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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 강가의 개성 있는 건물
 마스 강가의 개성 있는 건물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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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하면 우선 부드러운 유음이 입안에서 맴돈다. 초성에 'ㄹ'이 두 개나 있고 더구나 받침이 없는 세 글자가 물 흐르듯 흐르다가 마지막에 '담' 하고 맺는다. 흘러가기만 하는 것보다 종성에서 입술소리 'ㅁ'으로 끝을 맺으니 야무진 느낌이 든다.

물론 내가 이런 음운 때문에 로테르담을 방문하겠다는 건 아니다. 음운 때문이라면 세상에 물 흐르듯 부드러운 이름의 도시들도 많다. 리마, 나이로비, 카이로, 서울, 세비야, 포르투, 치앙라이, 히로시마.

그렇다면 왜 로테르담인가? 로테르담은 유럽 중에서도 색다른 유럽이기 때문이며 현대적 의미의 서사가 공간적으로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로테르담은 라인강과 연결돼 있다. 17세기까지는 레이덴이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지만, 18세기 이후부터는 로테르담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특히 19세기에 북해와 라인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완공한 후부터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라인강을 통해 독일 루르 공업지대와 연결되고 그밖에 뫼즈강, 스켈트강과 연결된 삼각주를 끼고 있어 물류의 최적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이점 때문에 로테르담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최고의 항구가 되고 나아가 유럽의 관문으로까지 불리며 유럽 최대의 항구가 됐다.

인류 역사 최대 재앙이랄 수 있는 2차 세계대전은 서구지성사에 깊은 상처를 드리웠다. 철학자들은 발달한 기술문명이 인간의 파괴에 가공할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유럽의 도시들은 영국의 코번트리, 독일의 드레스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다. 모두 폭격으로 인해 잿더미가 됐다. 코번트리와 드레스덴은 전쟁 당사국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로테르담은 왜 그렇게 폭격을 당했을까.

조금만 더 일찍 서명했더라면...
 
 1895년 화가 제임스 베두테가 그린 로테르담
 1895년 화가 제임스 베두테가 그린 로테르담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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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해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네덜란드는 2차 대전을 앞두고 고조되는 전쟁 분위기 속에서도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 이 말은 곧 군비 태세를 갖추지 않았다는 의미다. 프랑스는 전쟁에 대비해 철통같은 마지노 방어선(Maginot Line)을 구축했고, 처칠은 독일과의 전쟁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중이었다.

동부 유럽을 정리한 히틀러는 마침내 숙적 프랑스, 영국과 한판 뜨기로 결심했다.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해선 마지노선을 우회해야 하고 영국 해안을 침공하기 위해선 가까운 항구를 확보해야 했다. 이런 이유에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네덜란드다. 중립국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수중에 넣어라. 히틀러의 본격적인 전쟁 시나리오는 이렇게 시작됐다.

1940년 5월 9일, 독일군 지휘부가 수령한 전문에는 '단치히(Danzig)'라고 적혀 있었다. 서유럽 공격을 승인하는 암호다. 독일은 네덜란드의 군사력을 볼 때 쉽게 물리칠 것으로 생각했다. 독일군 사령관 폰 스포네크는 네덜란드 여왕과 항복 조인식을 체결할 때 입을 군복정장까지 챙겨왔다.

네덜란드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뒤늦게 군대를 소집했지만, 백년 동안의 평화에 취해 군사적 대비는 형편없었다. 신형 탱크는 한 대도 없이 캐터필러가 측면 전체를 감싼 구형 탱크 35대만 달랑 있었고, 비행기(전투기가 아니다) 135대와 28만 명의 병력이 국토 전역에 산개해 있을 뿐이었다. 반면 독일은 159대의 신형 탱크와 1200대의 신형 전투기, 그리고 병력 15만으로 네덜란드 돌파를 준비했다.

네덜란드는 만약 독일군이 진격해오면 전가의 보도인 제방을 터트려 '워터라인'을 형성한 후 일년 전 첨단(?) 자전거로 새롭게 창설된 자전거부대가 활약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쪽은 탱크를 앞세워 진격을 준비하는데 자전거부대라니? 쉽게 무너질 것 같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네덜란드의 저항이 의외로 거셌던 것이다.

독일은 하루 이틀이면, 아니 위협만으로도 항복을 받아낼 것으로 기대했는데 네덜란드의 거센 저항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육군 주력부대의 거점 확보 정도로 계획했던 네덜란드 점령이 생각보다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낙하산 부대가 몇몇 전략 요충지를 점거하긴 했지만 네덜란드는 항복의 기미가 없었다.

기동전으로 프랑스의 허를 찌른다는 진격 작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여긴 나치 지도부는 전격적인 공습을 결정한다.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항복을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흔히 말하는 '시범 케이스'로 로테르담이 걸렸다. 로테르담이 네덜란드 산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독일 공군 폭격으로 폐허가 된 로테르담. 1940년
 독일 공군 폭격으로 폐허가 된 로테르담. 1940년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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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독일은 네덜란드 정부에 다음날 오후 3시까지 항복을 하지 않으면 도시 하나를 융단 폭격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아무런 답이 없자 다음날 독일 공군비행대는 출격했다. 수백 대의 폭격기가 하늘을 뒤덮고 날아갔다. 오후 3시 정각, 로테르담 상공에 떠있던 폭격기에서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시는 화염에 휩싸이고 지상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실 네덜란드 정부는 그전에 항복문서에 서명을 했다. 다만 그 시간이 6분 전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당시의 통신체계로 볼 때 6분이라는 시간은 일선 편대 지휘관에게 메시지가 도달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일부 편대는 무선통신을 듣고 되돌아갔다).

도시가 화염에 휩싸이고 대공포가 어지럽게 쏘아대는 가운데 폭격 중지 신호인 붉은 연막탄이 화염과 연기 속에서 가느다랗게 솟아올랐다. 편대 지휘관은 무전기로 '폭격 중지!'를 외쳤지만 이미 폭격을 시작한 편대를 제어하진 못했다. 장착된 폭격 물량을 다 소진하고서야 편대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폐허에서 시작된 새로운 역사   
 
 로테르담 중앙역
 로테르담 중앙역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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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로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했다. 역사 내부는 도시 규모에 비례하듯 레이덴 역보다 훨씬 컸다. 특이한 것은 실내 공간(void)가 휑하니 뚫려 있어 시원스런 개방감이 든 가운데, 한편으론 시선이 하나로 모여들도록 위쪽 공간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어수선해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엄청나게 큰 삼각형의 밑변에 내가 서있는 느낌이다. 기하학적 공간이 실재의 감각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기하학적인 단순함을 추구하는 현대건축의 선과 면은 대개 건물의 바깥에서 볼 때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다. 공간 내부에서는 형태보다는 기능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테르담 중앙역에서는 내부에서 바깥을 보는 순간 내가 기하학적 공간에 서 있다는 느낌이 금방 다가왔다. 세상 어느 역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범상치 않은 이 느낌도 곧 현실의 매정함 앞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안내센터에서 지도를 달라니까. 1유로란다. 이번만큼은 졌다. 순순히 1유로를 내고 지도를 받았다. 다른 도시에서 같으면 공짜라고 아무렇게나 구겨 쥐는데 1유로짜리 지도는 곱게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돈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기는 지도 한 장이라고 다를 바 없다.

역사 밖으로 나와 되돌아보니 로테르담 중앙역의 빼어난 자태가 더욱 드러났다. 파란 하늘을 찌를 듯이 사선으로 비껴 있는 예각의 지붕선이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기차역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2차 대전 전만 하더라도 로테르담에는 중앙역이 없이 네 개의 역이 각 방면에 분산돼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재건을 하면서 시 당국은 허브 역할을 하는 중앙역을 지었다(1957년). 그 후 로테르담의 인구가 늘고 물류도 증가하면서 새 역사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몇 번 증축하는 과정을 겪다가 수요에 맞춰 새롭게 플랫폼을 만들자는 의견에 따라 2014년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시선을 시내 쪽으로 향하자 이번에는 새로운 느낌이 시야에 확 펼쳐졌다. 어찌 보면 우리가 흔히 보아온 장면이기도 한데, 그동안 유럽 특유의 고집스런 도시 경관들을 보다가 현대식 건물들의 매끄러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로테르담은 네덜란드 도시의 전형인 운하도 없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도 없었다. 마치 여의도 상업지구 한복판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인 윤곽일 뿐이고 건물들의 디테일은 판이하게 달랐다. 각자의 건물들의 개성이 뚜렷했다.

로테르담의 시선은 미래로 향했다
 
 변형된 창과 굴곡진 면으로 생동감을 주고 있다.
 변형된 창과 굴곡진 면으로 생동감을 주고 있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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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있는 건물들을 눈에 담으며 로테르담의 거리를 걷는 건 색다른 즐거움이다. 가지런히 진열된 상품보다 포개진 더미 속에서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재미랄까. 저 건물은 선을 비틀었고, 이 건물은 면을 강조했다.

폐허에서 일어선 도시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과거의 원형을 복구하면서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바르샤바는 전자의 길을 갔고, 로테르담은 후자의 길을 택했다. 바르샤바는 전쟁 전의 사진을 대조해가면 옛 건물들을 복원했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와 뿌리를 되살려 자존감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다.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수도이고 민족정체성 회복 차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행위다.

반면에 로테르담의 시선은 미래로 향했다. 현대적 교통체계에 방해만 되는 운하를 메우고 널찍한 간선도로를 기획했다. 더불어 도시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기능만을 내세우진 않았다. 역동성과 진취성을 모토로 삼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실험적 건축이 꽃을 피웠다. 실험성·전위성·예술성이 도시의 정체성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회가 있었다. 전쟁 후 서울 도심 재건이야 워낙 자본도 기술도 없을 때여서 우선 당장 필요한 건물을 짓기에 급급했다 하더라도, 1970~1980년대 고속성장기의 강남 개발은 아쉬움이 남는다. 도화지처럼 펼쳐진 기회의 땅에 건축가의 상상력을 펼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가성비 좋은 건물만 지었다. 설계는 없고 도면만 있는 건물, 획일적이고 무관심한 건축, 건축은 없고 건설만 있는 곳이 강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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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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