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발족해 현재에 이르는 인디다큐페스티벌은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주관하는 독립 다큐멘터리영화제입니다. 매년 봄 서울에서 개최되며, 19회를 맞이한 올해에는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에서 21부터 28일까지 일주일 동안 진행됩니다. 영화제의 슬로건은 크게 세 가지로, '실험, 진보, 대화'입니다. 이것은 영화제가 표방하는 세 가지 이념인데, 각각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영화와 삶의 긴장', '타인과 자신의 삶'을 뜻합니다. 영화제의 세 가지 슬로건에서도 알 수 있듯, 본 영화제는 단순히 영화를 출품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전시로서의 성격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제작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규합하는 성격을 띕니다

그 날의 아침 

저는 본래 22일 오전 12시부터 5시 20분까지, 롯데시네마 홍대 입구 8층 1관에서 연달아 세 타임을 관람하려고 했습니다. 빠른 순서로 <산나리>, <상>-<적막의 경관>-<야경> 단편 연작, <리틀보이>입니다. 하지만 막상 당일 날 아침이 되니 몸이 왠지 찌뿌둥한 게 오전 10시에 출발은 못 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가장 앞 타임의 <산나리>를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산나리>를 관람하지 못한 건 제가 아니라 전기장판 탓입니다. 정말입니다. 

'인디다큐페스티벌'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직접 방문해본 바로는 인터넷만으로도 모든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인디다큐페스티벌은 작은 규모의 영화제이고, 롯데시네마 홍대 입구점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만 간략하게 진행되기에, 딱히 적을 내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제 발자취를 기록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기도 어딘가에 있는 제 집에서 출발해 어언 1시간 정도를 지하철 안에서 보내고 나니, 어느덧 홍대 입구역에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1시간 동안에는 무엇을 했는가 하면, 지하철 안에서 읽으려던 책은 한 장도 넘기지 못했고, 대신 보지 못한 수, 목, 금요일자 네이버 웹툰을 몰아서 보았습니다. 어찌 됐든 홍대 입구역 8번 출구로 나와 네이버 지도를 켰는데, 그냥 직선으로 쭉 경로가 있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롯데시네마 건물이 있더군요. 길을 헤맬 염려는 없어 보였습니다. 

8층까지 올라갔더니 건물에 무슨 공사 중인지 통로가 좁았습니다. 그래도 외벽에 '롯데시네마 가는 길'이라고 적혀있어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0층에 도착하니 롯데시네마였습니다. 롯데시네마라고 크게 적힌 외벽이 있었고, 그 오른쪽 아래에 인디다큐페스티벌 홍보물이 적당한 크기로 붙어있었습니다. 저는 영화제 관람 인증을 위해 그것을 촬영했습니다. 다른 걸 두고 왜 이걸 촬영했냐고 물으신다면, 이거 말고는 인디다큐페스티벌의 '인'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사실 쉬어가는 테이블 가장 오른쪽에 팜플렛이 있기는 했습니다. 크기별로 다양하길래 한 장씩 챙겨왔습니다.) 
 
 이곳이 바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의 10층

이곳이 바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의 10층 ⓒ 김선호

 
 위 아래로 기다란 홍보물이 외벽에 걸려있습니다

위 아래로 기다란 홍보물이 외벽에 걸려있습니다 ⓒ 김선호

    
 아무것도 없길래 잘못 찾아온 줄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없길래 잘못 찾아온 줄 알았습니다 ⓒ 김선호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영화제는 영화가 정시에 시작하므로 2시 영화를 위해 1시 53분쯤 입장하려 했더니, 영화관 직원분께서 "8층으로 가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디다큐페스티벌이 진행되는 1관은 8층에 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뒤쪽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8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그제야 눈앞에 보이는 풍경. 직원으로 추정되는 세 분 정도가 인디다큐페스티벌의 기념품을 판매하고 계셨습니다. 그 오른쪽에는 인디다큐페스티벌 간판도 작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영화제 규모를 고려해보면 이 정도의 소소함이 맞겠구나 하는 생각을 안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8층에 와서야 영화제 분위기(?)가 났습니다. 사진 속에 계신 분들은 영화제 관계자분들입니다. 허락을 맡고 촬영하지 않았으므로 요청하시면 사진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8층에 와서야 영화제 분위기(?)가 났습니다. 사진 속에 계신 분들은 영화제 관계자분들입니다. 허락을 맡고 촬영하지 않았으므로 요청하시면 사진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 김선호

   
 아래쪽에도 10층 외벽에 걸린 판넬과 비슷한 입간판이 서있습니다

아래쪽에도 10층 외벽에 걸린 판넬과 비슷한 입간판이 서있습니다 ⓒ 김선호


그 날의 오후

제가 첫 번째로 본 것은 <상>, <적막의 경관>, <야경>이라는 세 단편입니다. 세 가지를 엮어 한 타임으로 상영했는데, 어떻게 보면 7천 원으로 영화를 세 편이나 본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음… 잘 모르겠습니다. 이 세 가지 작품들은 다큐라기보다는 실험영화에 가깝습니다. 실험영화라는 표현에 어떤 수사를 덧붙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누벨바그가 그나마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상>은 부산근대역사관의 지난 시간을 조명하는 다큐인데요, 부산근대역사관의 이미지 한 쇼트를 두고 지난 과거의 소음들이 그 위에 흐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요컨대 이것은 현재의 순간에 과거의 시간이 흐르는 필름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그곳을 아는 이들만이 공유하는 특정 시공간을 지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길을 가다 문득 기시감이 드는 때처럼, 그 순간 우리가 포착한 순간에는 지나온 시간의 광경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마도 이건 감독 개인의 시야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주관적인 거죠. 다큐멘터리라는 게 그런 것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건 그 필름만의 특징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지는 두 개의 단편도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아마 감독이 같기 때문일 겁니다. <적막의 경관>은 감독이 부모님의 묘소를 벌초하러 오갔던 기억을 담은 필름인데,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과 그곳에서 돌아오는 모습이 한데 어울립니다. 비유하자면 디졸브 상태로 계속 진행됩니다. 저에게는 이게 <언어와의 작별>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 필름은 3D라는 형식을 취하면서 왼쪽과 오른쪽의 풍경을 분리하고 있는데요, 이 필름에도 그런 두 가지 갈래가 있었습니다. 추상화하자면, 한쪽은 선형적인 시간이고 다른 한쪽은 선형적인 시간 속을 역행하는 기억입니다. 

그런 생각을 안고 다음 영화로 넘어갑시다. <야경>은 이기대에 전해 내려오는 기생설화를 토대로 영화를 찍는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필름에서 우리는 현재의 배우들이 과거를 연기하면서 현재의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풍경을 보게 됩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두 시간을 혼용하고 있고, 앞서 말했듯이 수평적인 시간관이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필름의 도입부에서 두 배우가 같은 구도와 같은 대사를 찬찬히 읽어내려가는데, 어느 순간 필름에서 청각이 떨어져 나오면서 그 청각은 화면 밖으로 벗어나게 됩니다. 요컨대 배우들의 대사가 쇼트를 자유롭게 합니다. 풀어주는 겁니다. 그런 대사가 배우별로 2번 반복되고, 누구의 시선인지 모를 시각은 어느덧 촬영장소, 과거의 기생설화 속 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그곳에서 다시금 배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이때 그것은 목소리의 출발지점을 잃고 수평적 시간 속의 어딘가를 떠돌게 됩니다. 

다음 타임에 관람한 <리틀 보이>는 김형률이라는 원폭 2세 시민운동가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부끄러운 감정이 있음을 미리 말해두고 싶군요. 

한국에 여러 다큐멘터리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여 어딘가 모르게 시큰둥해지기도 하는 소재였습니다. 이 발언이 권태나 자만으로 읽힌다면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다큐멘터리의 본질이 조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틈새 속에서 보이지 않던 작은 것을 확대하여 조명하는 것이 바로 다큐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그는 조명되어야 할 인물입니다. 유명한 사건에는 그만큼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인데, 김형률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은 그러한 우리의 무지에 대해 경감심을 일깨워준 것입니다. 

그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여전히 알 수 없었고, 그게 곧 저라는 사람이었음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고양이처럼 철저히 자기 세계를 갖는 사람이고, 다른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만 보기에 어떻게 남겨지든 말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으로 저는 김형률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화 인디다큐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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