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실수는 저지를 수 있다. 축구장이 넓고 골문도 넓어 보여 누구나 쉽게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실수 투성이다. 상대 팀 선수들의 실수에 의해 넣은 골로 이기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축구를 '실수의 스포츠'라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 선수의 실수가 또한 많아서 실수의 스포츠다.

평가전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도 한국 축구대표팀은 득점 기회를 여러 차례 만들어냈다. 금요일 밤 울산에 모인 4만1117명의 관중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공격 흐름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그 결과는 '결정력 부족'으로 나왔다. 겸허하게 더 섬세한 축구를 익혀야 하는 숙제는 그대로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22일 오후 8시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이청용의 헤더 결승골 덕분에 1-0으로 겨우 이겼다. 

더 섬세하게 다듬고 훈련해야
 
 22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볼리비아의 평가전. 손흥민이 결정적인 골 기회를 놓치고 아쉬워하고 있다. 2019.3.22

22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볼리비아의 평가전. 손흥민이 결정적인 골 기회를 놓치고 아쉬워하고 있다. 2019.3.22 ⓒ 연합뉴스

 
아무리 생각해도 보기 드문 기회가 찾아왔다. 그 순간 축구공은 굴러 들어온 복덩이로 보일 정도였다.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민이 아니라 동네 축구 유망주도 쉽게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축구는 그리 호락호락한 스포츠가 아니다. 현대 축구의 수비 압박 강도는 조금도 느슨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다고 한숨을 돌리는 0.3초 사이에도 다른 수비수가 바짝 달라붙어 공을 가로채 도망가는 것이 축구다. 그런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훈련, 보다 섬세한 마무리를 위한 반복 연습이 절대 필요한 셈이다.

아시안컵 정상 도전 실패로 다시 무거운 발길을 내딛은 벤투호는 베테랑 미드필더 기성용과 구자철을 떠나보내고 비교적 젊은 선수들로 다시 뭉쳤다. 가운데 미드필더 자리에 황인범과 주세종을 세워 4-1-3-2 포메이션을 만든 벤투호는 에이스 손흥민과 지동원을 투톱으로 볼리비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게임 시작 18분 만에 깔끔한 선취골 기회가 찾아왔다. 왼쪽 측면으로 흐른 공을 잡은 풀백 홍철이 자로 잰 듯한 크로스로 지동원에게 절호의 기회를 줬다. 골문 바로 앞에서 솟구친 지동원을 밀어내는 볼리비아 수비수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누가 봐도 쉬운 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동원은 머리를 너무 돌리는 바람에 헤더 슛이 골문 오른쪽 기둥을 벗어나고 말았다. 

지동원과 비슷하게 머리를 너무 돌린 선수는 후반전에 또 나타났다. 49분에 미드필드 오른쪽 지역에서 얻은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주세종의 오른발 프리킥이 반대쪽에서 달려든 나상호에게까지 이어졌지만 나상호 역시 지동원처럼 머리를 너무 돌리는 바람에 골문 빈 구석에 공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축구도 '타이밍'

아직 벤투호에서 골맛을 못 본 손흥민에게 꿀맛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42분, 볼리비아 수비형 미드필더 카스트로가 어설프게 드리블로 빌드 업을 시도하다가 손흥민에게 공을 빼앗긴 것이다. 이 덕분에 손흥민이 공을 몰고 들어가는 앞 공간이 훤히 열렸다.

이 상황에서 손흥민은 곧바로 오른발 슛을 날리지 않고 상대 센터백 후시노까지 따돌렸다. 뒷걸음질하며 물러나는 볼리비아 골키퍼 루벤 코르다노도 손흥민의 빠른 드리블 방향을 감당하지 못하고 조금씩 자기 왼쪽으로 각도를 좁히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손흥민의 오른발 마무리 슛은 볼리비아 골문을 외면하며 오른쪽으로 굴러나갔다. 

웬만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 같았던 손흥민이었기에 더 놀라웠다. 머리를 감싸쥐며 충격에 빠진 손흥민에게 지동원이 다가와 잊고 다시 뛰자며 위로를 할 정도였다. 이처럼 축구장에 쉬운 골은 없는 법이다. 넓게 보이던 상대 골문도 드리블 각도에 따라 시야조차 점점 줄어들고 언제 발끝을 내뻗어 강력한 슛을 꽂아넣을 수 있는지 마음까지 흔들린다. 더 완벽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며 다음 타이밍을 노리다가 거기까지 가 버린 것이다.

이른바 축구장의 '타이밍'을 놓친 선수는 손흥민 말고도 더 있었다. 53분에 공격형 미드필더 황인범은 굴러오는 오른쪽 크로스를 받아 왼발 슛 타이밍을 잡았었다. 하지만 공을 접어놓고 오른발로 더 완벽한 슛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황인범의 오른발 끝을 떠난 슛은 전반전 손흥민에게 공을 헌납한 미드필더 카스트로의 몸에 맞고 말았다. 이번에도 더 좋은 타이밍을 놓친 것이었다. 

68분에는 후반전 교체 선수 황의조에게 또 하나의 득점 기회가 찾아왔다. 황인범의 전진 패스 타이밍이 상대 수비수들의 오프 사이드 함정을 기막히게 무너뜨린 것이었다. 하지만 패스 타이밍만 좋았다. 황의조의 오른발 슛은 각도를 줄이고 앞으로 나온 볼리비아 골키퍼 루벤 코르다노의 정면이었다. 
 
 22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볼리비아의 평가전. 이청용이 헤딩골을 넣고 있다. 2019.3.22

22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볼리비아의 평가전. 이청용이 헤딩골을 넣고 있다. 2019.3.22 ⓒ 연합뉴스

 
그나마 다행인 것은 86분에 이청용의 시원한 헤더 결승골이 나왔다는 것이다. 왼쪽 측면에서 홍철이 큰 포물선 크로스를 반대쪽으로 날려주었고 이청용이 뒤에서 달려와 솟구쳐 이마로 강력한 골을 적중시켰다. 골문 오른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가는 공을 상대 골키퍼 루벤 코르다노도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청용 바로 앞에서 크로스를 기다린 볼리비아 수비수는 이청용의 점프 타이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상체가 밀리는 순간을 버텨내지 못했다. 이렇게 타이밍을 결정하는 능력 차이가 축구장의 결과를 다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가르쳐준 한판이었다.

이제 벤투호는 오는 26일 오후 8시 일본을 1-0으로 물리치고 찾아오는 콜롬비아를 상대하게 된다.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22일 오후 8시,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

★ 한국 1-0 볼리비아 [득점 : 이청용(86분,도움-홍철)]

◎ 한국 선수들
FW : 손흥민, 지동원(63분↔황의조)
MF : 나상호(63분↔이승우), 주세종, 황인범(70분↔이청용), 권창훈(88분↔이진현)
DF : 홍철, 권경원, 김민재, 김문환
GK : 김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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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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