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나토 '모이카노' 카네이로(사진 왼쪽)와 정찬성

헤나토 '모이카노' 카네이로(사진 왼쪽)와 정찬성 ⓒ UFC

 
UFC 페더급에서 맹활약 중인 '코리안 좀비' 정찬성(32·코리안좀비 MMA)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찬성은 지난 23일(한국시각)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그린빌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154' 메인이벤트에서 '랭킹 5위' 헤나토 '모이카노' 카네이로(30·브라질)를 1라운드 58초 만에 TKO로 잡아냈다. 높은 랭킹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차세대 챔피언 후보로 평가받던 강자를 상대로 올린 승리인지라 더욱 놀랍다.

당초 모이카노와 대전이 잡혔을 때만 해도 '여러모로 정찬성에 힘들 것이다'는 분석이 많았다. 정찬성은 투지와 근성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줄 것은 줘가면서 자신의 거리를 만들어가는 좀비 스타일의 파이터이고, 모이카노는 거리 조절, 유효타 싸움의 달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결에서는 상성적 측면에서 정찬성 쪽이 불리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찬성 같은 경우 조지 루프, 야이르 로드리게스 등 발이 빠르고 사이즈를 잘 살리는 선수들에게 패배를 기록한 바 있다. 내용 자체를 들여다 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패배는 패배다. 하물며 모이카노는 그러한 스타일의 끝판왕격인 상대인지라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한탄의 목소리까지 팬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정찬성은 역시 정찬성이었다. 내성적이고 쇼맨십도 없는 동양 파이터가 현지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예전부터 정찬성은 상성, 전력차 이러한 부분을 무시하는 경기를 보여준 적이 많았다. 훈련보다 실전에 강한 리얼 싸움꾼답게 어지간한 예상은 빗나가는 행보를 보여왔다.

정찬성은 모이카노가 잽을 치는 타이밍을 노렸다. 먼저 가볍게 잽을 내며 모이카노의 잽을 기다렸다. 모이카노는 언제나처럼 잽을 던지며 타격 리듬을 잡아가려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정찬성은 빠르게 반응했다. 모이카노의 잽이 나오는 순간 벼락같은 라이트 카운터를 작렬시켰고 충격을 받은 모이카노의 눈이 순간적으로 풀렸다.

이어진 레프트 펀치가 모이카노의 관자놀이에 들어갔고 사실상 승부는 거기서 갈렸다. 정찬성은 백포지션을 점령한 채 확인용 파운딩을 날렸고 안 되겠다고 판단한 심판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코리안좀비의 킬러 본능이 또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정찬성의 '좀비 극장'은 매 경기, 줄거리가 다르다.

정찬성의 '좀비 극장'은 매 경기, 줄거리가 다르다. ⓒ UFC 아시아 제공

 
특별한 캐릭터 코리안좀비, 역대 코리안파이터 NO. 1
 
김동현(웰터급)을 시작으로 양동이(미들급), 정찬성(페더급), 강경호(밴텀급), 임현규(웰터급), 최두호(페더급), 방태현(라이트급), 남의철(라이트급·페더급), 함서희(여성 스트로급), 마동현(라이트급), 곽관호(밴텀급), 김지연(여성 밴텀급·플라이급), 전찬미(여성 스트로급), 손진수(밴텀급), 조성빈(페더급), 최승우(페더급) 등 그동안 적지 않은 숫자의 코리안 파이터들이 UFC 옥타곤을 밟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성적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스타트를 끊은 김동현의 롱런 그리고 정찬성의 놀라운 활약으로 인해 눈높이는 높아져갔지만 후발주자들의 활약이 신통치 않다. 양동이는 충분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애매한 경기가 이어지면서 잠재력을 제대로 터트리지 못했다.

아시아무대서 맹위를 떨치던 남의철의 '불도저' 전법은 신체능력이 좋은 서구선수들에게 한계를 드러냈다. 어린나이에 옥타곤에 진출하며 많은 이들을 놀래켰던 전찬미는 경험부족을 노출했으며 함서희, 방태현, 김지연 등은 복싱 위주의 단순한 패턴으로 상대측의 분석에 잡아먹혔다. 거기에 함서희같은 경우 맞는 체급까지 없는지라 사실상 상위 체급 상대들과 맞서야 하는 이중고까지 겪었다.

임현규 같은 경우 체급 내 정상급 신체조건에 강력한 파워를 갖췄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지만 잠재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당수 외국선수들처럼 신체조건을 살린 거리 싸움을 펼치지 못하고 투박한 인파이팅으로 일관하다 자존심을 구겼다. 일각에서 들리는 말처럼 훈련 때는 그렇게 강한데 실전만 되면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더 아쉬움을 샀다.

그 외 곽관호, 손진수, 최승우는 투지만 넘쳤으며 조성빈은 지나치게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설상가상으로 방태현은 승부조작에 연루되며 흑역사를 쓰기도 했다. 군에서 전역한 강경호를 비롯해 마동현 정도가 중하위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다.

그나마 어느 정도 성적을 낸 파이터는 김동현, 정찬성 둘 정도이며 연패에 빠지기는 했으나 이전까지의 최두호 역시 가능성은 보여줬다. 하지만 그마저도 김동현, 최두호는 최근 한계를 노출했다. 김동현은 전형적인 압박형 그래플러, 최두호는 펀치 위주의 타격가다. 자신들의 특기가 통할 경우는 상당한 포스를 보여주지만 막히게 되면 2옵션 부재로 말미암아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일쑤였다.

반면 정찬성은 달랐다. 타격, 그래플링 어느 한쪽에서 정상급 포스는 보여주지 못했으나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승리를 가져가는 특유의 킬러 본능이 빛났다. 상당수 국내선수의 경우 유리한 상황에서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역전패 당하는 경우도 잦았지만 정찬성은 아니었다. 승기를 잡았다 싶은 순간 절대 놓치지 않고 상대의 숨통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카운터, 서브미션 등 '정찬성의 경기는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말처럼 승리방식 역시 다 달랐다. 자신보다 전력이 더 강하다고 평가받는 상대와의 싸움에서도 종종 승리를 가져갔다. 정찬성은 UFC에서 7경기를 뛰는 동안 단 한번도 판정 경기가 없었다. 자신이 지든 이기든 판정까지 가지 않고 경기가 끝났다.

좀비극장은 늘 결말이 있었다. 직전 경기에서 챔피언 타이틀전까지 치렀던 선수를 7초 만에 때려 눕히는가 하면 다 잡은 경기를 1초 남겨놓고 역전패 당하는 아픔에 울기도 했다. 전성기 조제 알도와의 챔피언타이틀전에서 빠진 어깨를 스스로 끼워 맞추려는 투혼을 보였으며 군제대 후 복귀전에서는 그림 같은 어퍼컷으로 컴백을 알렸다.

이러한 정찬성의 스타일은 화끈한 승부를 갈구하는 데이나 화이트 대표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 결과 옥타곤에 진출한 어떤 코리안 파이터보다도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파이터가 될 수 있었다.
 
 안드레 유웰(사진 왼쪽)과 앤더슨 도스 산토스

안드레 유웰(사진 왼쪽)과 앤더슨 도스 산토스 ⓒ UFC

 
'정찬성 팬' 자처한 유웰, 도스 산토스 사냥 성공
 
이번 대회에서 밴텀급 시합을 가진 '미스터 하이라이트' 안드레 유웰(31·미국)은 "나는 코리안 좀비의 팬이다"고 밝힌 바 있다. 모이카노와 정찬성의 대결에서도 정찬성의 승리를 점치며 공공연하게 팬심(?)을 드러냈다. 정찬성의 해외 인지도와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웰은 이날 앤더슨 도스 산토스(33·브라질)와 맞붙었다. 둘은 신체조건은 물론 파이팅 스타일도 완전히 달랐다. 유웰은 체급 내 최고 수준의 신장(180.34cm)을 앞세워 타격을 주무기로하는 파이터다. 긴 리치를 살린 원거리 펀치는 작은 선수들 입장에서 까다롭기 그지없다. 태권도를 베이스로 내세울 만큼 발차기 기술도 뛰어나다. 반면 신장(167.64cm)이 크지 않은 도스 산토스는 주짓수를 앞세운 그라운드 플레이가 주특기였다.

도스 산토스 입장에서는 본인의 영역인 그라운드로 끌고 가는게 중요했다. 유웰의 긴 리치를 뚫고 거리를 좁히는 것이 관건이었다. 앞손을 내민 채 거리 싸움을 펼치던 유웰은 도스 산토스가 접근하려고 하면 날카로운 뒷손 카운터를 노렸다. 몇번의 정타 허용 이후 도스 산토스가 클린치 상황을 만들어냈으나 그라운드로 끌고 가는 데는 실패한다. 이후 스탠딩 싸움에서 유웰의 저격용 장총 같은 펀치가 계속해서 들어갔다.

2라운드에서도 유웰의 긴 리치는 도스 산토스를 어렵게 했다. 워낙 리치 차이가 큰지라 도스 산토스가 예상치 못한 거리서 앞손 잽과 뒷손 스트레이트가 거침없이 들어갔다. 거기에 스텝까지 좋은지라 도스 산토스가 어렵게 거리를 좁혔다 싶으면 짧은 움직임으로 거리를 금세 다시 벌려버렸다. 도스 산토스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2분경 유웰을 그라운드로 끌고 갔으나 아쉽게도 묶어놓는 데 실패한다.

수많은 유효 타격 적중으로 얼굴이 피로 물든 도스 산토스 입장에서 경기를 이길 방법은 넉 아웃 혹은 서브미션 승리밖에 없었다. 판정으로 가면 경기를 잡기가 어려웠다. 3라운드에서도 유웰의 페이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스 산토스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흘려내며 긴팔 공격을 거푸 적중시켰다.

집념의 도스 산토스는 라운드 중반 태클을 성공시켰다. 1~2라운드 같으면 묶어놓고 포지션 싸움만 해도 점수를 딸 수 있었겠지만 마지막 라운드라는 것이 문제였다. 승부를 끝내야만 하는 도스 산토스는 유웰을 케이지 구석에 몰아놓고 압박하며 서브미션을 노렸다. 하지만 결국 마무리에 실패했고 경기는 유웰의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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