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05 08:57최종 업데이트 19.06.05 08:58
'똑경제'는 똑똑한 경제필진 4명과 함께 매주 수요일 찾아가는 똑똑한 경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독일을 포함해 유럽에서 '포퓰리즘 4.0'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신문, 방송, 인터넷을 거쳐 유튜브 등 SNS가 대세를 이루면서 '사실과 진실'보다는 '주장과 선동'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도 홍수를 이룬다. 오죽하면 독일은 가짜뉴스를 공표할 경우 500만 유로에서 최대 5000만 유로(한화 650억 원어치)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률'을 제정해 적용할 정도다. 유튜브나 트위트 등 SNS를 겨냥한 것이다.

원래 레거시(전통) 미디어인 신문과 방송은 팩트 체크와 뉴스를 검증하는 '게이트 키핑'이라는 중요한 프로세스가 있다. 객관성과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와 시청자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은 팩트 체크를 전문으로 하는 부서나 팀을 두고, 또는 별도의 '코너'를 만들어서 SNS와의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26살 청년인 레쪼가 만든 '기민당 파괴'라는 도발적인 동영상이 화제를 불러왔다. 포퓰리즘 4.0은 민주적 토론 대신에 주장과 비방이 난무한다.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과 장점은 민주적 여론 형성 과정이다. 사실에 기반해 의견과 반대의견, 찬반이 논의되고, 숙의와 합의를 이뤄가는 프로세스다. 폭력이나 거짓을 넘어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김훈 작가는 최근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열린 백두대간 인문캠프에서 한국 사회가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 거짓말로 날이 지고 샌다"면서 "어수선하고 천박한 사회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기자 출신답게 '한국판 포퓰리즘 4.0'에 대해 지적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유럽보다 더 SNS 상에서 가짜 뉴스와 선전‧선동이 난무하고 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왼쪽)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지난 3일 오후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TV홍카콜라'를 조합한 '홍카레오' 토론배틀을 마치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3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와 노무현 재단 유시민 이사장(전 장관)이 유튜브 공동방송을 진행했다. 방송의 이름은 두 사람의 유튜브 계정 이름인 '홍준표의 TV홍카콜라'와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조합해서 '홍카레오'로 지었다. 두 사람은 양쪽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이자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토론에서 상호 합의한 10개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기존 방송 토론과 다른 점은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토론하고, 한정된 네티즌만 시청한다는 점이다.

홍준표 전 대표와 유시민 전 장관이 유튜브에서 개별 방송을 하다가 함께 토론 방송을 진행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수 있다. 유 장관은 '소통'의 중요성을 파악해 먼저 제안했고, 홍 전 대표는 토론 후 '분노와 증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군 멍군인 셈이다. 분열과 갈등보다는 토론과 화합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정치인들이 우리 문제에 대해 공개 토론을 진행한 점은 높이 살 수 있다.

한국판 포퓰리즘 4.0

이들은 '소셜 미디어 민주주의'에 대해 강한 신념 혹은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느 기존 매체보다 영향력이 강하고 즉각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여론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는 바로 유럽에서 비판받고 있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4.0'인 것이다.

유럽의 극우‧극좌 정치세력들이 'SNS에서 개인‧단체에 분노의 정치'(Shitstorm)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난민 등 특정 이슈를 가지고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분노의 정치를 이용한다. 역설적으로 때로는 SNS를 통한 분노의 정치라는 비수에 자신이 찔리기도 한다.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 '파괴의 정치'를 하고 있다.

최근 남성 혐오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 청해부대 최영함이 입항 행사 도중 정박용 밧줄 사고로 순직한 고 최종근 하사를 조롱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같이 포털 온라인상에서 명예훼손, 인격권 침해, 가짜 뉴스가 일상화될 정도다. 네이버와 다음에 올라온 뉴스나 블로그 댓글을 살펴보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과 악다구니성 글에 난무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한국처럼 인격권 및 명예를 침해하는 댓글을 마구 다는 것을 허용하는 나라도 거의 없다. 선진국에선 이를 막기 위한 방안은 3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자율규제다. 즉 포털 등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모니터링 인력ㆍ조직을 두고 사이버 폭력을 막는다. 인공지능‧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으로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는 환경이다. 둘째, 법률을 제정해 강력하게 규제하는 방안이다. 독일‧영국 등이 현재 규제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영국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보도나 댓글의 성격이 사악하다고 배심원들이 판단할 경우 일반 배상액에 100배까지 부담하도록 한다.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신문사가 문을 닫기도 했다.

포털 규제와 공영방송이 해야할 일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것은 기존 언론과 정치인의 책임도 있다. 왜냐하면 '카더라' 등 가짜 뉴스는 음지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아직 진정한 대중매체는 방송이다. 국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알권리를 실현하는 매체다. 대선 때 후보들 간 TV 토론을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민주국가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이 중요하다. 영국‧독일 등 유럽에선 공영방송의 신뢰와 시청률이 대단히 높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공영방송의 내적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내적 자유는 공영방송사에서 우파 프로를 제작하면서 동시에 좌파 프로를 제작하는 바로 사상의 내적 자유이자 경쟁의 원칙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 MBC가 홍준표 전 대표와 유시민 전 장관이 참여 혹은 진행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할 것을 권유한다. 공영방송이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는 좋은 기회다. 국민 소유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또한 홍 전 대표와 유 전 장관은 유튜브보다 공영방송에서 시청자를 두고 경쟁하길 바란다. 선진국 어디에도 유력한 대권 주자들이 유튜브로 각자 방송을 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집 나간 아들이 성숙해져 돌아오듯이, 유튜브에서 연습한 기량을 공영방송에서 꽃 피우길 바란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KBS, MBC 최고 경영진이 나설 차례다.

한때 MBC에서 '정운영의 100분 토론'이 히트를 친 적이 있다. TV 토론 프로그램이지만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사회자였던 정운영 선생은 어눌하지만 최고 지성의 멘트로 '정백토'(정운영을 사랑하는 100분 토론)라는 찬사를 받았다. 정운영 선생의 뒤를 이어받은 사회자가 유시민 전 장관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새로운 사회 비전과 통합을 위해 TV 토론의 부흥 시대를 기대해 본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할 때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는 독일 등 유럽의 교훈이기도 하다. 경제적‧정치적으로도 공영방송이 창조적 파괴를 시도할 때다. KBS, MBC 사장, 홍준표 전 대표, 유시민 전 장관의 발상 전환과 멋진 역할을 기대해 본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오른쪽)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지난 3일 유튜브 공동방송을 통해 공개 '토론배틀'을 벌였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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