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콘서트 1000회 특집

개그 콘서트 1000회 특집 ⓒ KBS2

   
KBS <개그콘서트> 1000회 기념 방송이 시청자들을 만난 다음날인 20일, 몇몇 매체들은 '<개그콘서트> 시청률이 2년여 만에 8%를 넘겼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5~6%를 왔다 갔다 하는 최근 시청률 추이를 볼 때, 기사감이 될 내용이긴 했지만 왠지 모를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기사였다.

<개그콘서트>는 한때 시청률 20%를 넘기는 KBS 2TV의 효자 프로그램이었다. 아니 대한민국 코미디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제 <개그콘서트>(아래 <개콘>)는 효자 프로그램이 아닌 '위기'의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린 <개콘>은 1999년 9월 4일 밤 8시 55분 그 대장정의 막을 올렸다. 당시만 해도 대학로에서 화제가 되었던 개그맨들의 공개 코미디를 무대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김미화, 백재현, 김영철, 심현섭, 김대희, 김준호 등이 외계인 같은 단체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코너를 이어가는 등 풋풋함이 살아 있는 무대였다. 

세월이 언제 그렇게 흐른 걸까. 조촐했던 무대는 화려하게 바뀌었고 이제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이태선 밴드는 오래전 그때처럼 프로그램의 문을 열었다. 그들의 음악을 배경으로 이제는 역사가 된 다수의 개그맨들이 <개콘> 1000회를 위해 무대에 올랐다.

추억 소환, 1000회 
 
 개그 콘서트 1000회 특집

개그 콘서트 1000회 특집 ⓒ KBS2


예전에 <개콘>이 그랬듯 이날의 문도 김대희를 비롯한 개그맨들의 시원하고 화끈한 난타 공연으로 열었다. 연배에 따라 선배와 후배들이 함께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듯한 오프닝 무대였다.  

이를 이어받은 건 '안돼!', '고뤠~' 등의 유행어로 화제가 되었던 김원효, 김준현, 송병철의 '비상 대책 위원회'였다. 김원효와 김준현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2011년 당시 화제가 되었던 유행어에 살신성인 '화사' 코스튬, 그리고 깜짝 등장한 '수다맨' 강성범의 숨 쉴 틈 없는 '지하철 노선도'까지 덧붙이며 '추억'을 소환한다.  

그렇게 1000회를 맞이한 <개콘>은 윤형빈의 돌아온 왕비호에, 더 섬뜩해진 갸루상 박성호 등의 <봉숭아학당>을 비롯하여, 안영미, 정경미, 강유미 등의<분장실의 강선생님>, 우리에게는 '안어벙'이란 말이 더 익숙한 안상태, 김진철의 <깜빡 홈쇼핑>, 자리를 비운 김준호 대신 김대희가 그 자리에 앉아서 더 씁쓸했던 김대희-유상무-이승윤 등의 <씁쓸한 인생>, 후배들이 애를 써봤지만 명불허전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의 <사랑의 가족>등 그동안 시청자들에게 인기 있었던 코너와 그 시절의 개그맨들을 소환했다. 
 
 개그 콘서트 1000회 특집

개그 콘서트 1000회 특집 ⓒ KBS2

 
오랜만에 만난 안상태가 그 시절과 같은 대사를 읊는 김진철에게 '많이 늙었군요'라고 덧붙이듯, 그 시절 무대를 펄펄 날던 개그맨들도 이젠 예전같지 않았다. 김준현의 군복은 정말 터질 것 같았고, 땀은 거의 폭포 수준이었다.

새로 여의도에 뚫린 9호선이 그 시절엔 없었다며 애교스럽게 피해가는 강성범의 지하철 노선도가 흥겹기보다는 '그의 심장'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옛 가요를 들으면 그 시절 내가 그걸 좋아했는지와 관계 없이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처럼, 이날 <개콘>도 그랬다. 과거 그 코너를 좋아했는지 안 좋아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건만, '추억'이란 단어와 엮어 소환된 옛 코너들은 보고 있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개그 콘서트여, 영원하라'를 외치는 박준형의 눈에 반짝이는 물기를 봤을 뿐인데, 마음이 먹먹해졌다.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짐을 따라/ 그대 사랑하는 마음이 희미해진다면/ 여기 적힌 먹빛이 사라지는 날/ 나 그대를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개콘> 1000회 특집을 보는데 워즈워드의 이 시가 떠올랐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이 시가 등장했던 청춘 영화 <초원의 빛>이 떠올랐다. 돌아올 수 없는 빛의 시간, 아마도 1000회 특집 <개콘>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닐까 싶다. 

희미해져가는 영광의 빛

안타깝게도 1000회 특집에는 '현재'가 너무도 희미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개콘>의 코너 <그만했으면회>는 DJ DOC까지 등장시키며 안간힘을 썼지만, 코너의 정체를 알기 어려웠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이 주인공을 점점 더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은 <개콘>에서 으레 볼 수 있었던 설정이다. 하지만 감옥에 갇힌 주인공도, 연달아 면회를 주선하는 교도관도, 면회오는 인물들도 이렇다하게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애초 연이어 면회할 수 없는 상황을 억지로 이어붙여 해프닝을 만드는 이런 식의 코너가, 출연자들의 연기나 애드리브조차 뒷받침되지 못하는 이런 코너가 그나마 지금 방영되고 있는 <개그 콘서트>의 대표 코너라는 사실이 아쉽다.

최근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콘>의 위기에 대해 제작진 등은 코미디 소재 제한이나 사회적 분위기 등을 언급하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변화에,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잊힐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20년이란 세월처럼, 우리 사회는 그동안 많이 성숙해지고,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한 단계 올라갔다. 과거 다른 피부 색을 가진 이들을 소재로한 개그들이 최근 들어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판은 받는 것을 떠올려볼 때, 이런 상황은 긍정적이고 우리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개콘>이 과거의 인기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과거 선도적으로 내놓았던 코너들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개그 콘서트 1000회 특집, 전수경

개그 콘서트 1000회 특집, 전수경 ⓒ KBS2


1000회 특집으로 등장했던 안영미, 강유미 등의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당시엔 파격적인 코너였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여성 개그맨들이 과감하게 자신의 얼굴과 온몸에 '페인팅'과 분장'을 한 뒤 적극적으로 웃음을 유도하면서 여성의 자기 주도적 개그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런가 하면, '못생겼는데 못생겼다고 말 할수 없다'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했던 <사랑의 가족>은, 못생겼다는 '사실'의 자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넘은 당당함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결국 그간 <개그 콘서트>의 코너들이 사랑받았던 것은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그걸 한 발 앞서 발빠르게 '개그'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개그 콘서트>의 존립을 걱정하기에 앞서, 과연 그 '정신'을 살리고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간이다. 

더불어 젊은 후배 개그 스타들의 부재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발군의 존재감을 떨친 <시청률의 제왕>의 조재윤과 전수경의 연기력은 타 개그맨들에게 숙제를 던져줬다. 1000회 특집은 그 무엇보다 선배와 후배,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져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과거'에 기댄 1000회는 희미해져가는 영광의 빛만 쫓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개그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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