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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했어요?"
"아니요. 원래 몸매가 그런 건데요."
"아~"
"그리고 얘는 수컷이거든요!"


내가 반려견 '망고'를 데리고 공원 산책을 하다가 가끔 듣는 말이다. 망고는 3살 조금 넘은 웰시 코기다. 몸은 긴데 다리는 짧고 목은 굵어서 뚱뚱하다고 오해를 받는다.
 
우리집 반려견 망고. 몸은 긴데 다리는 짧고 목은 굵어서 뚱뚱하다고 오해를 받는다.
 우리집 반려견 망고. 몸은 긴데 다리는 짧고 목은 굵어서 뚱뚱하다고 오해를 받는다.
ⓒ 전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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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같이 쫑긋 선 귀, 눈에 흰자가 많아서 감정 표현이 풍부해 보이고, 입 꼬리가 올라가 웃는 표정의 얼굴은 사랑스럽다. 영국 옛이야기에 요정이 타는 안장이었다는 하얀 털이 풍성한 목, 고양이 못지 않게 두툼하고 귀여운 발 그리고 꼬리는....... 없다.

웰시 코기는 꼬리가 없다

꼬리가 없으니 통통한 엉덩이가 도드라지고 유난히 실룩대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인 털이 갈색인데 엉덩이가 하얘서 '식빵 엉덩이'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웰시 코기는 원래 꼬리가 있는 종이다. 가축을 모는 목양견이었던 웰시 코기는 소나 양의 발에 밟히지 않도록 꼬리를 잘라주었다고 한다.

꼬리가 아주 짧게 태어나기도 하지만, 대개 생후 1주일 전후로 꼬리를 자른다. 현재 많은 나라에서 꼬리 자르는 수술을 금지하고 있지만, 꼬리가 없는 귀여운 모습 때문에 아직도 대부분 마취도 없이 웰시 코기의 꼬리를 자른다.
 
우리는 망고가 생후 1개월 됐을 때 데려왔는데, 이미 꼬리가 없었다.
 우리는 망고가 생후 1개월 됐을 때 데려왔는데, 이미 꼬리가 없었다.
ⓒ 전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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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망고가 생후 1개월 됐을 때 데려왔는데, 이미 꼬리가 없었다. 망고는 다른 개들을 보면 모른 척하거나 멀찍이 돌아갈 때도 많다. 나는 망고의 부족한 사회성이 꼬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강아지들은 꼬리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기쁘고 반가울 때는 흔들고, 무서울 때는 내린다. 고양이와 소통이 힘든 것도 고양이는 꼬리 사용하는 것이 개와 반대라서 그렇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으로 치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을 만났을 때의 느낌일까?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꼬리가 없는 망고에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이 강아지 영국 여왕이 기르는 개 맞죠?"
"네~"
"그럼, 아줌마도 여왕이네요~"


망고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 보면 이런 실없는 농담을 듣기도 한다. 웰시 코기는 영국 황실에서 기르는 개(royal corgi)로도 유명하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2세는 신혼여행에도 반려견 웰시 코기 '수잔'을 데리고 갔다 한다. 사실 이름도 매우 영국답다. 웰시 코기의 웰시(welsh)는 영국 웨일스 지방을 말하고, 코기(corgi) 역시 '개'를 의미하는 웨일스어 'Corrci'에서 유래했다.

웨일스 지방은 대부분이 고지(高地)라서 농업보다는 목축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영리한 목양견이 필요했다. 가축의 다리 사이로 빠르게 다닐 수 있고, 가축 발에 채지 않도록 개량된 다리 짧은 개가 웰시 코기다. 소나 양 떼 사이를 빠르게 오가던 개였기 때문에 다른 개들에 비해 활동량이 많다.

망고도 하루 한 번 꼭 산책을 시키고 있다. 산책하고 와서도 놀아달라고 공을 물고 오는 망고의 지치지 않는 체력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 때도 있다. 웰시 코기는 가축을 지키던 습성 때문에 책임감이 강하다고 한다.

망고도 가족들이 장난을 치면 싸우는 줄 알고 와서 말리는데 양의 발목을 물 듯이 우리 발목을 살짝 문다. 밤에 자기 전에는 양 우리를 감찰하는 것처럼 집안을 쓱 한 바퀴 돈다. 가끔 나는 망고가 우리 가족을 자신이 지켜줘야 하는 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궁금하다.

웰시 코기는 털이 많이 빠진다
 
망고도 하루 한 번 꼭 산책을 시키고 있다.
 망고도 하루 한 번 꼭 산책을 시키고 있다.
ⓒ 전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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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만져봐도 돼요?"
"네. 그런데 옷에 털이 많이 묻을 텐데요."
"괜찮아요~"


망고를 만지고 난 사람들은 자기 옷에 붙은 망고 털을 보고 깜짝 놀란다. 웰시코기는 털이 많이 빠지는 개로 유명하다. 털이 짧은 단모에 겉 털과 속 털로 이루어진 이중모라 365일 끊임없이 털이 빠진다. 봄가을 털갈이 기간에는 더 많이 빠진다. 빗어도 빗어도 계속 빠지는 망고 털을 빗고 있자면, 머리에 린스를 하고 언제까지 물로 헹궈내야 하지? 하는 느낌이랄까.

웰시 코기를 빗겨서 나온 털을 보고 강아지 한 마리가 더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거나, 일주일간 털을 모아서 쿠션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털 때문에 파양하거나 유기하는 경우도 많다. 웰시 코기는 나이가 들수록 털이 더 많이 빠지기 때문이다.

망고 털 때문에 우리 집에는 유선, 무선, 로봇 청소기까지 청소기3대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 내 손엔 온종일 롤러 테이프가 들려 있다. 그래도 항상 망고 털이 여기저기 있고, 우리 옷에도 신발에도 항상 붙어 있다. 남편이 말했다.

"아프리카 어린이 얼굴에 파리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사진 있잖아. 왜 그냥 있는지 알았어. 쫓아봤자 또 날아와 앉을 테니까. 우리도 망고 털을 그냥 포기하자."

유일한 장점은 털이 자주 빠지기 때문에 개 냄새가 덜 난다는 것뿐이다. 웰시 코기 망고에게 개 냄새가 덜 나는 장점은 내겐 아주 큰 의미다. 나는 평소 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개를 기르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정말 싫었다.

수의사인 서방님(남편의 남동생)이 반려견을 키워서 아이들에게 좋은 점을 아무리 말해도, 아이들이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아무리 졸라도 나는 늘 주저했다. 그러다 서방님이 들려준 '아이들이 공부할 때 꼼짝도 안 하고 옆을 지키다가, 졸면 깨우면서 세 자매를 명문대에 보낸 강아지 이야기'에 꼴딱 넘어갔다. 서방님은 웰시 코기는 개 냄새가 적다고 추천해주었다.

망고가 우리 집에 오면서 내 생각도 변했다. 예전에 마트에 가면 '사람 먹을 것 파는 곳에 웬 개사료?'라고 했던 내가 '반려견 간식 종류가 왜 이렇게 적어?'라고 불평을 한다. SNS에 반려견 사진을 올리는 사람을 보면 자기 눈에나 예쁘지 싶었는데, 나의 SNS에는 이제 망고 사진뿐이다.

웰시코기 특유의 붙임성과 애교가 많은 망고는 우리 가족 모두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이 크면서 생기는 부모와의 거리감을 망고가 좁혀주었다. 결국 공부 얘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만, 고등학생 딸들과 대화를 망고 얘기로 부드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망고를 돌보면서 조건 없이 주는 사랑에 대해 알아간다.

집에 오면 언제나 제일 앞서 나가 반갑게 맞아주는 망고 때문에 남편은 중년의 허전함을 살짝 메우고, 친정어머니는 망고를 쓰다듬으시며 노년의 부족한 스킨십을 채우고 있다. 망고가 아니었다면 중년 부부가 된 남편과 내가 나란히 손잡고 산책하는 일이 자주 있었을까? 우리 가족들의 공통 화제는 언제나 망고이며, 망고의 사소한 행동 하나 때문에 함께 웃는다.

망고의 맑은 눈을 들여다 보면 한없이 평화로워진다. 무심히 쓰러져 자는 망고의 모습 또한 얼마나 평온한지. 사람 아닌 다른 생명과의 유대감에서 오는 새로운 사랑과 평안은 우리 가족의 삶에 또 다른 행복을 주었다. 망고야 고마워, 웰시 코기 고마워.

태그:#반려견, #웰시 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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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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