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어느 봄날, 듣게 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토요일 아침이었는데, 제가 직접 뉴스를 보기 전까지는 믿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며 눈물지었던 기간은 아픈 기억으로 남았죠.

올해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된 해입니다. 그에 발맞춰 그의 뜻을 기리는 영화들이 하나둘씩 공개되고 있습니다. 서거 이후 지금까지 나온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다큐멘터리들도 의미가 있었지만, 올해 나온 작품들도 각기 다른 개성을 갖추고 관객들과 만날 준비해 왔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부산 경남 지역의 민영 방송국 KNN이 제작한 <물의 기억>입니다.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짓는 전직 대통령
 
 봉하 마을 들녁에서 메뚜기 잡는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 마을 들녁에서 메뚜기 잡는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재단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 마을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유례없는 결정은 당시에 높이 평가받았죠.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것'이란 소탈한 한 마디에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의 기억>은 제목 그대로 '물'에 초점을 맞춥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 마을로 귀향한 결심 한가운데에 물이 있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죠. 대통령이 고향에 돌아와 맨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마을에 흐르는 화포천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었고, 그가 계획했던 자연 농법의 핵심 역시 깨끗한 물이었으니까요.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논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세밀하게 담아낸 것입니다. 제작진은 1년여의 촬영 기간 동안 봉하마을 논의 사계를 카메라에 담으려 했습니다. 초소형 저속 카메라를 활용하여 맨눈으로 절대 보기 힘든 작은 생물들의 모습과 느리게만 진행되는 식물의 생장을 포착하여, 그 안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황새가 미꾸라지를 잡아먹는 장면이라든지 우렁이 알에서 깨어나는 장면, 거미와 사마귀의 사투 등 다른 영상물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장면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농약이 뿌려졌을 때 생물들이 겪는 참혹한 변화 역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깁니다. 깨끗한 물에서는 그토록 활동적이던 생물들이 죽음을 맞고 부패하게 되는 과정은, 깨끗한 환경이 주는 혜택에 대한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부 과하게 들어간 음악과 톤 조절이 아쉬운 내레이션 등이 차분한 감상을 방해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독특하고 힘 있는 개별 장면들을 좀 더 잘 살릴 수 있는 구성과 전달 방식을 취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와 닿는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슬픔과 설움에서 희망과 꿋꿋함으로
 
 알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우렁

알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우렁 ⓒ 롯데엔터테인먼트

 
서거 당시부터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 하면 슬픔과 설움이 밀려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가 현직 대통령으로서 겪었던 고초와 퇴임 이후에 겪어야 했던 수모가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가 생전에 정치 사회적으로 이루지 못했던 꿈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암울함과 대비되면서 더욱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감정을 추스르고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되돌아보면, 그를 기리는 방법은 정치 외에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물의 기억>이 잘 짚어낸 것처럼 후손에게 깨끗한 환경을 전해주겠다는 꿈도, 생전에 어떤 일이 있어도 굴하지 않았던 의지와 희망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사랑도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었으니까요.

올해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입니다. 노무현 재단에서도 노무현 대통령 하면 슬픔과 비통함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꿋꿋함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방향 전환이 기쁘고도 반갑습니다. 그가 우리 곁에 없는 것이 여전히 안타깝지만, 그가 꿈꿨던 세상에 한 발이라도 더 다가가는 것은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이니까요.
 
 영화 <물의 기억>의 포스터

영화 <물의 기억>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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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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