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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작가
 이한수 작가
ⓒ 박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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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나무만 보고 당진에 왔죠"

청양 출신의 이한수 목공예가의 인생은 오롯이 나무와 함께 해왔다. 아버지를 일찍 여인 이 작가는 나무로 집을 짓는 대목장인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할아버지에게 직접 일을 배우진 않았지만 나무, 조각, 공예와 가까이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이 작가의 35년 외길인생은 그의 나이 16살 때부터 시작됐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무렵, 미술교사가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조각을 권유한 것이다.

이 작가는 "선생님이 '천상 너는 이 길이다. 이것(조각)으로 밥은 먹고 살 것'이라고 말하며 길을 제시해줬다"면서 "그 이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목공예를 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6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다른 누군가에게도 목공예가의 삶을 권유할 수 있을 정도"라고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이한수 공예가
 이한수 공예가
ⓒ 박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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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스승

남들은 공부하고 놀 나이에 그는 연장을 들고 나무를 만졌다. 16살 어린 나이에 첫
스승을 만난 그는 열심히 스승의 뒤를 따라갔다. 이 과정에서 그의 어린시절 경험이 빛을 발했다. 대목장인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 남들보다 공구나 연장을 잘 다루고, 눈썰미도 좋았다. 

이한수 작가는 세 명의 스승에게 목공예를 배웠다. 현재는 고인이 된 두 스승에게 각각 인물 조각 등을 배웠고,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 1호로 지정받은 유석근 선생에게는 불상 조각을 배웠다. 세 스승의 가르침은 그의 삶에 피와 살로 남았다. 이 작가는 "스승님들을 잘 만났다"며 "진정 제자를 위하고 생각하는 분들이었다"고 전했다.

 
이한수 공예가가 만든 장승
 이한수 공예가가 만든 장승
ⓒ 박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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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장승 조각가

이후 그는 고향인 청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곁에서 나무를 조각하며 평생을 살고자 했다. 고향인 청양은 다른 지역보다 유독 장승이 많았다. 청양군 일대의 마을들은 여전히 장승제를 지내고 있었다.

이 작가는 지역의 예술인으로서 고향에서 열리던 칠갑산 장승문화축제에 참여하곤 했다. 본인만의 개성과 이미지를 연출해 장승을 창작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고, 전국에서 개최하는 장승깎기 대회에 출전해 다수의 상을 받았다. 

어느덧 그는 지역에서 장승 조각가로 이름을 알렸다. 고향 사랑을 인정받은 것일까. 그는 청양군으로부터 장승문화축제를 개최하면서 조성된 장승공원의 장승체험관장직을 맡기도 했다.
 
이한수 공예가가 만든 작품들
 이한수 공예가가 만든 작품들
ⓒ 박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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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하나만 바라 본 인생

계속 청양에서의 생활이 이어질 것 같았던 그의 삶이었지만 그는 돌연 당진으로 향했다. 그는 고향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지난해 여름 당진에 둥지를 틀었다.

이 작가는 시곡동에 자리한 나무공예품을 취급하는 느티공예사(대우임산)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고향을 떠날지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느티공예사에서 취급하는 목재를 보게 됐다.

천상 목공예가로서 살아온 그의 눈에 공예사가 보유하고 있는 목재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나무 하나만 보고 왔어요.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죠. 좋은 나무로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나무 욕심, 작품 욕심이 저를 당진으로 이끌었네요."

현재 그는 느티공예사 근무하며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 종일 탁자, 진열대 등 생활 목공예품에서부터 조각상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한수 공예가가 만든 작품
 이한수 공예가가 만든 작품
ⓒ 박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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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형태·무늬 살린 목공예품

그는 거대한 목재를 자르고 켜고 깎으며, 큰 목재 안에 조각한 작은 목재를 끼워 넣기도 하면서 공예품을 만든다.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버려진 나무기둥, 뿌리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생명력을 얻고 새롭게 탄생한다. 

이 작가는 "우리나라 목재로만 사용해 공예품을 제작하고 있다"며 "형태와 무늬 등을 보면서 나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을 구상해 만든다"고 말했다. 

그가 당진에서 만든 작품들은 벌써 수십 가지가 넘는다. 등껍질과 거북이의 피부가 생생하게 표현된 거북이 조각상, 뿌리의 형상을 살려 새를 잡으려는 호랑이 조각, 썩은 나무의 외형적 특색을 살려 포도를 조각한 나무 병풍 등 모두 나무 고유의 무늬와 질감, 색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35년 목공예 외길인생이지만 그는 아직도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그 옛날 "어떤 분야든 다 배웠다 하면, 죽어있느니만 못하다"고 했던 스승님의 가르침처럼 이 작가는 하루하루 겸손한 자세로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배웠던 게 인물 조각인 만큼 제 안에는 인물 조각에 대한 열망이 크게 자리하고 있어요. 훗날 유명인들의 얼굴을 나무에 새겨 탈을 만들고, 그 탈들을 모아 탈 박물관을 운영하고 싶어요. 어쩌면 제가 지나온 과정들은 이것을 하기 위한 과정이자 연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한수 목공예가는
 - 1970년 청양 출생
 - 16살 목공예 시작, 35년 경력
 - 2005~2009년 장승체험관장 역임
 - 갓바위축제 장승깎기 대회, 부여 대백제전 
   장승깎기 대회 등 다수의 대회 참가 및 수상 

태그:#당진시대, #목공예, #공예가,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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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당진시대 박경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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