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월 17일은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3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이었다. '임금차별타파의 날'은 남성 정규직 임금 대비 여성비정규직 임금을 1년으로 계산하여 그 날 이후부터 12월 말일까지 여성은 무급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리는 날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해법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9년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가장'으로 상징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위해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현장의 사례를 하나씩 짚어보고자 '생계에 성별은 없다' 기획을 통해 총 9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다. 여덟 번째 글은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박미영이 썼다.[편집자말]
A씨는 제조업 하청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다. 결혼 전에도 제조업에서 일을 했고, 결혼 후에 아이를 키웠던 몇 년과 가족 자영업을 함께 했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다녔다. 현재는 정규직이라 불리고 있지만, 소위 정규직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표에 어울리는(?) 월급과 복지는 없다.

검사와 포장 일을 하는 A씨는 자기 부서 외에 다른 사람의 월급은 알지 못한다. 대부분이 남성 관리자인 사무직들은 연봉을 받는 걸로 이야기를 들었고, 현장직들은 하는 일마다 급여가 다 다른 거 같았다. 그리고 급여를 비밀로 하는 것이 저들이 정해준 '규칙'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월급이 얼마냐?고 묻는 법이 없다. 입사 초기에는 최저임금의 시급에 얼마를 더 보태서 월급을 받았는데, 몇 해 전부터는 매년 최저임금의 시급이 기준이 되어버렸다. 다른 부서는 모르지만 적어도 여자들만 있는 A씨 부서는 그렇다.

여전히 성별에 따라 직무를 나누고, 임금을 준다

"우리는 매년 최저임금 적용이에요. 여기는 근속이 아무리 오래돼도 소용없어요. 남자요? 남자는 주로 기계 일을 보는데 월급은 잘 몰라요. 기계는 일감이 많을 때는 주·야간을 했어요. 포장이나 검사는 주간만 하죠. 그리고 사장 자체가 10원짜리 하나 더 줘도 남자를 올려줘요. 여기도 그런 게 있어요. 여자가 뭘하냐, 이런 식이고. 상여가 있었는데 임금이 오르면서 성과급제로 바뀌었어요. 사장 임의대로 조절할 수 있도록."

 
직종별 취업자 구성비 (출처 : 통계청,「경제활동인구조사」)
 직종별 취업자 구성비 (출처 : 통계청,「경제활동인구조사」)
ⓒ 한국여성노동자회

관련사진보기

 
남자는 힘들어 보이는 기계조작이나 수리 일을 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여자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손쉬워 보이는 포장이나 검사 일을 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러한 장면은 굳이 A씨 사업장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장면이 아니며, 이 장면 뒤에는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고 성별임금격차로 이어진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PwC)가 OECD 회원국의 남녀 평균임금 격차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이 37.4%로, 조사를 실시한 시작부터 지금까지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17) <산업별 성별 임금>에서도 제조업 경우 월 급여는 남성은 3백3십만3천 원, 여성은 2백2십7만3천 원으로 조사되었다.

여전히 성별 위주로 직무나 직종이 나누어져 있고, 그것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주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은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생계보조자, 라는 견고한 사회적 인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도 말 안해요

사회에서 구분해 놓은 여성의 노동은 힘들지 않다는, 위험하지 않다는 편견으로 인해 임금차별 뿐만 아니라 다른 차별도 가져온다.

"기계를 다루면 힘도 들지만, 시간이 많아요. 아이템 따라 다르지만 (재료가) 깎여나오는 시간이 자기 시간이에요. 기계가 힘든 거 같으면서도 그런 장점? 우리는 단순하지만 다 손으로 하니까. 정해진 쉬는 시간, 급한 생리현상을 제외하고는 검사를 하기 위해서 계속 물건을 손으로 집어 올리고 내려놓고 하는 작업을 계속 하지요. 몸이 아파도 말 안해요. 병원 다녀와서 다스리고. 아무도 산재는 안 하지. 거기(산재업체 명단) 올라가면 안 되고. 병원비는 대주는 경우는 있는데 그거는 안 해줘요."
 

A 씨는 일의 특성상 일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작업자세를 몸의 상태나 상황에 맞게 변경할 수 없다. 정해진 수량과 작업대가 있고 같은 자세를 8시간 이상 반복해야 한다. 근골격계 증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몸이 치료를 요구한다는 것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산재를 신청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별 산업재해자 수 및 여성비율 (출처 : 안전보건공단,「산업재해현황분석」)
 성별 산업재해자 수 및 여성비율 (출처 : 안전보건공단,「산업재해현황분석」)
ⓒ 한국여성노동자회

관련사진보기

 

여성노동자의 산재 신청율과 승인율도 낮지만 "여성근로자의 산재보상에 관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근골격계의 경우 같은 허리 염좌로 산재 요양을 받은 경우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요양기간, 입원이나 통원기간이 모두 더 짧았고, 요양급여도 15만원이나 적었다. 여성노동자의 저임금은 낮은 요양급여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여성노동자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경력단절이 아니라 고용단절

"이 일 안 하고 싶은데 갈 데가 있으면 나갔겠죠. 이 나이에 나가면 갈 데가 없죠. 제가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젊은 사람을 원해요. 옛날에는 4자(40대) 애들은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쳐다보고 가죠. 요새는 갈 데가 없으니까 4자(40대) 애들도 와요. 3자(30대) 애들도 와요. 외국 사람들은. 근데 요즘엔 모집도 안 하죠. 있는 사람들 가지고 해라, 이러죠"

A씨는 주로 전자, 휴대폰 부품 만드는 사업장에서 일을 했다. 어디를 가도 어디서 일했냐고 항상 물어보면서도, 그것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A 씨는 '경력단절'이란 용어를 자신의 용어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것은 대졸 여성들에게나 해당되는 걸로 이해하고 있었다. A씨는 얼마 전 자녀가 취업을 해서 한시름 덜었지만, 사정이 있어 집에서 쉬고 있는 배우자를 부양해야 한다. 자꾸 일거리가 줄어서, 원청이 계속 단가를 후려치기해서, 이렇게 자꾸 나빠지기만 하는 현실이 늘 불안하다.
  
중소제조업 주요 직종별 임금조사 보고서 2014, 2017, 2018 (출처 : KBIZ 중소기업중앙회)
 중소제조업 주요 직종별 임금조사 보고서 2014, 2017, 2018 (출처 : KBIZ 중소기업중앙회)
ⓒ 한국여성노동자회

관련사진보기

   
제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남성 위주의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 관리자 대부분도 남성이다. 남성은 기계 조작 및 수리를 하고, 여성은 포장이나 검사를 하고, 그 사이에 임금의 격차는 자연스럽게 서열화된다. 무겁고 힘든 일을 하니까, 비중 있는 일을 하니까, 생계부양자니까, 경력자이니까 하는 이유로, 대부분 남성의 임금은 여성의 임금보다 높다.

그래서 A씨가 하는 엄청난 횟수의 반복노동으로 인한 신체부담, 노동에 대한 책임감, 수년간 경력에 의한 숙련도, 생계부양자 역할, 그리고 무급 가사노동까지, 하지만 그 가치는 온데간데없고 '불안정한 고용, 저임금 여성노동자'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여성노동자도 고용과 건강권 등이 보장된 안전한 일터에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계에 성별은 없다]
① 
여성은 '반찬값' 정도 임금이면 족하다? 나도 생계부양자다
② 임금 인상 말 꺼내니 "여자가 그 정도 받으면 됐지 뭐"
③ "노동 존중 사회 실현한다"더니... 고용부 전화상담원의 호소
④ "남자 혼자 있는데 자신 있냐"... 가스 점검원의 설움
⑤ "결혼해, 남자 밑으로 들어가"라니... 나는 '독립생존' 하고 싶다
⑥ '더 일하고 싶은데'... 여성의 근무시간은 왜 자꾸 줄어드나
방학 중에는 월급 70만원... '여성의 얼굴'을 한 노동의 현실

태그:#고용단절, #경력단절, #남성생계부양자이데올로기, #최저임금, #임금차별타파의날
댓글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여성노동운동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