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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랑 징용 피해자 문제에 사과도 안 하는데 일본사 왜 배워요? 일본사 배우지 말아요!"

두 달 전 쯤 역사 시간에 일본 고대사를 처음 시작할 때였다. 공부할 내용이 늘어난다고 불평하며 아이들이 한 말이다.

"그럴수록 일본사를 배워야지. 게다가 난 일본에게 사과 받는 방법을 알고 있어."
"진짜요? 뭔데요?"


일본사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꺼낸 말이지만 그렇다고 거짓말도 아니다. 필자는 일본에게 사과 받는 방법을, 정확하게 말하면, 사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정권 교체이다.

사과하는 독일, 뻔뻔한 일본

과거사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일본과 비교되는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자신들의 전쟁 범죄를 반성하고 교과서에도 실어서 교육하고 있으며 거듭거듭 사과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뻔뻔스럽게도 자신들의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독일은 착한 사람들이 사는 국가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국제 관계에서는 착한 나라도 사악한 나라도 없다. 어느 나라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렇다면 독일과 일본은 왜 다른 것일까?

정답은 정권 교체에 있었다. 히틀러가 사망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독일에서는 콘라트 아데나워를 총리로 내세운 기독교민주연합(CDU)이 정권을 잡았다. 총리가 된 아데나워는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모든 공식적 지위를 잃었고, 1944년에는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기까지 됐던 인물이다.

기독교민주연합은 가톨릭과 신교가 손을 잡고 만든 정당으로 나치 독재시절 저항운동에 가담한 죄로 수감되었던 이들이 많았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히틀러나 그 잔당들이 아닌 히틀러에게 박해를 받던 이들이 정권을 잡았다.

여기에 독일이 전쟁 범죄를 사죄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무릎 꿇고 통렬하게 사죄를 하더라도 그 사람은 독일이 저지른 전쟁 범죄의 당사자가 아니다. 지금 독일의 지도자 자리에 있기에 독일을 대표하여 사과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그들은 나치에 저항하다 투옥까지 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사과하는 독일의 지도자들도 자신이나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기에 부담 없이 진심으로 사죄할 수 있다. 자신들은 현재 독일을 대표하는 사람이기에 사죄하는 것일 뿐 모든 잘못은 이미 독일에서 제거된 히틀러와 그 잔당들이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전범의 후손들이 정권을 잡은 일본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전쟁 후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쿄 재판(극동 국제 군사 재판)을 통해 일본의 주요 전범 25명을 재판하고 7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지만, 히로히토 일왕은 재판에서 제외되었고, 사형당한 7명 외에는 모두 석방되었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도 전범이었지만 석방되었고, 이후 일본의 총리를 지내기도 하였다.

미국이 가진 오리엔탈리즘 때문일지, 아니면 소련이 빠르게 공산주의 세력을 확장하던 당시의 국제 정세로 인한 위기의식 때문일지 모르지만, 미국은 일본과 한국 모두 행정 경험이 있는 세력을 선택하였고, 바뀌지 않은 기존의 전범 세력은 일본 정부를 수립하였다.

사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일본의 아베 총리에게 위안부 피해자, 징용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전쟁 범죄자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 자신이 외할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했는데, 외할아버지의 죄를 인정하라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스스로 허물어 버리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본에는 이러한 전범의 후손으로 정치인이 된 이가 꽤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은 1955년 자유민주당을 만들어 집권한 이후 지금까지 권력을 잡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독일과 다르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전쟁 범죄자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사가 내게 알려준 지식
 
 동아시아사 교과서에 나온 한중일 삼국의 정권 교체
 동아시아사 교과서에 나온 한중일 삼국의 정권 교체
ⓒ 천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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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2011년부터 새로 생긴 과목인 동아시아사를 가르쳤다. 처음 몇 년은 세계사의 한, 중, 일, 베트남사 부분을 합친 정도로 인식하고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뭔가 깨달음이 왔다.  
    
현대사 부분인 <민주화와 사회 변화> 단원 수업 준비를 할 때였다. 작년에도 보고 재작년에도 보았던 자료였는데, 갑자기 그 사진에서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는 동아시아가 보였다. 한국, 타이완, 일본이 비슷한 시기에 야당인 진보 정권으로 정권 교체가 되었던 것이다!

현대사 부분만 한 덩어리인건가? 하는 의문이 들어 과거의 역사도 살펴보니, 동아시아는 비슷한 시기에 불교와 유학을 받아들였고, 소농 경영이 시작되었으며, 상업과 도시가 발달하였고, 서민 문화가 발달하였다. 정치에만 한정해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은 시기에 무인 정권이 나타났고, 비슷한 시기에 과거제로 인해 사대부 관료층이 등장하였다.

물론 나라가 다르기에 베트남에는 무인 정권이 등장하지 않았고, 일본에서는 과거제를 실시하지 않아 사대부 관료층이 등장하지 않는 예외도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동아시아 각국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변화를 보인다.

필자가 부모님을 모시고 타이완에 여행 갔던 2016년 1월, 당시 타이완은 선거 운동이 한창이었다. 거의 모든 후보들이 어떤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함께 있는 모습으로 합성한 사진을 걸었는데, 그 여성은 현재의 타이완 총통 차이잉원(蔡英文)이었다. 야당 소속인 그가 다음 총통으로 유력하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타이완에서부터 진보 정권으로의 교체 바람이 시작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식민 지배를 사과한 일본 정권

사실 일본 정권이 식민 지배를 사과한 적은 있다. 1993년 집권했던 호소카와 총리가 '침략 전쟁'이라는 용어까지 쓰며 사과했었다.  2009년 집권한 민주당 정권도 우리나라에 사과할 것 같은 분위기를 보였었다. 둘 다 자민당이 아닌 야당이 잠시 정권을 잡았을 때였다.

당시에는 '일본이 웬일인가? '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들은 전범의 직계 후손은 아니어서 사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독일이 그랬듯이 일본도, 정권이 바뀌면 전쟁 피해국들에 대해 사과를 하고, 피해국들이 일본을 용서하여 함께 번영해 가는 아시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은 분명해 졌다. 일본은 한국에 타격을 주어 정권을 교체하고자 한다는데, 정작 교체되어야 할 정권은 1955년 이후 사실상 거의 교체된 적이 없는 일본의 자민당 정권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해결해서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하는데, 일본의 총리는 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한다. 최고 통치자가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교체해야 할 정권은 어느 나라의 정권인가?

며칠 후 치뤄질 일본 참의원 선거는 아베 정권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과연 동아시아 전체에 부는 정권 교체의 바람은 일본에도 영향을 줄 것인가? 매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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