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성 인권 변화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인 인물이 있다. 미국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이하 루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써 내려가고 있는 역사는 'END'가 아닌 '~ING'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분노는 시간 낭비"라는 어머니의 조언을 토대로 50년간 지속하고 있는 그녀의 싸움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을 앞두고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영화는 루스의 삶을 그대로 녹여냈다. 그녀가 여성 인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계기와 그 고민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소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진진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진진

 
여성은 하등 시민이 아니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뿐입니다."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루스가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조인을 꿈꾸던 1956년 당시에 '남자들이 앉을 자리를 빼앗았다'는 말을 듣거나 '여성들은 열람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로스쿨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그녀였지만 로펌 인사는 번번이 거절 당한다. 여성이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며, 유대인이라는 이유였다.

이러한 차별이 위법이 아닌 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는 긴 싸움을 시작한다. 논쟁에서 큰소리를 치면서 화내는 것은 이기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기조를 유지하며 그녀는 언제나 침착하고 논리정연한 말투로 반대 진영의 논리를 무너뜨려왔다.

영화는 실제 그녀의 주변인들 인터뷰 증언을 풍부하게 담았다. 루스의 가족들과 법정 동료, 그리고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함께했다. 가정과 일터 그리고 심지어 그녀가 운동하는 헬스장 트레이너가 보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영화에 꼼꼼하게 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삶을 나열하고 있는 영화임에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녀는 미국 청년들에게 일명 'RBG'라 불리며 여성 히어로로 칭송받고 있다. 그녀의 얼굴을 딴 티셔츠와 가방 텀블러가 등장하고 심지어 자신의 몸에 그녀 모습을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녀는 히어로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실존하는 스타 대법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진진

 
이 때문에 <아이언맨>, <아쿠아맨>, <캡틴마블>, <샤잠!>, <어벤져스> 시리즈 등에서 초능력을 발휘하거나 '힘' 센 히어로들이 극장가 흥행을 독차지 하는 시대에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의 주인공 루스의 '힘'은 남달라 보인다.

로맨스, 감동, 의미, 재미까지 갖춘 영화

영화적 서사가 담겨 있는 인물 다큐멘터리다. 그녀의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는 여러 관전 포인트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루스가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편 마티 긴즈버그(이하 마티)의 공로가 컸다. 조용한 성격의 루스가 연방 대법관 후보에 오르자 마티가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도왔다. 루스와 마티의 자녀들은 "엄마는 생각 담당, 아빠는 요리 담당"이었다며 '대안적인 가정을 일군 선구자들'로 불렸다는 후문이다. 마티는 루스의 가치를 일찍 깨닫고 전폭적으로 그녀를 지원했다.

영화에는 마티의 과거 그가 출연한 여러 TV쇼나 연설을 토대로 구성되었다. 이를 통해서도 마티가 얼마나 루스를 사랑 했는지 알 수 있다. 마티가 평소 루스에게 쓴 편지들을 손녀가 직접 읽어주는 대목이 있는데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인 로맨스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실화를 그린 영화이니 만큼 영화에 대한 몰입이 잘된다.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진진

 
"나는 반대한다" 루스가 반대한 역사적 사건들

70년대 공군 소위였던 샤론 프론티에로가 기혼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기혼 남성들은 받는 주택 수당을 받지 못하자 소송을 건 일화 -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 사건(1973)

어린 아들을 둔 '홀아버지'였던 스티븐 와이젠펠드가 아이를 직접 돌보기로 하고 사회보장국에 보육 수당을 신청했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보육수당을 받을 수 없어 소송을 건 일화 - 와인버거 대 와이젠펠드 사건(1975)

150년간 남자 생도들만 받아온 버지니아 군사 대학에 한 여학생이 이를 위법이라고 소송을 제기한 일화 -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 주 사건(1995)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임금 차별을 받아왔던 것을 뒤늦게 깨닫고 이를 고소한 일화 - 릴리 레드베터 대 굿이어 사건(2006)

대법원이 참정권 차별을 감시하던 투표권법의 핵심 조항을 더 이상 흑인 투표권자들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지 않는다는 근거로 폐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 일화 - 셸비 카운티 대 홀더 사건(2013)

회사가 신앙을 이유로 피임을 직원 건강보험에서 제외하는 것을 허용한 다수의견을 반대한 일화 - 버웰대 하비로비 사건(2014)


그녀는 언제나 소신을 지킨다. 상황이 불리하거나 계단에 바위 치기에 불과할지라도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밝혔다. 그 시대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법들을 작고 왜소한 체격의 루스가 "나는 반대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감동 포인트다. 상대 진영의 존경심마저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행보는 양성평등 측면에서 볼 때 마치 성장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진진

 
루스가 만들어낸 역사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다. 영화에서는 여전히 논란 중인 남녀 평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현재는 당연하다 여길만한 기본적인 인권이 과거에는 당치도 않은 것들이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싸워온 사람 중 상징적 인물인 루스는 여성 인권사에 길이 남을 의미있는 인물이다. 페미니즘, 성 대결이 한창인 작금의 한국에서 이 영화는 가뭄에 단비 같은 의미를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인물 다큐멘터리의 교과서

98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다. 인터뷰 증언이 지루해질 찰나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루스의 모습과 과거 소송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다가 어느새 스크린에는 마티가 등장하면서 달콤한 로맨스가 펼쳐진다. 반대 의견을 읽어나갈 땐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다가도 마지막 문장은 현재의 루스가 직접 화면에 등장하여 나긋한 목소리로 직접 말한다. 
 
감독의 이런 세세한 화면 구성 능력에 의해 관객들은 지루할 틈을 느끼기는 어렵다. 적절한 화면 배분과 그 안에 적절하게 녹인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 사이사이에 로맨스, 재미, 감동, 의미까지 두루 갖춘 영화다. 영화는 두 명의 여성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감독이자 언론인 겸 교육자인 벳시 웨스트와 8편의 장편 다큐멘터리 감독 경력의 줄리 코헨이다. 

벳시 웨스트는 다큐멘터리 <메이커스>, <라벤더 공포>, <4%: 영화의 젠더문제>를 제작했고 현재 콜럼비아 대학원 언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또 스토리빌 필름즈의 대표도 겸하고 있다. 줄리 코헨은 201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초청작 <철갑상어의 여왕>, <아메리칸 베테랑>, <아이 리브 투 싱>을 통해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벳시 웨스트와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화는 오는 28일 개봉한다. 

별점 : ★★★★(4/5)
한줄평 : 영화로 만든 미국의 여성 평등 역사 교과서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관련 정보
제목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원제 : RBG)
수입/배급 : (주)영화사 진진
감독 : 벳시 웨스트, 줄리 코헨
주연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등
장르 :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 98분
개봉일 : 2019년 3월 28일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 포스터

영화 <루스베이더긴즈버그:나는반대한다> 포스터 ⓒ (주)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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