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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33년을 소방관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나 또한 누구 못지 않게 소방을 사랑하고 조직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국민 여론의 80%가 성원하고 대다수 소방관들의 숙원으로 알고 있는 '소방직의 국가직화'에 반대한다.

왜인가. 많은 이유가 있지만 몇 가지만 살펴 보자.

첫째, 소방업무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사무이기 때문이다.

산불을 제외한 대부분의 화재는 지역 공동체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마을과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소방활동에서 필수적이다. 주민 또는 시민 자원소방대가 모든 국가에 있어서 소방역사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도시인구가 늘고 건축물이 고층화, 심층화 됐다. 이에 비례해 에너지의 소비도 증가하게 되었고, 증가한 만큼 화재의 위험도 커졌다. 시민 자원소방대에서 관설 소방대가 조직되고 오늘날 소방의 수요가 창출된 이유이다.

하지만 화재의 위험이 커지고 발생 빈도가 늘었다고 하여 화재를 국가가 지휘하고 감독할 정도는 아니다. 발생하는 화재의 90%는 하나의 소방관서에서 지휘하고 통제가 가능한 규모다. 나머지 10% 정도는 '출동 3단계' 화재인데, 이 또한 3개 소방관서의 비상대응 가능한 화재 수준이다. 국가 소방청의 지휘권이 미칠 여지조차 없는 화재다.

둘째, 지방분권화에 역행한다.

지방분권화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다. 비대한 국가 권력을 지방에 분권함으로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완성하겠다는 것 아닌가. 오랫 동안 국가가 독점해 왔던 경찰 권력을 자치경찰화 하겠다는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런 마당에 권력기관도 아닌 서비스 업무에 속한 소방을 지방분권화 정책의 반대로 국가직화 하겠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소방정책의 획일화를 부른다.

소방정책은 지역 여건과 소방환경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공장이 많은 도시와 상업 또는 주거의 도시의 소방정책은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 해당 자지단체의 실정에 맞는 소방력 기준을 지역 실정에 맞게 개발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미국은 연방 재난청(FEMA) 산하에 연방 소방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지휘 감독권은 주(states)에 미치지 않는다. 주 정부 또한 각 카운티(County)나 도시(City)의 소방정책에 관여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 도시나 카운티마다 지역 특성과 소방환경에 맞는 조직과 제도를 가지고 있다.

지진 등 자연 재해가 많은 일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 소방청은 있으나 각 현과 도시의 재난대응을 지원하고 재난 정보를 수집 전파할 뿐 지휘 감독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철저하게 기초자치화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대응능력을 유도하고 있다.

서구 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대다수 지역 자치 실정에 맞는 소방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는 이를 지원하고 후원한다. 

넷째, 소방직 국가화는 소방의 관료화를 부른다.

하위 규정으로 제도적 보완은 예상지만 전체적으로 지휘 통제권이 국가에 귀속되면 소방청이 인사와 예산권 갖게 된다. 일선 소방관들은 예외일 가는성은 있지만 지역 재난대응을 지휘하는 소방서장급은 소방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화재와 재난에 전념해야 할 일선 지휘관들이 인사권에 휘둘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조직이 획일화 되고 비대해지면 나타나는 현상이 조직의 관료화다. 그리고 인사권과 예산권 장악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소방직의 국가직화 핵심 이유는 예산이다. 시, 도간 재정 자립도 편차로 인해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소방력 기준에 미달하는 인원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소방서비스를 제대로 수혜받지 못하는 주민에게 돌아간다는 논리다.

예산이 문제라면 소방 세수를 개발해야

소방 세수 확보는 소방정책의 오랜 과제였다. 소방 세원이라야 지방세인 소방시설 공동세가 전부이다. 열악한 세원으로 국민들의 소방 수요욕구를 채우는 데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문제는 세수 확보 아닌가.

우리나라 화재 3대 요인이 있다. 전기적 요인과 담배불, 그리고 위험물이다.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이제라도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소방직의 국가화에 앞서 이들 3대 요인에 소방세를 부과하여 부족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태그:#소방직 국가화, #관료화, # 자치사무, #소방세수, #소방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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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공무원으로 33년을 근무하고 서울소방학교 부설 소방과학연구소 소장직을 마지막으로 2014년 정년퇴직한 사람입니다. 주로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난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과거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방전술론' '화재예방론' '화재조사론' 등을 집필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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