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영화 포스터

<기생충> 영화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분명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의도한 게 아니라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어쩌다보니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게 된 사람들. 그들에게 가난은 반지하 특유의 절대 지워지지 않는 꿉꿉한 냄새처럼 뼛속까지 들러붙어 숨을 내쉴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악취를 뿜어낸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가족은 모두 직업이 없다. 인터넷이 필요할 땐 화장실 변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 집 근처 카페에서 나오는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하는 이 가족에게는 식탁 위에 있는 꼽등이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취객의 노상방뇨도 일상이 된지 오래다. 방역 요원이 골목길에 소독가스를 뿌리면 창문을 닫는 대신 "이 참에 돈 안내고 꼽등이 좀 없애보자"며 뿌연 연기로 가득 찬 방 안에서 켁켁거리며 유일한 수입원인 피자 박스 접는 일을 한다. 그럼에도 이들 가족은 서로를 원망하는 일이 없고 심지어 화목하기까지 하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반지하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이들 가족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온다. 아들 기우(최우식)가 친구의 소개로 고액 과외를 하게 된 것이다. 명문대를 목표로 수년째 입시 준비 중인 기우는 미대 재수생인 동생 기정(박소담)의 손재주를 빌려 명문대 재학증면서와 성적증명서를 위조해 으리으리한 박사장(이선균)네 저택의 벨을 누른다. 

유명 건축가가 지은 저택은 존재 자체로 기우를 압도한다. 고요한 정원과 그 위로 쏟아지는 햇살, 먼지 한 톨도 나올 것 같지 않은 단정한 실내에서 기우는 자신이 거기에 익숙한 사람인 것처럼 연기 하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로운 이 상류층 가족의 빈틈을 찾아낸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처럼 예쁘고 그림자를 모르는 심플한 성격의 연교(조여정)는 기우의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가고, 덕분에 기우는 자신의 사기극에 동생 기정까지 동참 시킨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면 절대 엮일 일이 없는 사람들. 아니, 갑과 을로도 엮일 일이 없는 두 가족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예기치 못한 뜻밖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 누군가에게 기생한 삶이 너무도 익숙한 가족은 조금의 망설임이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신들의 사기극을 합리화하는 뻔뻔함을 보인다. 자신들이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가족은 교양과 단정함으로도 자신들의 위선을 감추지 못한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박사장은 가정부 문광(이정은)을 두고, 일도 잘하지만 무엇보다 선을 지킬 줄 아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선'이라는 게 뭘까?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않는 것. 제 분수를 아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은 정작 대놓고 선을 넘어오는 기택 가족의 사기극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불이 켜지면 흩어지는 바퀴벌레처럼 제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발칙한 가족의 거짓말은 점점 과감해지고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과연 이들 가족의 사기극은 무사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 연출 작품 <기생충>은 잘 짜여진 구성의 블랙 코미디로 72회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양 극단에 있는 서로 다른 두 가족의 만남을 통해 감독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를 모두 담아냈다. 인물들을 담는 감독의 시선은 이들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감독은 관찰자인 동시에 전달자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각기 다른 해석을 이끌어낸다. 

충분히 있을 법한 설정에서 유쾌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기괴한 사건들을 만나면서 결코 웃을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평소엔 모르다가 어떤 한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것처럼 <기생충>은 우리의 생각을 환기 시키고, 버젓이 존재함에도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만드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기생충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 봉준호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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