도 못돼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라며 지환씨를 돌려보냈다. 창고정리, 지하철 택배, 안마시술소 등 허드렛일도 오래가지 못했다.

"힘들었지만 귀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만난 사람들이 다 너무 어렵게 살아가는 분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제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없는 형편에 가진 것을 쪼개어 저를 도와주셨어요. "

당시 지환씨는 '사람들이 남을 돕는 것은 자기 형편이 넉넉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경험은 그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다. 여전히 가난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단체를 통해 다른 미혼모, 미혼부, 한부모 가정을 돕고 있다.

한 줄기 빛 같은 질문 "정말로 아이를 기르고 싶습니까?"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현실은 아기의 생명을 번번이 위협했다. 지환씨는 그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의료보험이 안 되는 아기를 기르는 경제적 부담도 컸다. 때마다 맞추어야 하는 예방접종 비용도 큰 부담이 되었다. 신생아는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방치하면 위험했기에 병원 문턱을 자주 드나들어야 했다. 아기를 데리고 일할 수 없었던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고 대부업체의 돈도 빌렸다.

"2014년 1월 말이었어요. 날씨가 정말 추웠어요. 그때 겨우 구한 마지막 일자리마저 잃었어요. 아기 앞에서는 울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아기가 잠들면 울었어요. 아기가 눈뜨면 웃었죠. 미친 사람 같았어요. 하루는 아기의 분유통을 열어봤는데 분유가 딱 한 스푼 남아있더라고요. 한 끼 먹이려면 네 스푼 정도 필요했는데 말이죠. 남은 기저귀가 열 장도 안 되었어요."

지환씨는 불현듯 얼마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마트에서 분유를 훔치다가 적발된 가난한 아기 엄마의 이야기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처벌하지 말라는 여론과 함께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고 했다. 지환씨는 유모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마트로 향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뉴스에 나온 엄마와 아기는 '모자 관계'였지만 사랑이와 지환씨는 '법적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트에서 버린 택배 상자를 뜯어 글을 써 내려갔어요."
 
제 딸은 엄마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빠 혼자서 출생신고를 못 하게 합니다. 그래서 제 아이는 주민등록번호도, 의료보험도 없습니다. 2개월 전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자리마저 잃었습니다.
 
혹한의 겨울 거리에서 지환씨는 모르는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신기하게도 한 시간만 있으면 아기와 그가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이 모였다. 그러나 그것도 딱 세 번뿐이었다. 지환씨는 더 거리에 나설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따뜻한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보냈지만 일부는 지환씨를 향해 독설을 쏟아냈다.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그의 가슴에 박혔다. 그들의 말처럼 그는 '너무나도 못난 아비'였다.

지환씨는 죽기로 했다. 그러나 쉽게 결단할 수 없었다. '나는 당연히 죽어야 한다. 그런데 아기는? 아기는 어떻게 해야 하지?' 고심 끝에 마지막 끈을 잡는 심정으로 지환씨는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 공동체의 이종락 목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곳에 오는 아기들의 출생신고를 어떻게 하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그 한 통의 전화가 그와 아기의 목숨을 살렸다. 이종락 목사는 지환씨에게 직접 만나 얘기하자고 했다. 아기와 함께 찾아간 그에게 이 목사는 물었다.

"정말로 아기를 기르고 싶습니까?"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랑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에게 삶의 전부였다. 대답을 들은 이 목사는 아기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공할 테니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보자고 했다.

미혼부의 출생신고 과정이 어떻기에 그토록 어렵다는 걸까?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아기 엄마의 인적 사항이 꼭 필요해요. 인적 사항이라면 이름, 주민등록번호, 거주지 주소인데 미혼부가 이 세 가지 사항을 다 알기는 어려워요.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못 할 경우) 갓난아기가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걸어야 해요. '나'라는 사람이 생겼으니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성과 본을 만들어달라는 성본창설 소송과 나에게 법적으로 이어진 가족이 없으니 가족을 만들어달라는 가족관계창설 소송을요. 아기가 직접 소송을 할 수 없으니 법정 대리인을 아버지로 세워달라고 요청하는 과정도 거쳤어요."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축복이어야 할 아기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달라고 소송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될 만한 일이며 가능한 일인지 의아했다. 그러나 당시 법으로는 이 방법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미혼부, 미혼모, 한부모 가정을 응원하다
 

이종락 목사의 주사랑공동체와 만나 지환씨는 사랑이의 출생신고를 위한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기간 그는 틈틈이 자신과 아기의 사연을 적은 '그때 그 택배 박스 종이'를 들고 1인 시위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1인 시위 하는 아빠의 모습이 알려지면서 지환씨의 사연은 SBS 다큐멘터리 <궁금한 이야기 Y>에 방송됐다. 방송이 나간 후 소송 진행이 빨라졌고 사랑이는 오랜 기다림 끝에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

그 뒤 다른 미혼부들이 방송을 보고 지환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들을 물심양면 도왔고 자연스럽게 미혼부 단체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을 만들었다.

방송을 계기로 지환씨를 비롯한 여러 단체와 정치인들의 노력이 결실을 얻어 2015년 11월 18일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간소화한 '사랑이법'이 제정되었다. 지환씨는 지난 5월 열린 '2019년 가정의 달 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현재 여성가족부 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말 신기해요. 흠집투성이 인간인 제가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사실이요. 저는 꼭 미혼부들만 돕지 않아요. 미혼모, 사별한 분, 혼자 아이 기르는 사람 모두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잖아요.

사랑이가 4살 때 어떤 행사에서 딸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보내주었어요. 그때 첫 여행이었는데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거예요. 물론 크고 나면 기억나지 않겠지만 그때의 기쁨은 남을 거잖아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곳에서 강연하고 얻은 적은 수익금을 제가 갖지 않고 다른 미혼 부모 가족을 위해 쓰고 있어요. 몇몇 가정과 함께 짧은 여행도 다녀왔어요.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노는 동안 부모들은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가졌어요. 얼마 전에도 미혼모, 미혼부 등 네 가정이 함께 을왕리 리조트에 가서 하루 묵으며 워터파크에서 놀고 조개구이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김지환씨는 미혼부 단체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미혼모·미혼부 네 가정이 함께 을왕리 리조트에 가서 하루 묵으며 워터파크에서 놀고 조개구이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미혼부모가 안심하고 아이를 기르며, 학업도 마치고 직장도 구하고 자립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김지환씨의 꿈이다.
▲ 김지환씨는 미혼부 단체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미혼모·미혼부 네 가정이 함께 을왕리 리조트에 가서 하루 묵으며 워터파크에서 놀고 조개구이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미혼부모가 안심하고 아이를 기르며, 학업도 마치고 직장도 구하고 자립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김지환씨의 꿈이다.
ⓒ 이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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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씨는 미혼부, 미혼모, 한부모 가정의 부모들이 학업을 계속하거나 직장을 구해 자립할 수 있는 안전한 터전을 꿈꾼다고 했다.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우울감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정서적으로 방치될 수 있음을 그는 보아왔다. 그가 만난 미혼부들도 아이들과 대화하고 교육하는 일에 서툴렀다.

이에 지환씨는 공동체로 함께 하면서 부모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도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심리 상태도 점검하고, 청소년 미혼부모들은 검정고시도 준비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했다. 한부모 가정의 부모들이 서로 돕고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라면 아빠, 엄마 없는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고, 언니 오빠 누나들 모습 보면서 청소년기의 위기가 예방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미혼부 김지환씨의 꿈이다. 

"미혼모, 미혼부는 냉정하지도 못하고 독하지도 않아요. 도와달라고 하지못해 미혼모가 되고 미혼부가 돼요. 그러니 우리가 찾아가서 도와야 해요. LH공사에서 하는 주택 지원 제도같은 것들을 당사자는 물론 공무원들도 몰라요. 서류절차가 복잡해서 잘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미혼부 아기의 출생신고를 간소화한 '사랑이법' 만들어졌지만
 

'사랑이법'은 미혼부도 DNA 검사를 거치면 미혼모처럼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한 법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미혼부들이 출생신고를 하는 건 여전히 힘들어요. 어렵게 만든 '사랑이법'을 모르는 공무원들이 많기 때문이죠. 전후설명 없이 안 된다고 말해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 과정에서 일부는 양육을 포기하기도 해요. '사랑이법' 때문에 미혼모에게도 DNA 검사를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기도 했어요." 

아무 문제 없이 통과되면 2~3개월 만에 아기의 출생신고를 마칠 수 있다. 그러나 짧게 끝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출생신고 신청을 한 뒤 아빠는 DNA 검사를 할 수 있다. 이후 아기 엄마를 찾지 못한다는 진술서를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미혼부들이 판사를 설득할 수 있는 문장력을 가진 경우는 드물다. 결국 비용을 들여 변호사를 고용해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진술서의 내용이 미비하니 고쳐 쓰라는 보정 명령이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보정 명령이 내려올 때마다 재판은 한 달 이상 뒤로 미뤄진다. 보정을 제대로 못 하면 재판부는 신청 자체를 기각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많은 미혼부가 양육을 포기하고 만다.

"사랑이법을 만들어 절차를 간소화했으니 대단한 일을 한 것 같겠지만, 아기 입장에서는 내 잘못도 아닌데 기본권을 누릴 수 없는 거잖아요?"

지환씨는 아기도 인격체인데 엄마, 아빠의 사연과 행정 절차 때문에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를 법과 제도의 초점이 아기가 아닌 엄마 아빠에게 가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미혼모 미혼부 문제를 '아기의 생명'이 아닌 '부모의 잘못'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혼모/부 문제의 초점은 아기의 생명

지환씨는 우리나라 행정이 '사람'이 아닌 '문서와 형식,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것을 또다른 경험으로 실감했다.

방송이 나가고 얼마 후 해남에 사는 미혼부가 지환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 아빠는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광주까지 와야 했는데, 겨우 찾아간 광주 구청에서 '안 된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구청 직원의 냉대가 무안하고 무서워 두 번 사정할 수도 없었다는 그를 지환씨는 서울로 불렀다. 사랑이 출생 신고할 때 많은 편의를 봐준 구청 직원의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다시 찾아간 구청에는 지환씨를 도와준 직원이 없었다. 편의를 봐준 일 때문에 징계를 당했다는 것이다.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 한국의 21세기 행정력에,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유능한 공무원들이 그렇게 많은데 '중복 출생신고가 걱정되고 가족 관계법의 근간을 흔든다'며 아기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지환씨는 우리나라 행정력이면 중복 출생신고 정도는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상태로 아기를 방치하며 두 달, 석 달, 1년, 2년을 보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신생아는 아주 작은 문제만 발생해도 금방 생명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존재인데, 엄마 아빠의 잘못이 있다면 아기의 출생신고를 마친 뒤 따져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어른들이 아기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두 번 세 번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미혼부와 미혼모의 차이에 관해 물었다.

"똑같아요. 미혼모들이 듣는 비난을 미혼부도 똑같이 들어요. 흔히 군대 2년과 육아를 비교하잖아요. 저는 7년 군 생활을 했지만 군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기 기르는 것은 정말 육체적으로 힘들어요. 다른 게 있다면 미혼부가 육체적으로 유리하다는 거예요."

인터뷰 내내 그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딸을 향한 그의 넘치는 사랑이 같은 처지의 모든 아기에게까지 뻗어 나갔다. '사랑할 수 있음'에 대한 충만한 감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의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기획 / 나는 미혼부모입니다] 
① 아이 존재 아는 유일한 남자의 냉담... 그녀는 결심했다 http://omn.kr/1j9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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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공교육, 청소년 독서, 대안 학교, 미혼모 문제,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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