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시선- 커피 홀릭 대한민국 >

<다큐 시선- 커피 홀릭 대한민국 > ⓒ ebs

 
커피 시장 규모 11조 원, 1년 동안 한 사람이 소비하는 평균 커피가 512잔. 한국의 커피 소비량은 대만의 72잔, 일본의 195잔을 훨씬 앞질렀다. 20대만 놓고 보면 571잔으로, 미국의 548잔보다 앞섰다. 이 정도면 '커피 홀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커피에 푹 빠졌을까? 그 이유를 '자칭 타칭 커피 중독자' PD가 발품을 팔아가며 찾아 나섰다.

23일 방송된 <다큐시선> '커피 홀릭 대한민국' 편에 나온 김포 공항 화물청사 트럭 운전사인 박지용씨는 밤샘 운전으로 화물을 나르는 '잠을 잊은 그대'이다. 그에게 잠을 잊기 위한 필수템은 다름 아닌 '커피'다. 그의 트럭 한쪽에 놓인 아이스박스 안에는 집에서 타온 블랙 커피와 캔 커피가 즐비히다. 주행중에는 차를 대고 살 곳이 마땅치 않아 언제나 '비상 식량'처럼 커피를 준비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비상 식량' 커피와 별개로 휴게소에서 식사 후 마시는 달달한 믹스 커피는 그의 일과 중 결코 뺄 수 없는 옵션이다.

그는 왜 수시로 커피를 마실까? 남들이 자는 시간에 고속도로를 달려 빠른 시간 안에 화물을 날라야 하는 그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졸음 운전'이다. 졸음이 오면 정신이 몽롱해질 뿐 아니라, 반응 속도가 느려 자칫 대형 사고의 위험이 크다. 장거리 밤샘 운전이 곧 수입과도 연결되는 그의 직업적 특성이 커피와 그를 꽁꽁 묶었다.

트럭 운전사 박지용씨 만이 아니다. 야구 학원 강사를 하면서 학생들을 차로 이동시키는 일도 동시에 하는 김태완씨 역시 '커피에 중독된 남자'다. 커피를 마셔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깨어나는 것 같다는 김태완씨의 경우, 하루 종일 커피를 달고 산다.

배우가 꿈이었지만 생활을 위해 야구강사를 시작한 그에게 어린 학생들을 차에 태워야 하는 상황과 계속되는 훈련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습관처럼 커피를 들이킨다. 그는 제작진의 실험 요구에 커피를 끊어보지만, 이내 잠에서 깨지 않은 듯 하루 종일 몸이 무겁고 나른한 상태라고 호소한다.

군 필수품, 업무 필수품이었던 커피
 
 <다큐 시선- 커피 홀릭 대한민국 >

<다큐 시선- 커피 홀릭 대한민국 > ⓒ ebs

 
'커피를 왜 마시는가'란 이유를 조사한 통계를 보면, 33%가 졸음을 쫓기 위해, 25%가 식후, 12%가 업무 집중을 위해서라고 한다. 이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듯 한국 사람들 상당수가 '각성제'로서 커피를 선택하고 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커피의 전 세계적 확산에는 바로 이 '각성제'로서의 역할이 컸다. 예멘을 통해 메카로 전파된 커피는 예배를 드릴 때 졸음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유럽으로 전파됐다. 미국 남북 전쟁 당시엔 북군의 잠을 쫓기 위한 수단으로 커피가 대량 공급되었다. 당시엔 소총의 밑동에 커피를 갈 수 있는 그라인더를 달아, 졸리면 커피를 갈아서 먹을 수 있게 했다.

특히 1946년 인스턴트 커피 등장 이후 1,2차 세계 대전에서 커피는 군 필수품이었다. 이후 장시간 반복 노동을 지속하게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커피의 카페인은 잠을 깨는 '각성제'로서 기능했다.

한국에선 일찍이 고종이 커피를 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후 미군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커피는 1960년대 '산업화'와 함께 수면 시간을 줄이고 노동에 집중하기 위한 '각성제'로써 산업 현장의 필수 품목이 되었다. 특히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은 커피의 개별화, 대중화를 선도하며 커피 문화의 평등화를 이루었다. 
  
문화가 된 커피 
 
 <다큐 시선- 커피 홀릭 대한민국 >

<다큐 시선- 커피 홀릭 대한민국 > ⓒ ebs


시작은 '각성제'였지만 어느덧 커피는 한국 사람들에게 '문화'가 되고 있다. 믹스 3개에 설탕 두 스푼을 넣은 커피는 달아도 너무 달지만, 충북 음성 맹동면 통통리 주민들에게 고단한 농사일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꿀맛'이었다. 심지어 이곳에선 처음 커피가 등장했을 때 그 쓴맛 때문에 회충약 대신 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랬던 커피가 이젠 마을 사랑방의 없어서는 안될 단골 메뉴가 되었다. 

통통리 손현수 이장님은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 농약사에 들러 커피 한 잔, 동네 이 형님, 저 형님 불러서 그 분들 오실 때마다 같이 한 잔, 조합 들러서 한 잔, 노인정 들러서 한 잔, 농사일하다 새참으로 한 잔, 그렇게 하루 7~8잔의 커피를 마신다. 그는 이것을 '정'이라 정의한다. 

전주 한옥 마을에 아직도 생존해 있는 1952년 개업한 '삼양 다방'. 그곳은 '다방' 역사의 산증인이다. 쓴 커피를 아침에 마시면 속을 버릴까봐 계란 노른자를 함께 띄워 주던 시절, 다방은 문화의 공간이었다. 다방은 핸드폰이 없던 시절 '연락처'가 되었고, '선'을 보는 자리도 되었으며, '사업'도 할 수 있었던,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인스턴트 커피'의 시절을 지나 원두 수입이 증가하고 스타벅스 등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등장하면서 다방 대신 카페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조용한 도서관이나 편한 집보다 카페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는 '카공족'이 등장했고, 친구들과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카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커피는 '사회 생활'의 도구가 된다. 친구들과 함께 인터넷 방송국을 운영하는 최승구씨는 커피를 많이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잠을 이루지 못해 웬만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통통리 이장님이 동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커피 한 잔 하듯, 우리 사회 커피 인심은 여전하다. 커피를 굳이 마시지 않으려 하는 최승구씨의 사회 생활은 매번 눈치가 보인다. 직장인 30% 이상이 점심 식사 후 함께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일상인 세상이라서일까. 최씨의 경우 '억지로' 마시게 될 때도 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이 늘어났다지만 한국 사회 성인들의 여가 활동 72%가 TV 시청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카페'는 우리 시대 중요한 문화의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인기가 젊은층들 위주로 집중되는 현실을 볼 때, 아무래도 한국인들의 '커피 홀릭'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다큐 시선- 커피 홀릭 대한민국 >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