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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복직을 촉구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문대균 지부장이 17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단식농성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복직을 촉구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문대균 지부장이 17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단식농성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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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운 이유는 하나였어요. 무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문대균. 그를 처음 본 건 몇 달 전 집회 현장에서였다.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많은 집회가 그렇듯 이날의 집회도 트럭을 개조한 가설무대를 꾸려 진행됐다. 그는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화려한 오페라 곡을 부르기에는 아무래도 조금은 작은 무대에 올라 개의치 않고 웅장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집회 현장 근처를 지나가던 시민들마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게 만들었다. 

그는 2009년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테너였다. 노래가 끝나자 자신이 국립오페라합창단에서 해고됐으며 10년째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40명의 합창단 단원들 중에 고작 2명이 남아 투쟁하고 있다고도 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며칠 전 그의 소식이 다시 귀에 들렸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복직을 요구하면서 지난 15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무기한 단식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읽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성악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노래를 걸고 다시는 노래를 못하게 되더라도 부당하게 해고된 것을 인정받고 복직할 때까지 투쟁하겠다."

성악을 하는 사람들은 몸이 곧 악기이기 때문에 체력 관리가 필수적이다. 10년 동안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고자 싸웠던 그는 왜 하필 단식을 선택했을까.

"쓰러지는 건 문제 아니지만... 노래를 못하게 될 수도"
 
▲ 단식농성 돌입한 문대균씨 “우리나라는 예술가 등골 빼먹는데 세계 1위인 것 같다”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복직을 촉구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문대균 지부장이 17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단식농성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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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그가 단식 중인 문체부 서울사무소를 찾았다. 그는 문체부 직원들이 드나드는 서울사무소 3층 회의실 문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인기척이 나자 이마에 손을 짚고 누워있던 그가 몸을 세워 앉았다.

바로 옆에 그와 함께 투쟁 중인 국립오페라합창단 해고자 이윤아씨도 있었다. 이윤아씨는 기자에게 10년 전에 만든 게 분명한 국립오페라합창단 소프라노 명함을 내밀었다.

- 단식을 하면 노래를 부르는데 지장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
"단식이 성대에 영향을 미치는 게 걱정이긴 하다. 성악하는 사람들이 제일 염려하는 병 중의 하나가 역류성 식도염이다. 아시다시피 위산이 올라와 성대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아무 것도 안 먹다 보니 위에 위산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대는 다치면 회복이 안 되니 그게 제일 걱정이다. 사정을 아시는 분들은 단식을 말리셨다. 쓰러지는 게 문제가 아니고 노래를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절박하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지난 2002년 독자적인 오페라 공연 인프라 구축을 위해 창단됐다. 언론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연간 60회에서 80회의 공연을 이어갔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같은 굵직한 국가 행사에도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중 2008년 이명박 정권 당시 합창단이 갑작스럽게 해체되면서 집단해고됐다. 해고자들은 8년 동안 잘 운영되던 합창단이 해체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재창단과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에 들어갔다. 해체 이유 중에는 8년 동안 '국립'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한 국립오페라합창단이 '불법적 단체'라는 것도 있었다. 이윤아씨는 "모멸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단원 40명 중 32명이 남았다.

2009년 당시 유인촌 장관의 문체부는 3년 안에 오페라합창단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그전까지 투쟁하던 32명의 단원들에게 국립합창단 산하에 나라오페라합창단을 임시로 만들어 이곳으로 복직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3년이 지난 2011년, 나라오페라합창단을 1년간만 한시적으로 더 지원한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동시에 단원들에게 이의 제기하지 않고, 단체 행동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며 확약서를 내밀었다. 확약서에 서명하지 않은 단원들은 계약에서 제외됐다. 13명의 단원들은 다시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투쟁이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복직을 포기했다. 문체부는 2013년이 되자 남아서 투쟁 중이었던 4명의 단원들에게 국립오페라합창단의 재창단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며 국립합창단 단원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했다. 우선 계약직인 준단원으로 채용하고 2014년에 상임단원으로 채용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이 약속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비교적 국립오페라합창단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던 유진룡 장관이 2014년 7월 면직되면서 이 약속은 없던 일이 됐다. 4명의 단원들은 다시 해고됐다.

"두 번이나 당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복직을 촉구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문대균 지부장이 17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단식농성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복직을 촉구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문대균 지부장이 17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단식농성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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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는 사이 단원은 2명으로 줄어들었다. 38명의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2019년 7월 문체부는 이들 문대균씨와 이윤아씨에게 사무직 1년 계약직 채용안을 제시했다.

- 채용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단식을 선택했다.
"정말 다 포기했다. 다 내려놨다. 사무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안까지 오케이했다. 노래를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러면 사무직으로 뽑되 합창 업무를 맡게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런데 1년 계약직 채용안을 내밀더라. 서류를 보니 1년 후 평가해서 재고용하겠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10년 동안 문체부에 두 번이나 뒤통수를 맞았다. 더는 믿을 수가 없다. 말로만 계속 믿어달라고 한다. 말로만 믿었다가 두 번이나 당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자기 작품에 대해서는 고집이 세다. 그런데 나머지에 대해서는 바보 같다. 사기도 잘 당하고. 예술인이 아니었다면 두 번이나 당하지 않았을 것 같다. '공무원들이 그렇게 해주신다는데'라면서 당연히 믿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믿고 해야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모른다. 아름답게 살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믿고 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더라. 문체부에서는 (채용안을 제시하면서) 우리더러 설마 1년 뒤에 또 잘라서 전과 같은 결과를 만들겠냐고 하더라. '설마'가 무섭다는 거다. 몇 번을 당해봤기 때문에 그 '설마'가 무섭다."

- 법적인 해결책을 고려해본 적은 없나.
"국립오페라합창단이 해체되자마자 지노위에 제소를 했는데, 거기서 그러더라. 이기게 해줘도 돌아갈 직장이 없으니 이기게 해줄 필요가 없지 않냐고. 본인들이 판단할 게 아니지 않나? 잘잘못만 판단해주면 되는데, 해체가 됐으니 돌아갈 직장이 없지 않냐는 말을 했다. 그리고 중노위에 다시 제소를 했는데, 제소를 취소하는 조건으로 나라오페라합창단에 들어갔다. 그게 아쉽다. 끝까지 갔어야 했는데, 법적인 게 거기서 마무리가 돼버렸다."

한 번 투쟁의 동력이 꺾이자 다시 싸우기가 쉽지 않았다. 이들은 과거 국립오페라합창단이 해체됐을 때 자신들을 지지해줬던 노동자들과 '역연대'하면서 자신들의 투쟁 상황을 알렸다. 이들이 택한 연대 투쟁 방식은 '노래'였다.

"동지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지 않나. 성악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노래로 연대를 하자고 했다. 10년 이상 싸우고 있는데, 많은 현장들이 있었다. 한진중공업, 쌍차, 용산, 재능... 그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투쟁에 노래로 연대했다는 것에 크나큰 자부심이 있다. 쌍차 해고자들이 복직했을 때도 너무 좋았다. 그분들이 여러분도 빨리 돌아가셔야 하지 않느냐고 껴안아 주셨을 때 감동했다." 

-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과 집회에서 노래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거리에서 동지를 만나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값지고 귀중한 경험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성악가의 본질이다. 오페라가 너무 좋았다. 외국에서 온 유명한 성악가들이나 연출가, 지휘자와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었을 때,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무대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도종환 전 장관에 배신감 느꼈다"
 
"싸운 이유는 하나였어요. 무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싸운 이유는 하나였어요. 무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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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체부 장관이 몇 달 전 바뀌었다.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나.
"도종환 전 장관이 문체부 장관으로 있었을 때 해결될 줄 알았다. 2012년도에 문재인 캠프 선거 유세에서 노래를 불러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KTX를 타고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이렇게 도시마다 다니면서 집중유세장에서 공연을 했다. 저희는 다 걸고 도와드린 것이었다. 염려스러웠던 게 당시 박근혜 후보랑 표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한 쪽 편을 들어줬다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완전 찍히는 거다. 그래도 문재인 쪽이 좀 더 정의롭고 맞는 것 같다고 판단해서 공연을 했다. 결국 우리는 박근혜 정부에 '옴팡'(죄다) 찍히고 임기 내내 거의 사태가 진척되지 않았다."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3년이 흘렀는데.
"이번에 대통령이 되셨을 때 저희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도종환 장관님 본인은 노력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정말 실망했다. 도종환 장관님도 예술인이지 않나. 그리고 해고도 당하셨기 때문에 해고자의 아픔을 아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아무 것도 안 해줄 수 있을까. 배신감이 어마어마했다.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단원들도 모두 그랬다.

한 가지 고무되는 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에 만났던 공무원들 같지는 않다는 거다. 그때는 저희를 무슨 벌레 보듯 봤거든. '우리나라에서 예술하는 사람들 다 부자 아니냐'면서 '어디 가서 다른 거 하면서 살면 되지 않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물론 예술하는 사람들 중에 부자도 있겠지만 정말 어렵게 예술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랬다. 비싼 성악가에게 레슨을 못 받아서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은사님에게 배웠다. 우리는 악기가 '이거' 아닌가. (문대균씨는 그 말을 하면서 배를 두드렸다)"

그는 복직을 위한 단식 중에도 한국의 오페라 공연 현실을 개탄했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오페라 합창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페라합창단은 지금 내가 당장 만들 수 있다. 단원은 한 명도 없고 총무만 한 명 두고, 총무 핸드폰에 성악 전공한 애들이 쭉 있는 것이다. 국립오페라단과 공연 계약을 하면 이들에게 며칠에 공연을 하고 몇 번 연습이 있고 몇 명이 필요하다고 문자를 돌린다. 그러면 가능한 애들이 답변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하고 (공연) 회당 약 15만 원 정도 가져간다. 4번 공연하면 60만 원이지 않나? 연습비용이나 식대, 차비도 따로 없다. 한 달 반 이상을 연습하고 공연 올려서 60만원 가져간다고 하면 이해하시겠나? 이 나라는 예술가 등골을 빼먹고 있다. 거기 가보면 나이든 사람들은 거의 없다. 성악과 졸업하고 당장 일거리가 없으니 그런 걸 한다. 그걸 (국가가) 이용해먹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오페라 공연의 질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전속 단원들이 있으면 이전에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으니까 몇 번 연습하고 바로 투입이 가능하다. 좋은 시스템을 다 버려두고 오페라단을 이렇게 운영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에 예술인이 한 명도 없다. 다 사무실 직원이다. 정말 안타깝다. 외국처럼 정말 유명한 오페라합창단, 그런 거 한국은 하나쯤 가지면 안 되나?"

문대균씨는 2007년 국립오페라합창단에 입단해 2년 정도 공연을 하고 10년을 싸웠다. 그 과정에서 마흔이 넘었다.

"노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노래를 포기하겠나? 10년이 넘도록 싸웠던 이유는 하나였다.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

태그:#국립오페라합창단, #문대균_인터뷰, #국립오페라합창단_해고자,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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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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