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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된 샤워퍼프와 로희 헤어밴드
 
7년 된 샤워퍼프와 새 샤워퍼프
 7년 된 샤워퍼프와 새 샤워퍼프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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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욕실에는 7년 된 샤워퍼프 옆에 새 샤워퍼프가 나란히 걸려 있다. 엉킨 수세미 같은 녀석은 나와 남편이 쓰고 보들거리는 꽃봉오리 같은 새 퍼프는 아이들이 쓴다.​

"엄마, 아빠는 헌 것을 쓸지라도(눈물 찔끔), 너희는 좋은 것만 쓰렴(미소)" ​하는, 신파 같은 상황을 상상하셨다면 오해다. 단지 아이들이 쓰던 천연 해면 퍼프가 망가져 새로 샀을 뿐이다. 더 이상 못 쓰게 됐으니 새 물건이 필요했다.

반면 어른들 샤워 퍼프는 형편없는 생김새와 달리 거품도 잘 나고 촉감도 부드럽다. 2012년 남편이 자취 할 때 샀던 샤워 퍼프가 멀쩡하길래 자연스럽게 신혼 살림에 보탰다. 제 기능을 다 하는데 굳이 새 걸 살 필요가 있을까? 고작 2800원짜리 샤워퍼프지만, 새 물건을 들일 때 가격과 상관 없다. 필요하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그러나 SNS에 드러날 물건은 달랐다. 페이스북, 블로그,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리지 않을 캄캄한 욕실 속 샤워퍼프 올이 조금씩 풀리는 동안, 태어난 지 6개월도 안 된 아이 머리에 씌우는 헤어밴드 종류는 늘어갔다.
 
로희 헤어밴드로 얄팍한 우월감을 느꼈다.
 로희 헤어밴드로 얄팍한 우월감을 느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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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은 빠듯했다. 그런데도 월급날이면 아이 헤어밴드를 하나, 둘 사고야 말았다. 손바닥만한 아기 장신구였지만 만 원을 훌쩍 넘겼으니 결코 싸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에 2만 원 가까이 하던 로희(SES 유진의 딸)와 같은 수국 헤어밴드를 SNS에 올리면 우월감을 느꼈다. 비싸지만 아이도 예뻐지고 남 보기에 부족하지 않게 해주었다. 필요 없지만 필요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함으로 먹먹했다. 너도 나도 뽐내는 소모적인 전쟁 같았다. ​SNS는 결국 가상 공간에 불과했다. 빈틈없이 행복한 타인만이 존재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찌질한 최다혜 말고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표현하는 공간이었다. 문제는 '남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완벽함'의 기준은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체면 소비

어디 SNS 공간뿐일까? 체면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든다. 아이를 낳으면 차는 중형차'쯤' 있어줘야 하고, 집은 30평대'쯤' 되어야 한다. 옷은 유행에 맞춰야 하고, 아이 장난감은 키즈카페 다름 없이 가득해야 한다. 소비의 기준에는 분명 타인의 시선이 있다.

통계청에서 말하는 2018년 4인 가족 3분위(상위 40~60% 소득)의 평균 소득은 4562만원(세전)이다. 실수령액으로 한 달 300만원 조금 넘게 버는 가구다. 이 돈이면 주거비, 유류비, 세금 등 고정지출과 경조사, 식비, 잡화비, 교육비만 해도 빠듯하다. 여기에 최신형 휴대폰과 신형 2000cc 자동차가 들어올 틈은 좁다. 그러나 거리에는 대형차가 즐비하다. 대출과 카드 할부로 빚을 떠안은 결과다.

우리의 높은 눈높이를 충족시켜 줄 소비를 하기에 소득이 부족하다. 완벽해지기에는 끝도 없고,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남의 눈에 멋지게 살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가까운 나들이에 간단한 간식을 싸간다. 그리고 외식을 줄였다.
 가까운 나들이에 간단한 간식을 싸간다. 그리고 외식을 줄였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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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퍼프가 봉긋한 옛 모습을 잃었어도 충분하니 쓴다. 빨래 건조대가 고장 나도 창문에 기대어 쓴다. 아이 잠옷 지퍼 이가 어긋났기에 단추를 다시 달아주고, 가속화되는 환경 오염이 걱정되어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본다.

외식은 아프거나 장시간 외출했을 때뿐이다. 이런 '궁색'의 표본들은 막상 해보니 전혀 어렵지 않았고 불편하지도 않다. 다만 남들이 '지지리 궁상'이라 말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면 된다. 물건을 새로 사는 기준은 늘 '나'의 편리와 불편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살면 신의 뜻대로 사는 것인가?"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지 않는 것이다."
- <간디의 편지> 중. 모한다스 K. 간디 지음.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꼭 버는 돈이 많지 않다. 다만 특별히 과시용 소비를 즐기지 않고 제 멋에 살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차곡차곡 저축해서 형성한 자산이 있다. 

오히려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한 사람들의 형편을 의심해 보자. 아이 머리에 2만 원짜리 헤어밴드 씌워 주는 내가 그러했듯, 실속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북유럽풍 옷만 입혔던 내가 그러했듯, '적당히 쓰며 사는 게 인생 아니겠냐'며 목소리까지 크다.

이젠 절약하는 삶에 목소리를 높인다. 과시용 체면 소비로 지갑이 얇아졌던 나부터 SNS에 7년된 샤워 퍼프를 올린다. 각자의 삶에서 겉치레를 벗어버리고, 이웃에게 '있어 보이는 삶'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dahyun0421)에도 실립니다.


태그:#최소한의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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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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