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와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림에 대한 이해를 넘어 예술가, 그리고 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과 사물, 세상에 대한 그들의 철학과 고민을 엿보고 인간으로서의 좌절, 고통, 자부심, 고집을 조명해보면서 그림이 전달하는 의미와 그 너머 화가의 존재를 인식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시기, 독일에서는 북부 유럽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의식이 강하고 그림에 대한 실력과 자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그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으며 자신의 그림에 서명과 문구를 남기곤 했다.
 
독일을 너머 전 유럽에 명성을 날리면서 자신의 그림이 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서명이었다고 하지만 그의 서명까지 위조된 걸 보면 그보다는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이탈리아 방문 중 소송을 통해 자신의 작품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도 했다. 

13세 때 그린 자화상을 시작으로 그는 그림을  지속적으로 그렸다. 뒤러의 대표적인 그림은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Self-Portrait in a Fur Coat, 1500)'이다. 높이 솟은 이마와 좌우대칭의 얼굴을 통해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뒤러의 자화상이 남다른 이유
 
알브레히트 뒤러 Source: Wikimedia Commons
▲ Self-Portrait in a Fur Coat(1500) 알브레히트 뒤러 Source: Wikimedia Commons
ⓒ Alte Pinakothek, 뮌헨

관련사진보기

 
기존의 자화상들과는 달리 검은 배경에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뒤러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며 종교적인 신실함을 가진 크리스천이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자신을 경건히 하고 그 가르침을 평생 간직하겠다는 신념을 나타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구원자이자 통치자인 예수의 모습을 차용한 것에 대해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화가로서의 자신의 신념과 그림에 대한 자신의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화가에게 있어 세상을 보는 눈과 더불어 2차원의 표면에 옮기는 테크닉을 보유한 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나타내려는 듯 뒤러의 오른쪽 눈에는 창문 빗장이 그려져 있다. 화가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 또는 세상을 담아내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유독 길고 가느다란 그의 오른손 또한 시선을 끈다. 세상을 지도하고 복을 주는 그리스도의 손 모양이 흔히 강조되듯, 뒤러는 자신이 본 바를 자신의 창의성과 결합하여 2차원의 표면에 기술적으로 표현하는 실질적 도구로 강조했다.

그림의 왼쪽에는 그림을 그린 연도와 서명이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는 "나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지워지지 않는 물감으로 나의 모습을 그렸다'(Albertus Durerus Noricus ipsum me propriis sic effingebam coloribus aetatis anno XXVIII)라고 적었다. 이러한 설명은 그림을 그린 자신의 태도와 방법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거울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바탕으로 최대한 닮게, 색의 표현도 최대한 사실에 부합하게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그림을 그린 것이다.

지금의 거울을 생각하면 닮게 그리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에 고개가 갸우뚱하겠지만, 당시 거울은 작은 크기의 볼록 거울밖에 없었다. 평평한 거울은 기술적으로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볼록한 거울에 왜곡되어 나타난 자신의 모습과 역시나 변형되어 나타난 색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뒤러는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했다. 

뒤러에게 있어 화가란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의 질서, 아름다움, 신념, 사상을 창의성과 기술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자연은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우주적인 질서와 수학적 비율, 조화로운 형태, 찬란한 색채로 이루어진 내재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무질서하고 우연적이며 혼돈스러워 보이는 자연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기가 막힌 섭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량과 수치와 무게로 배열한다"는 성서외전의 하나인 '솔로몬의 지혜'(잠언 11:20)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에게는 이 세상의 존재가 온갖 신비와 심층적인 의미,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포함하는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었다. 
 
흔히 예술가의 고민과 음울함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는 뒤러의 동판 인쇄 작품 '멜랑콜리아 I(Melancholia I, 1514)'는 그 어느 작품보다 많은 해석을 자아내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가득하다. 이 작품은 1513년과 1514년 사이에 만들어진 뒤러의 3대 동판화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인간의 성품과 특징을 표현한 그림 중 우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분명 세상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비에 대한 예술가의 깊은 고민을 표현한 것으로 여길 만하다.
 
알브레히트 뒤러 Source: Wikimedia Commons
▲ Melancholia I(1514) 알브레히트 뒤러 Source: Wikimedia Commons
ⓒ 호주 빅토리아국립미술관

관련사진보기

 
전경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공구들과 둥근 구, 바닥에 늘어져 있는 그레이하운드와 커다란 기하학적 모형, 벽에 걸린 저울과 모래시계, 종과 숫자판은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과 더불어 세상을 구축하는 인간의 창의성과 창조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침반을 든 채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천사는 쉽게 풀리지 않는 실마리를 찾아 이미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물론 앞으로도 한동안, 아니 어쩌면 이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그 옆에서 졸고 있는 아기 천사는 이미 기다림을 단념한 듯 달콤한 잠에 빠져있다.
 
아담과 이브의 탄생

뒤러에게 그림은 기능공에 의해 만들어진 공예품이 아니라 과학적, 이론적 바탕 위에 만들어진 창조적인 성취에 해당했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인간의 몸에 대한 탐구에서 열정적으로 나타났다. 1500년 이후 계속된 인간의 몸에 대한 탐구는 뒤러로 하여금 자신의 누드를 그린 최초의 화가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사실적인 표현과 이상적인 몸을 구현하기 위해 뒤러는 자신의 누드를 그렸고, 비트루비우스의 법칙 등 다양한 예술 이론들을 섭렵하며 완벽한 남자와 여자의 몸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이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으로 탄생했다.
 
알브레히트 뒤러 Source: Wikimedia Commons
▲ Adam and Eve(1504) 알브레히트 뒤러 Source: Wikimedia Commons
ⓒ Morgan Library and Museum

관련사진보기

 
1504년의 첫 번째 '아담과 이브(Adam and Eve)'는 남자와 여자를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와 비례에 따라 그려냈다. 마치 그리스의 조각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배경에는 다양한 나무와 뱀, 그리고 갖가지 동물들이 가득하다. 이 그림은 마치 신의 창조물의 표본을 보는 듯하다. 신체의 비율과 포즈가 이상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졌지만 마치 고대의 조각을 연습 삼아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담과 이브의 얼굴도 정면이 아닌 옆면을 취하고 있고 그리스의 도자기 그림을 보는 듯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뒤러의 개인적인 특징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알브레히트 뒤러 Source: Wikimedia Commons
▲ Adam ad Eve(1507) 알브레히트 뒤러 Source: Wikimedia Commons
ⓒ 프라도 국립 박물관

관련사진보기

 
1507년에 그린 '아담과 이브'에서는 첫 작품과 달리 자신만의 아름다운 모습을 창조해냈다. 다소 앳된 모습의 아담과 이브는 각각 독립된 누드화로 그려졌다. 이전의 아담과 이브와 비교해 팔, 다리가 다소 늘려졌고 호리호리한 느낌마저 든다.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 순진하면서도 야심에 찬 표정으로 사과를 쥐고 있는 이브와 이브의 제안에 거리낌 없이 사과를 받아들고 약간 신나 보이는 아담의 모습은 나약하면서 철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세상의 추악함을 경험하기 전의 순수함과 그 추악함에 취약한 어리석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인 셈이다.  

그림 속의 아담과 이브는 사실적인 표현이나 수학적인 비율의 조화를 그대로 따르던 예전의 그림에서 더 나아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기가 넘치는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간직한 매력적인 그림이 되었다.
 
1512년 뒤러는 "좋은 화가는 내면에 창의성이 풍부하다. (중략)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아마도 그는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를 불러낼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결국 모두의 눈에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훌륭한 예술가에 의해 탄생하기 전까지는 그리다 만 그림, 끝을 짐작할 수 없는 미완의 조각, 미로에 갇힌 것과 같은 모호함과 같다. 세상의 이치와 조화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탐구로 찾아낸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눈이 좋고 솜씨가 뛰어난 화가에 의해 비로소 이상과 현실이 조화된 완벽한 작품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다.
 
참고서적: Albrecht Dürer, The Genius of the German Renaissance(Norbert Wolf, 2016. Taschen)

태그:#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뒤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