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OCN <구해줘2>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엄태구.

3일, OCN <구해줘2>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엄태구. ⓒ 프레인TPC

 
"지금도 어딘가에 월추리가 있을 것 같아요. 배우들, 스태프분들 다 보고 싶고... 엊그제는 촬영 분량이 남아있는 꿈을 꾸기도 했어요."
 

지난 3일, 최근 종영한 OCN 드라마 <구해줘2>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엄태구는 특유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종영 소감을 말했다. "지금까지 찍은 작품 중 여운이 가장 깊게 남은 작품"이라면서 말이다.
 
<구해줘2>는 수몰 지역으로 선정된 월추리 마을 사람들이 종교를 이용한 사기극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 드라마다. 엄태구가 연기한 김민철은 마을 사람들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신뢰받지 못하는 '미친 꼴통'이지만, 월추리 주민 중 유일하게 사기극의 실체를 눈치챈 뒤 그 실체를 밝히기 위해 싸우는 인물이다. <밀정> <택시운전사> 등 여러 영화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신 스틸러' 엄태구의 첫 드라마 주연 작품이기도 하다.
 
충무로 기대주 엄태구, 그의 첫 드라마 주연작
 
 OCN 드라마 <구해줘2> 포스터.

OCN 드라마 <구해줘2> 포스터. ⓒ OCN

 
첫 드라마 주연작에서 만난 쉽지 않은 장르, 쉽지 않은 캐릭터. 엄태구는 약 4개월가량의 촬영 기간 대부분을 촬영지인 충남 홍성에서 지냈다. 촬영 이외에는 대본을 보거나, 방송분 모니터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고. 그는 "연기 말고 하는 일이 없다 보니 작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스태프분들, 배우분들이랑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그래서 합이 더 잘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극 중 김민철은 16회 내내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궁지에 몰리는 캐릭터다. "홍성에서의 4개월 덕에 김민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긴 시간  김민철이라는 캐릭터에서 분리되지 못했다면 감정적으로 피폐해지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이를 묻자, 엄태구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묵었던 숙소가 온천 관광호텔이었어요. 4개월간 일주일에 다섯 번은 온천을 했던 것 같아요. 그날그날 쌓인 피로를 온천에서 풀었죠.(웃음) 농담이지만 진담이기도 해요. 드라마와 영화는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고, 후반부에 가면 아무래도 촬영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잖아요.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걸 찍는 것 처음이었는데, 온천 덕분인지 피곤하지만 피곤하지 않은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웃음) 무엇보다, 드라마는 드라마만의 굉장한, 색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모든 촬영을 마친 뒤 관객과 만나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100% 사전제작이 아닌 경우 실시간으로 시청자의 반응을 알 수 있다. 엄태구는 이를 '엄청난 매력'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분들의 연기와 대사를 보면, 화면과 이야기가 연결돼서 그림이 더 잘 그려지더라고요. 시청자 피드백을 실시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고, 응원글을 읽으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뒤로 갈수록 촬영 시간이 촉박해졌고, 육체적으로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상한 힘이 생겼죠.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해야 한다는 게 불안하기도 했죠. 하지만 저 역시 변화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상상하고 연기하는 일이 (영화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재미였던 것 같아요.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그토록 궁금했던 결말. 엄태구에게 모두의 비극으로 끝난 <구해줘2>의 결말은 마음에 들었을까? 그는 "여운이 많이 남더라. 슬픈 엔딩이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며 말을 이었다.
 
"전 16회 에필로그가 너무 좋았어요. 월추리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은 너무 아프죠. 하지만 작품적으로 봤을 때, 드라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해봤을 땐 정말 좋은 엔딩이었다고 생각해요. 슬프지만 현실적인 엔딩. 덕분에 드라마의 여운이 더 길게 남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선도 악도 아닌 김민철

<구해줘2>의 원작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다. 너무 재미있게 본, 좋아하는 작품이었기에 캐스팅 제안을 받고 기쁘게 응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정작 출연이 결정되고서는 원작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자칫 원작의 분위기나 캐릭터를 따라 하게 될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OCN 드라마 <구해줘2> 스틸 컷

OCN 드라마 <구해줘2> 스틸 컷 ⓒ OCN


동네 꼴통에 마을 사람은 물론 여동생 영선(이솜 분)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김민철.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지만, 모두가 믿는 거짓의 정체를 홀로 눈치챈 그는 마을 사람들의 목숨과도 같은 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캐릭터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폭력적인 캐릭터다. 동생 영선의 대학 등록금은 물론 성 목사(김영민 분)의 선교 헌금을 빼앗기도 했다. '자기는 되게 불의한데 남의 불의만 못 참는 캐릭터 아니냐'고 하자, 그는 "맞다"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다지 선하지도 않은 김민철은 왜, 월추리 사람들을 위해 그토록 처절한 싸움을 이어갔을까?  
 
"김민철은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에요. 그냥 대본과 캐릭터에 충실하게, 감독님과 한 신 한 신 고민하며 '얘는 여기서 왜 이럴까'에 집중하면서 연기했어요. 초반 최장로와 나쁘게 얽힌 에피소드도 있고, 안수기도로 걷게 됐다는 하지마비 환자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걸 보기도 했잖아요.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죠. 거기에 더해, 막무가내 캐릭터처럼 보여도,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캐릭터라고도 생각했어요.
 
김민철에게 월추리는... 실제 자기 가족도 있지만, 월추리 사람들 모두 어릴 때부터 봐왔던 가족 같은 사람들이잖아요. 겉으로는 싸우기도 하고,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감정적으로는 친밀하고, 그래서 더 마음 아픈 그런 거요."

 
"개신교 신자이지만..."
 
 3일, OCN <구해줘2>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엄태구.

3일, OCN <구해줘2>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엄태구. ⓒ 프레인TPC

 
엄태구는 개신교 신자다. 교회와 맹목적인 신앙심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그는 이 부분은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교회 그 자체가 아닌, 종교를 도구로 사기를 치려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서 성 목사의 타락과 결말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잠시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이라며 말을 고른 뒤 답을 이었다. 

"성 목사가 초반에는 되게 젠틀하고 신앙심 있는 목사로 그려지잖아요. 그런데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초반에 성 목사가 개척 교회로 가게 됐을 때, '하나님은 저를 그런 교회로 보내실 분이 아니다'라는 대사가 있었거든요.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갑자기 변한 게 아니라 조금씩 타락하다 터져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문제의 발단인 마을 사람들의 보상금에 불을 지르고, 사기극을 꾸민 이들을 처단한 성 목사의 선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했다.   

"글쎄요... 저는 마지막까지 잘못된 자기 확신을 버리지 못한 게 아닐까 싶어요. 진짜 잘못했고 속죄하고 싶으면 잘못한 사람들에게 가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는 거잖아요. 혼자 처단하고, 용서 빌고...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각자 생각이 다를 순 있지만, 아픔을 겪은 분들에게 가서 사과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물론 사과만으로도 안 되겠지만요." 

엄태구 걱정하게 한 천호진의 아우라  
 
 OCN <구해줘2>의 한 장면.

OCN <구해줘2>의 한 장면. ⓒ CJ E&M

 
<구해줘2>를 시작하기 전, 그를 가장 걱정하게 한 부분은 신앙인으로서의 불편함도, 첫 주연에 대한 부담감도 아니었다. 김민철은 내내 최 장로와 팽팽하게 맞서며 극의 감정을 고조시켜야 하는데, 과연 천호진이라는 배우를 상대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하던 그를 격려하고 일으켜준 것도 천호진이었다. 천호진은 까마득한 후배 엄태구에게 '네 맘대로 해라. 편하게 하라'며 힘을 줬다고. 물론 천호진을 상대로 '편하게', '마음대로'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마음대로 해보려고 해도 선배님이랑 연기할 땐 그 아우라, 에너지가 너무 커서 그럴 수가 없었어요. 현장에서는 정말 선배님밖에 안 보여요. 저도 모르게 선배님을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현장에서 호흡을 맞추며 함께 만들어간 장면들은 모두 엄태구가 꼽는 <구해줘2>의 명장면이었다. 마지막 회 예배당 앞에서 돈가방을 두고 땅바닥을 구르며 싸우는 장면을 이야기하며 '하나도 멋있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고 하자, "그 장면도 선배님 아이디어였다"고 했다. 

"선배님이 이 장면을 '개싸움처럼 해야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감독님, 무술감독님, 모두 찬성했고 저도 너무 좋았죠. 바닥을 뒹굴면서 찍는 장면이라 힘들었지만 너무 마음에 드는 장면이에요. 

매 순간 감탄했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선배님의 드라마 전체를 보는 눈이었어요. 저는 미처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조언도 해주시고, 함께 나뒹구는 장면을 찍을 때면 '이렇게 이렇게 해야 덜 다친다. 이렇게 해보자'라고 알려주시기도 했고요. 특히 제가 소리 지르는 장면이 많아서 그런 장면을 찍은 뒤엔 힘들어서 구석에 가만히 있을 때가 있었어요. 선배님도 목소리 높여 말하는 장면이 많아서 목에 좋은 걸 드셨나봐요. 스태프 통해서 조용히 건네주셨는데 너무 감사하고 감동했죠." 


엄태구=소심한 배우? 이젠 아니다 
 
 3일, OCN <구해줘2>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엄태구.

3일, OCN <구해줘2>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엄태구. ⓒ 프레인TPC

 
천호진 외에도 함께 호흡을 맞춘 모든 배우들 모두 "너무 그 사람들 같았다. 연기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친해진 이들도 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더 많은 사람에게 친밀하게 다가가진 못한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아쉬운 부분일 정도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데뷔 후 너무 힘들어 "나는 이 일을 하면 안 되는구나 싶기도 했다"는 엄태구. 하지만 "이젠 많이 좋아졌다. 이렇게 인터뷰 때 말도 길게 할 수 있게 됐지 않나.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면서 밝게 웃었다.

실제 성격과 작품을 통해 보여준 이미지가 많이 달라 예능 PD들이 많이 탐낼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기회가 되면"이라며 긍정적인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동료 배우들이 "엄태구를 예능에 섭외하려면 앰뷸런스 먼저 섭외해야 할 것"이라고 장난치던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엄태구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분야는 연기다. 하비에르 바르뎀과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를 좋아해 그들이 나온 작품은 꼭 챙겨보는 편이라는 그는, 자신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어떤 이미지의 배우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 '찾아보고 싶은 배우'가 되는 것이 그의 배우로서의 목표인 이유다. 

좋은 작품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 좋은 성과를 거둔 엄태구. 그는 첫 드라마 주연작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쳤다. 개봉을 앞둔 <뎀프시롤>, 출연을 결정한 <낙원의 밤> 등 한동안 다시 TV보다는 영화로 대중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는 드라마의 매력을 알게 된 만큼 "영화나 드라마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제 마음대로 작품을 선택할 순 없지만, 늘 '이번에 이런 거 해봤으니 다음엔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은 있죠. 다행히 다음에 찾아뵐 작품 <뎀프시롤>과 <구해줘2>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휴머니즘이 강한 작품이긴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도 버무려진 이야기거든요. 아직 저도 보진 못했지만 기대하고 있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구해줘2>를 사랑해준 시청자들을 향한 인사도 남겼다.  

"<구해줘2>는 제게 너무나 감사하고, 여운이 깊은 작품이에요. 재미있게 봐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끝까지 힘내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구해줘2 엄태구 김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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