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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과 빈곤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주목할 만합니다. 한편에서 기후변화는 인류의 운명을 가를 절체절명의 문제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기후행동'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기후행동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녹색참여소득'을 제안합니다. 생태적 이동, 에너지 절약, 친환경 제품 사용 등을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녹색참여소득의 개념, 기본소득과의 차이, 기대효과 등에 대해 연재합니다.

여쭤봅니다.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 달에 수십 만 원의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전기, 가스, 수도의 절약을 조건으로 한다면요? - 기자 말

 
 아이들의 일상에 스며든 유튜브.
 아이들의 일상에 스며든 유튜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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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자전거 타기, 대중교통 이용 등 생태적 이동을 조건으로 기본소득(녹색참여소득)을 지급하게 되면 우리 삶의 양상도 다양한 측면에서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는 게임 못 하게 해요."

어느 강의 자리에서 한 참가자가 하신 말씀입니다. 옆에 앉아 있던 분이 반문합니다.

"그럼 아이가 게임을 안 하나요?"

답은 이랬습니다.

"아니요. 알고 보니 놀이터에서 친구들하고 모여서 하더라고요."

많이 본 광경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도 큰 놀이터가 있는데, 신나게 뛰어 노는 건 초등학교 3~4학년 정도까지입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놀이터 구석구석에 무리를 지어 앉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놀이터에요?"
"네, 놀이터 곳곳에 앉아 게임을 해요."


놀이터 구석구석은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고등학생의 '아지트' 같은 곳입니다. 미끄럼틀 끝, 그네 옆 바닥, 시소 한 쪽 면. 이런 곳들이 모두 학생들이 모여 게임을 하는 곳입니다. '우리집도, 친구집'도 모두 게임을 못 하게 하고, 딱히 갈 곳이 없으니 방법은 놀이터에 모이는 방법뿐입니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 틈만 나면 시내 피시방에 놀러가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이들은 뛰어놀기 보다는 게임을 하고 놉니다. 놀이터에서 걷고, 달리며 즐거움을 느끼기보다 유튜브를 보고 카톡에서 수다를 떨면서 기뻐합니다.

부모들은 '공부하라' '게임하지 마라'고 말은 해도 '뛰어 놀아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인터넷과 게임이 장악한 생활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2016년 국립환경과학원이 펴낸 '어린이 노출 계수 핸드북' 162쪽의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저학년은 하루에 TV시청에 1시간을 쓰고, 게임과 인터넷은 34분가량 이용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TV시청으로 하루 평균 55분 정도를 사용합니다. 게임에는 25분을 씁니다.

날마다 거의 몇 시간씩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늘 목격하고, 밤늦게까지 카톡에 푹 빠져 있는 학생들을 자주 접하는 저로서는 이 통계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조금은 의문입니다. 같은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놀이'에 쓰는 시간은 5분이 채 안 됩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TV시청 및 게임, 인터넷 검색에 하루 총 1시간 이상을 사용합니다. 여타의 놀이는 아예 통계에 없습니다.

인터넷과 게임은 청소년들이 생활리듬을 잃게 하는 큰 요인입니다. 우리 아이 친구들을 보면 이제 초등학생인데도 하루에 게임만 3시간 했다, 주말에는 5시간 이상 한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한 아이에게 하루 종일 게임만 하면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머리가 멍해요."

이동시간 그리고 놀이 시간
 
 '밖에 나가 뛰어 놀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밖에 나가 뛰어 놀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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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아빠! 오늘 정말 신나게 놀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저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아이와 함께 놀았습니다. 대부분은 뛰고 달리는 놀이었습니다.

술래는 언제나 저였습니다. 저는 눈을 가린 체 아이들을 잡으러 다닙니다. 일부러 큰소리를 내고, 몸짓도 과장되게 합니다. 아이들은 즐거운 긴장 속에서 눈을 가린 괴물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이리 저리 피해 다닙니다.

4~5명 정도가 뒤쫒고, 저는 아이들의 손을 피해 무턱대고 놀이터를 뛰어다니기도 많이 했습니다. 놀이터 바닥에 그려진 동그란 원 안에서 서로 몸을 밀쳐가며 원 밖으로 밀어내는 놀이도 했습니다. 마을에서 배운 비석치기, 구슬치기도 자주한 놀이 중 하나입니다.

아이가 좀 크면서는 놀이가 스포츠 정식 종목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축구를 하는 날이 많아졌고, 야구와 배드민턴도 즐겨했습니다. 농구도 자주 했고요.

이 모든 놀이들은 기본적으로 걷거나 뛰면서 하는 놀이들입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게임이 아이의 시간을 잠식하면서 이제 뛰어노는 놀이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

역시 통계를 좀 살펴봤습니다.

놀이가 아닌 '이동'시간을 먼저 살펴봤습니다.

우선 공부를 하기 위해 한국의 초등학생은 평일 하루에 1시간가량을 이동합니다. 학교에 왔다갔다 하는 시간, 학원 다니는 시간을 다 합하면 그렇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그 시간이 좀 늘어나긴 하는데, 큰 차이는 없습니다(통계청, 2016,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상(1999년~2014년), 20쪽).

근데 이건 공부를 위한 이동시간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걷는 시간, 버스 타는 시간, 자가용 이용시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공부를 위한 이동이든,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든 걷는 시간만을 따로 파악해보면 사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평일을 기준으로 봤을 때, 초등학생의 경우 1~3학년은 평균 36분을 걷습니다. 초등학교 4~5학년이 되면 걷는 시간이 좀 늘어나서 평균 55분을 걷습니다. 중·고등학생은 약 40분 내외의 시간을 걸어 다닙니다(국립환경과학원, 2016, 어린이 노출 계수 핸드북, 162쪽).

스포츠 및 레포츠 활동을 따져보면 더 심각합니다.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생의 경우 스포츠 및 레포츠로 하루에 쓰는 시간이 22분, 중학생은 12분, 고등학생은 14분에 불과합니다(통계청, 201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 7쪽).

우리나라 학생들은 거의 놀지 않고, 걷지 않으며, 공부시간을 제외하면 주로 TV와 인터넷, 게임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녹색참여소득으로 놀이 시간 확보를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합니다.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합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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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보는 시간, 인터넷‧게임을 하는 시간을 조금만 줄여도 하루에 1시간은 뛰어놀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을 줄여 '공부해라'가 아니라, '뛰어 놀아라'고 말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그런 어른이 많아져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녹색참여소득은 이러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생태적 이동의 중요성이 개개인에게 보다 확실히 각인된 사회에서야 비로소 아침에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가 아니라 "오늘도 신나게 뛰어놀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녹색참여소득으로 아이들 뛰어노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사회변화를 위한 매우 진지한 노력으로 취급돼야 합니다. 더 나아가 지나친 장시간 학습 위주의 교육체제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녹색참여소득의 도입으로 더 촉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8시간 노동제 투쟁 등은 자유로운 시간 확보를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온종일 공장에 가둬, 자유롭게 걷지 못하게 해온 역사에 대한 반격 같은 것이었습니다. 직장인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 게 장시간 노동이었다면 직장인이 되기 전의 시민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장시간 학습입니다.

8시간 노동제가 정당하다면, 적정시간 학습제 역시 적당합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공부하고, 전혀 놀지 못하게 하는 교육은 학생들을 억압합니다. 그러므로, 녹색참여소득을 통해 아이들이 뛰어노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줄 수 있다면, 이를 위한 노력이 장시간 학습 위주의 교육체제에 미약하게나마 도전할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학생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 실험으로 유명한 핀란드에는 '교육지원비' 제도가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월 250유로를 지급하되, 엄격하게 공부를 해야 하는 조건과 연계돼 있습니다. 참여소득과 개념이 유사합니다. 청년에 대한 기본소득을 이렇게 교육과 연계하는 걸 이상하다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변화와 녹색참여소득을 연계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게 하는 교육, 그것을 조건으로 지급되는 녹색참여소득은 교육을 바꾸고, 아이들의 건강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상구씨는 정의당 교육연수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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