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와 GS칼텍스가 플레이오프에서 열심히 해 김천에서 서울 갔다가 다시 김천 갔다 하면서 훈련도 많이 하고 세트도 많이 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12일 V리그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박미희 감독이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 GS칼텍스 KIXX가 플레이오프에서 3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을 벌이면서 박미희 감독의 발언은 '예언'이 됐다. 두 팀은 3경기에서 나올 수 있는 15번의 세트를 모두 치렀고 경기 시간만 무려 6시간 58분을 소화했다. 

역대 V리그 여자부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리즈 중 하나로 기억될 플레이오프에서 살아남은 팀은 '디펜딩 챔피언' 도로공사다. 지난 시즌 IBK기업은행을 꺾고 통합 우승을 차지했던 도로공사는 두 시즌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탈환한 흥국생명을 상대로 2연속 챔프전 우승에 도전한다. 물론 '김연경 시대'였던 2008-2009 시즌 이후 10년 만에 챔프전 우승을 노리는 흥국생명도 우승에 대한 절실함은 도로공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명예회복 성공한 흥국생명, 챔프전 우승까지 달린다

 
김희진, 김수지(이상 기업은행), 박정아(도로공사), 김해란(흥국생명) 황민경(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등 대어들이 쏟아져 나왔던 2017년에 비해 작년 FA시장에는 이렇다 할 대어가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 시즌을 최하위로 마친 흥국생명은 FA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 센터 김세영과 좌우를 오갈 수 있는 파이팅 넘치는 날개 공격수 김미연을 영입했다.

작년 흥국생명의 FA '폭풍 영입'에는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사실 김세영은 언제 은퇴를 선언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30대 후반의 노장이고 김미연은 좋은 서브와 과감한 공격에 비해 서브 리시브와 수비는 불안하다는 평가가 따라 다녔기 때문이다.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선명여고의 전국대회 4관왕을 이끈 187cm의 박은진(KGC인삼공사) 대신 이주아를 지명한 것도 다소 의외라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많은 우려를 씻고 2016-2017 시즌에 이어 두 시즌 만에 통산 5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적생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 했고 시즌 중반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한 루키 이주아도 37.32%의 공격 성공률과 세트당 0.4개의 블로킹으로 프로 무대에 순조롭게 적응했다. 물론 득점2위(624점), 퀵오픈 1위(47.12%), 리시브 성공률 42.16%를 기록한 '에이스' 이재영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후반기 부진했던 톰시아가 살아나면 흥국생명은 더욱 편하게 챔프전을 치를 수 있다.

후반기 부진했던 톰시아가 살아나면 흥국생명은 더욱 편하게 챔프전을 치를 수 있다. ⓒ 한국배구연맹


세트당 6.75개의 디그를 기록하며 두 시즌 연속 디그 부문 1위를 차지한 '미친 디그' 김해란은 V리그 데뷔 후 첫 챔프전 우승에 도전한다. 수 년간 국가대표 주전 리베로로 활약하며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음에도 유난히 챔프전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김해란에게 이번 시즌은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김해란은 수비는 물론이고 흥국생명의 주장으로서 코트에서 선수들을 이끌 예정이다.

흥국생명은 승점 62점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도로공사와의 상대전적에서는 2승4패로 뒤졌다. 특히 4라운드부터 내리 3연패를 당하며 도로공사를 상대로 유난히 약한 면모를 보였기에 챔프전 상대가 도로공사로 결정된 것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도로공사가 최고의 경기감각과 혈전에서의 승리로 기세가 등등하지만 흥국생명도 챔프전을 앞두고 11일의 긴 휴식과 준비 기간을 가진 만큼 멋진 승부가 기대된다.

혈전 치르고 올라온 도로공사, 13년 만에 복수전 성공할까
 
 4개 유니폼을 입고 챔프전 우승에 성공한 이효희 세터는 커리어 5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4개 유니폼을 입고 챔프전 우승에 성공한 이효희 세터는 커리어 5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 한국배구연맹

 
"지금까지 이런 배구는 없었다. 이것은 스포츠인가 드라마인가"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 이번 시즌 V리그 여자부 플레이오프를 봤다면 아마 이런 카피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만큼 도로공사와 GS칼텍스의 플레이오프는 3차전 15세트를 모두 소화한 '역대급 명승부'였고 승자는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조직력을 자랑하는 도로공사였다.

강소휘와 이소영,표승주로 구성된 GS칼텍스의 삼각편대와 박정아와 파토우 듀크(등록명 파튜)의 쌍포가 비슷한 활약을 펼친 플레이오프의 차이는 바로 중앙에서 만들어졌다.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는 베테랑 센터 듀오 정대영과 배유나는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무려 25개의 블로킹과 66개의 유효 블로킹을 합작하며 김유리, 김현정, 문명화, 이영으로 구성된 GS칼텍스의 센터진(13개)을 압도했다.

도로공사의 막강한 센터라인은 흥국생명과의 챔프전에서도 큰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물론 정규리그에서 세트당 0.68개(3위)의 블로킹을 기록한 김세영의 높이는 도로공사에게도 상당히 위협적이지만 공격에서는 속공 부문 1위(52.43%)와 5위(42.37%)에 오른 정대영과 배유나 콤비가 확실한 우위에 있다. 도로공사가 중앙에서 우위를 점한다면 박정아와 파튜의 쌍포도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무려 4개 구단에서 우승반지를 차지했던 백전노장 이효희도 도로공사에게는 매우 든든한 존재다. 물론 유망주 이원정 세터도 상대적으로 블로킹이 높고 기본기가 뛰어난 세터지만 이효희의 풍부한 경험은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실제로 도로공사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이효희 세터가 주전으로 출전한 1,3차전에서 모두 승리를 따냈다. 이효희 세터는 챔프전에서도 도로공사의 팀 색깔을 극대화하는 노련한 토스워크를 선보일 예정이다.

도로공사는 지난 2005-2006 시즌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후 플레이오프에서 KT&G(현 인삼공사)를 꺾고 챔프전에 올라 흥국생명에 2승3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사기유닛' 김연경의 프로 첫 시즌이었다). 비록 세월이 많이 흘렀고 양 팀 선수단은 모두 바뀌었지만 도로공사는 흥국생명에게 13년 묵은 빚이 있는 셈이다. 과연 도로공사는 흥국생명에 설욕에 성공하고 2연속 챔피언에 등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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