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 2막에서 열연중인 소프라노 김순영(파미나 역, 왼쪽)과 소프라노 소니아 그라네(밤의 여왕 역).

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 2막에서 열연중인 소프라노 김순영(파미나 역, 왼쪽)과 소프라노 소니아 그라네(밤의 여왕 역). ⓒ 문성식 기자


국립오페라단의 <마술피리>가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지난 3월 31일 마지막 공연을 마쳤다.
 
해외공연인 뮤지컬 <라이온 킹>이 1월부터 3월말까지 오페라극장에서 장기간 공연하면서, 예술의전당 상주단체인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첫 시즌공연을 토월극장에서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30일 공연을 보러갔다. 안타까웠던 마음과는 달리,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아쉬운 마음은 사라졌다. 토월극장도 크기가 작지 않았고 노래나 오케스트라 반주도 잔향이 덜한 때문인지 명확하게 들리는 느낌에 "어? 토월극장에서 오페라 해도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 뢰스너 지휘의 카메라 안티콰 서울의 명징한 연주와 소프라노 김샤론, 소프라노 손진희, 메조 소프라노 김향은 3인 시녀 역 성악가들의 맑고 아름다운 3화음 덕분에 금새 토월극장 오페라에 몰입하게 됐다.
 
이어 바리톤 안갑성 파파게노가 부르는 '나는야 새잡이' 아리아는 익살스러운 닭 분장과 바리톤 음역으로서는 밝은 톤, 정확한 타이밍에 부는 뿔피리로 극을 경쾌하게 이끌었다. 이어 시녀들, 타미노왕자, 파파게노 사이에 꽤 많은 양의 독일어 징슈필 대사가 이어지는데 전광판의 자연스러운 우리말 번역과 성악가들의 발음과 연기로, 우리말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타미노 역 허영훈의 '이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아리아는 파미나 사진을 보고 반한 기쁨이 가득 느껴졌다. 감미로우면서도 밝고 힘찬 음색에 블랙톤의 긴 장화와 재킷은 흡사 어린왕자 같은 모습이어서 노래에 더욱 빠져들게 했다. 여주인공 파미나 역 소프라노 김순영은 뮤지컬에서의 활약에서 다져진 연기와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 사라져버렸네' 아리아 등에서 맑고 선이 고운 노래를 잘 선보였다. 타미노와 파미나의 진실함과 아름다움, 동심이 극의 중심에서 우아한 모짜르트를 잘 대변했다.

작년 국립오페라단 <헨젤과 그레텔>을 연출한 크리스티안 파데는 무대, 의상, 분장을 맡은 알렉산더 린틀과 함께 이번에도 동화같은 분위기로 무대를 꾸몄다. 자라스트로가 위치한 왼쪽의 '선'에 태양, 밤의 여왕인 오른쪽 '악'에 초승달을 표현했고, 1막에 시녀들과 파파게노, 타미노가 5중창 할 때 지구본을 든 모습, 주제인 마술피리를 장막에 커다랗고 반짝거리게 해 눈에 띄게 한 점, 타미노가 마술피리를 들고 노래할 때 원숭이, 사자, 호랑이 등 지구상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점 등이 선과 악으로 대립되는 것의 화합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더욱 뚜렷하게 살려주었다.
 
 1막 마지막 합창이 웅장하다. 맨 왼쪽부터 소프라노 김순영(파미나 역), 테너 허영훈(타미노 역), 베이스 양희준(자라스트로 역), 바리톤 안갑성(파파게노 역).

1막 마지막 합창이 웅장하다. 맨 왼쪽부터 소프라노 김순영(파미나 역), 테너 허영훈(타미노 역), 베이스 양희준(자라스트로 역), 바리톤 안갑성(파파게노 역). ⓒ 문성식 기자

 
1막 모두의 웅장한 합창 후 2막 시작에서 자라스트로 역 베이스 양희준은 붉은 정장에 큰 키와 몸집에서 오는 카리스마를 갖추며 '이 신성한 전당에서는 복수를 생각할 수 없어'의 극저음을 중후하고 안정된 톤으로 전달하며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모노스타토스 역 테너 김재일의 분장과 힘찬 음색, 대변인 역 베이스 한혜열의 탄탄한 저음 역시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제는 공연 4일 동안 원 캐스팅으로 진행된 밤의 여왕 역 소니아 그라네였다. 이 역은 2막에서 딸에게 선으로 대변되는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하는 악의 화신의 모습을 악기적 기교로서 성악으로 선보이는 대단한 역할이다. 그 유명한 '나의 가슴 분노로 불타올라'의 라파라도파도레시b 음은 한 배음으로 쭉 뻗어가야 하는데, 마치 소니아 그라네는 듣는 데 다소간 불안했다. 교대없이 한 달 이상 한국에 머무르며 매일 연습하고 4일 공연을 하다보니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밤의 여왕의 카리스마는 연출과도 연결되는데, 1막 등장때에도 이 여왕이 할머니처럼 지팡이를 짚고 나오는 콘셉트라 의아했다. 그런데 이 2막 최고 절정의 아리아에서는 게다가 바지를 입어놔서, 모든 기교의 아리아로 딸에게 "내 말 거스르지 마!"라고 엄포를 놓고 획 돌아서서 퇴장하는 카리스마가 훨씬 덜할 수밖에 없었다. 바지 입은 다리선이 보였기 때문이다. 보통의 풍성한 드레스이면 의상 안에 감춰졌을 여왕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이것에 의도한 숨은 뜻이 있겠지만, 우리의 고정관념과 기대 때문에 파데 연출의 어떤 점은 지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또한 극 후반부에 우리의 파파게노에게 생긴 연인 파파게나가 중국 경극풍의 가면을 벗고 모습을 드러낼 때, 겉옷까지 하나 벗는 설정은 다소간 정서적으로 안 와닿았다. 물론 곧 예쁜 모습의 파파게나 역 소프라노 박예랑의 맑은 음색의 기교와 힘찬 고음으로 짧지만 인상을 남겼던 파파게노와의 듀엣으로 잘 전환되었다.
 
3명의 시녀와 함께 극중후반에는 세 명의 소년들 (cpbc소년소녀합창단-김수정, 장예나, 한수안, 이재호)는 '지금 또 다시 당신들을' 중창을 지구본을 서로 패스하며 어여쁘게 불러 만족감을 주었다. 칼을 들고 방황하는 파미나를 구하고,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를 연결해주는 등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1막과 2막 마지막의 합창들은 모차르트 특유의 웅장함과 고귀함, 인간애를 잘 살려주었다. 이번 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 공연은 훌륭한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 무대, 연출에 몰입해서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우리가 신으로서 밤의 여왕의 카리스마를 기대하듯이, 국립오페라단에게는 우리 기대 이상 최고의 카리스마를 기대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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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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