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9 07:42최종 업데이트 19.03.19 11:25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가 살짝 넘어졌는데, 배달대행 사장님이 수리비로 190만 원이 나왔다고, 내용증명을 보낸대요. 수리비 낼 때까지 제가 일한 돈은 안 준다고 합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앳됐다. 그의 나이는 21살. 청년, 사고, 내용증명이라는 단어는 상담을 하다 보면 늘 듣는 단어다. 보통은 뒤에 경찰, 고소, 소송이라는 단어가 뒤따른다. 며칠 전에도 편의점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상담을 요청했는데, 사장에게 체불임금을 요구했다가 비닐봉투 절도죄로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당한 내용이었다.

태어나서 '내용증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청년은 두렵고 막막하다. 그가 보내준 오토바이 사진의 모델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다. 이 오토바이를 새로 사는데 들어가는 돈은 195만 원이었다. 답답해서 직접 포항으로 내려가 그와 오토바이를 확인했지만, 역시 190만 원의 수리비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예상컨대 사장님은 같이 일했던 배달대행기사가 맘에 들지 않았을 거고, 마침 나이도 어리니 어려운 말로 협박을 하면 받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다. 예상은 맞았다. 그 라이더는 신호를 지키며 일을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건너편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유턴 신호를 받을 수 있는 곳까지 돌아서 건넜다. 사장은 답답해 했고, 동료들은 놀면서 일하는 줄 알았다.

1시간 3개의 배달을 했으니 그가 올린 수익은 시간당 9천 원, 주휴수당과 야간, 연장수당을 받을 수 있는 최저임금 노동자보다 못 버는 셈이다. 그가 일한 시간은 오후 2시부터 새벽 2시. 게다가 그는 하루 1만 원씩 오토바이 리스비를 내야 했다. 하루는 감기 몸살이 걸렸는데, 링거를 맞고 나오라는 말에 병원에서 6만5천 원의 돈을 지불하고 몸에 강제로 포도당을 주입한 후 출근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배달업은 신호 위반을 전제로 돌아가는 사업이며, 그에 대한 위험의 책임은 모두 라이더가 져야 한다. 두 번째로 한국의 배달대행일은 결코 자유로운 플랫폼 노동이 아니며, 사장의 엄격한 지휘감독을 받는 노동이다.

위험의 전가
  

쓰러져 있는 배달 오토바이 (이 사진은 해당 칼럼과 관련 없습니다) ⓒ 박정훈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와 같은 배달주문중개앱 회사, 부릉이나 바로고, 생각대로 같은 배달대행 플랫폼회사는 이론적으로는 오토바이를 단 한 대도 소유할 필요가 없다. 오토바이라는 필수적인 생산도구는 모두 라이더가 장만을 하거나 리스(대여)를 통해서 라이더가 비용을 지불한다. 게다가 연령에 따라서 연 300만 원에서 700만 원 정도 하는 배달용오토바이보험료(유상운송보험)도 라이더가 부담해야 한다.

플랫폼회사에서 필요한 것은 이 라이더의 정보와 이 라이더가 로그인해서 일할 수 있게 끊임없이 주문 데이터를 올리는 것뿐이다. 대표적인 플랫폼 회사인 에어비앤비가 숙박시설을 단 하나도 소유하지 않고도 세계 최대의 숙박중개업체가 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사장님들은 숙명적으로 져야 할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매출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생산수단이 녹슬거나 관리비용만 나가는 위험, 고장이 났을 때 들어가는 수리비와 관리비 등을 부담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 대전에서 자가용으로 일을 하고 있는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은 잦은 배달로 자가용이 계속 고장이 나서 수리비를 내야 하는데, 이 돈을 모두 자기가 부담해야 하냐며 내게 따지는 듯한 상담전화를 수차례 걸기도 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플랫폼회사는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의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회사가 아니라 전 사회가 지고 있다. 배달 일을 하다가 다친 라이더의 치료는 사장님들이 내는 산재보험료로 처리하지 않고, 전국민이 내는 건강의료보험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위험부담을 우리 국민 전체가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위험에 대한 책임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자본가의 덕목처럼 여겨져 왔다. 사장은 위험에 대한 부담을 지므로 고액의 소득을 얻어가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는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책임지는 가부장적 사장님 모델이다.

그러나 플랫폼 시대에 그런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인 일이다. 위험의 감수는 자본가의 덕목이 아니라 '사장님'이라는 명찰을 달고 노동을 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덕목이 됐다. '위험을 감수하고 능력껏 일하고 능력껏 가져가라.' 이 말을 플랫폼 자본주의의 사장님들에게는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 위험을 전가하고, 이윤만을 가져가라'

전통적인 '근로자'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2010년 2월, 피자업계의 '30분 배달제'로 한 청년노동자가 사망했고, 이후 시민사회가 '30분 배달제'를비판해 이 제도는 없어졌다. ⓒ 연합뉴스

 
한편, 경기도 오산의 한 음식점에서 배달 일을 하던 20대 라이더는 뺑소니를 당했다. 자동차 운전자는 오토바이를 치고 곧바로 줄행랑을 쳤고, 경찰은 아직 가해자를 잡지 못했다. 업주는 치료비를 지원하긴 했지만, 오토바이 수리비는 일하던 라이더에게 청구했다. 라이더는 병원에 누워서, 오토바이 수리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해야 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배달대행기사와 달리 음식점에 소속된 배달기사는 근로자 신분으로 일을 하다 다쳤기 때문에 산재처리를 할 수 있다. 만약 산재처리를 하지 않으면 산재은폐로 사장님이 처벌받아야 한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어도, 산재가입을 하지 않았어도 가능하다. 이에 대한 책임은 고용주에게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한 불안정한 신분의 배달대행기사의 노동권이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근로자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도 합법처럼 강제할 수 있는 것, 우리는 이것을 권력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로자의 신분이 노동자냐 사용자냐 하는 논쟁이 아니라 실제로 일하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대항 권력이다. 실제로 라이더유니온이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자 사장은 수리비 청구를 없었던 일로 해 버렸다. 라이더들끼리 모여서 함께 목소리를 내면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 힘을 보태줬으면 하는 분들이 있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핸드폰으로 배달주문을 하면 자동으로 음식을 받았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수많은 라이더들의 희생 속에서 따뜻한 음식이 배달되고 있다.

배달은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의 편리함은 타인의 노고 속에서 보장된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노동환경의 개선도 마찬가지다. 마침 5월 1일 라이더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외치며 오토바이 행진을 벌인다. 라이더들이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달리던 도로를, 라이더들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무대로 함께 바꿔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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