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 전 IBK기업은행 감독

이정철 전 IBK기업은행 감독 ⓒ 박진철

 
명예로운 쉼표. 이정철 감독이 8년 동안의 화려한 업적을 뒤로하고, IBK기업은행 감독직에서 내려왔다. 변화를 시도할 때가 됐다는 구단의 판단, 쉴 때도 됐다는 이 감독의 생각이 어울어진 결론이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2일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이정철 감독의 보직을 '고문'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구단은 "이정철 감독이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2018-2019 시즌이 끝난 후부터 팀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구단 차원에서 변화와 혁신에 대한 대내외 주문이 많았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구단은 또 "이 감독은 2011년 8월 신생팀인 IBK 배구단의 감독을 맡아,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단 기간인 창단 2년 만에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며 "V리그 8시즌 동안 3번의 정규리그 우승, 3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한 국내 최고의 감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김창호 단장도 "팀을 명실상부한 명문구단으로 도약시킨 이정철 감독의 노고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IBK기업은행 구단은 이 감독의 2선 후퇴 결정이 성적 부진에 따른 경질이 아니라는 점, 팀 창단 이후 단기간에 여자배구 최강자로 이끈 명장이라는 점을 감안해 예우를 갖추는 모습을 보였다.

신생팀으로 3회 우승... 6년 연속 챔프전 '독보적 기록'

이정철 감독이 지난 8년 동안 IBK기업은행 감독으로서 달성한 업적은 말 그대로 'V리그 전설'로 남게 됐다. 전무할 뿐만 아니라 '후무'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2011년 8월 IBK기업은행 여자 프로배구단이 공식 창단할 때부터 올 시즌까지 감독을 역임했다. 그동안 V리그는 총 8시즌을 치렀다.

창단 후 첫 시즌인 2011-2012시즌은 정규리그 4위를 기록했다. 비록 봄 배구인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고교생 신인 선수 위주로 구성된 신생팀을 이끌고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다음 해인 2012-2013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IBK기업은행 황금기'를 열었다. 창단 후 2번째 시즌 만에 V리그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제패하면서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올 시즌까지 V리그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 KOVO컵 우승 3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V리그 챔피언결정전 3회 우승은 여자배구 감독으로서 최다 우승이자 유일한 기록이다. 2회 우승 기록도 황현주 전 현대건설 감독, 박삼용 전 KGC인삼공사 감독 2명뿐이다.

이정철 감독의 업적 중 단연 최고는 2012-2013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6년 연속'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여자배구에서 깨지기 어려운 대기록이다.

이 감독은 V리그 감독으로서 총 240경기를 치렀고, 157승 83패를 기록했다. 승률 65.42%로 역대 1위에 올라 있다.

외국인 선수 '불패 신화'... 꼴찌로 뽑아도 최고 활약

이정철 감독의 역량 중 높은 평가를 받는 대목은 또 있다.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 단연 최고의 성과를 냈다. 이 감독이 선발한 IBK기업은행의 외국인 선수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외국인 선수를 자유계약으로 선발했던 시절뿐만 아니라,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드래프트)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맨 꼴찌 순번(6순위)으로 선발했으면서도 매년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맹활약했다. 이는 IBK기업은행이 6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이 감독이 선택한 외국인 선수는 알레시아(196cm), 카리나(192cm), 데스티니(195cm), 맥마혼(198cm), 메디(184cm), 어나이(188cm)였다. 팀 성적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개인적인 기량과 기록은 모두 V리그 최고의 선수였다. 메디와 맥마혼은 IBK기업은행에서 활약한 이후 미국 성인 대표팀 1군에도 발탁되는 영광을 누렸다.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감안하면, 외국인 선수 선발과 관리·육성 부분은 감독의 역량을 평가할 때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외국인 선수 선발과 관리를 잘 못해서 팀의 1년 농사를 망친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여자배구 인기 기폭제... 리우 올림픽 출전과 8강

이정철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여자배구 인기 상승에 큰 기여를 했다. 2016 리우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아,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당당히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리우 올림픽 본선에서도 숙적 일본을 제압하고 8강에 진출했다.

리우 올림픽은 많은 스포츠 전문가와 프로구단 관계자들까지 여자배구가 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 상승으로 이어진 가장 큰 발판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여자 프로배구단의 핵심 관계자는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도와 인기 상승세가 확연하게 느껴졌다"며 "올림픽 출전은 다른 국제대회와 차원이 다르고, V리그 흥행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자배구는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 올림픽 연속 출전을 통해, 김연경을 비롯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의 국민적 인지도와 인기가 급상승했다. 이는 V리그 여자배구의 TV 시청률과 관중수가 매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데 큰 발판이 됐다. 

특히 2016 리우 올림픽 때는 출전권을 따낸 한국 단체 구기종목이 더욱 줄어들면서 여자배구가 지상파 방송사의 집중적인 중계와 조명을 받았다. 여자배구가 주요 국제대회 선전으로 쌓은 인기를 V리그에서 더욱 폭발하도록 이끈 선수와 감독의 노력도 주효했다.

물론 올림픽 출전과 성과가 김연경이라는 세계 최고 완성형 공격수의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감독의 역할도 평가해줄 수밖에 없다. 좋은 선수가 많아도 감독이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없다면, 올림픽 출전조차 못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호랑이 감독' 호불호... 휴식 길지 않을 수도

이정철 감독에게 영광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V리그 여자배구 감독 중에서 '호랑이 감독' 캐릭터를 갖고 있다. 작전 타임 때 국내 선수는 물론 외국인 선수에게도 강하게 질책하는 장면은 그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는 시대에 맞지 않는 리더십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 감독 입장에서도 과도한 부분은 없었는지 돌아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의 정신력과 경기력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장악력 없이는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리더십이 스포츠에서 최선이라고 볼 수도 없다. 팀 내에서 선수들을 이끌어갈 기본적인 권위조차 확립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이 편하면, 성적도 편안하게 하위권을 맴돌 수도 있다. 어떤 리더십이든, 프로 스포츠에서 성적이 나쁘면 팬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 역시 감독과 선수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다양한 평가를 뒤로하고, 이정철 감독은 8년 만에 휴식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그러나 배구계에서는 휴식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들은 프로구단이 감독을 교체할 경우, 이정철 감독은 영입 '0순위'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V리그와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서 남긴 업적과 역량, 큰 과오 없이 자기 관리를 해온 측면, 감독에서 물러날 때 예우를 받으며 마무리한 점들 때문이다. 실제로 전직 감독 중에 이런 케이스가 거의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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