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민은행 노조가 총파업에 나섰다. 예전 같았으면 북새통을 치렀을 법한 사건인데, 웬일인지 이번만큼은 일선 점포에서 큰 혼란을 겪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은행원 없이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입을 모았다. 비대면 거래가 크게 증가했다는 걸 증명해준 사례였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조사한 금융 채널별 거래 비중에 따르면 대면거래 비중은 고작 9.5%에 불과했다. 이러한 현실은 은행권 인력수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은행권 인력이 4년 안에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것이다. 금융연구원의 '금융인력 기초통계 분석 및 수급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 인력수요가 2023년에는 지금보다 4만 명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전체 은행원의 약 10%에 달하는 수치다.

무인화 시대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불과 4년 안에 은행원 10명 가운데 1명가량을 잉여인력으로 만들 만큼 빠른 속도로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무인화의 바람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는지, 아울러 그의 파장은 어떤 종류의 것인지, 23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가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에서 이를 취재했다.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무인화 바람, 어디까지 왔나

세계 최초의 무인편의점 아마존고에서는 원하는 상품을 고른 뒤 별도로 계산할 필요가 없다. 상품을 들고 그냥 가게 문을 나오기만 하면 된다. 고객이 물건을 고르면 인공지능 센서가 고객의 휴대전화 앱 장바구니 목록에 이를 자동으로 등록하기 때문이다. 만약 물건을 구입하고 싶지 않을 경우 그냥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 취소도 알아서 한다.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 SBS

 
가게 문을 나서면 휴대전화 앱에 등록된 신용카드로 비용이 청구되는 방식인데, 이에는 인공지능과 머신 러닝(인간의 학습 능력과 같은 기능을 컴퓨터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술), 컴퓨터 비전(기계의 시각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구하는 컴퓨터 과학) 등의 첨단기술이 대거 접목돼 있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로드하고 매장에 들어가 상품을 고른 뒤 나오면 연결된 신용카드로 비용이 자동 청구되는 신기술이 채용된 것이다. 가게 안에는 점원이 단 한 명도 없어 이들의 개입 없이 고객의 취향에 따라 마음껏 제품을 고르거나 구입할 수 있다.

방송에 따르면 아마존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점원 없이 무인으로 운영되는 편의점이 국내에도 20여 곳이나 생겼단다. 패스트푸드점 열 곳 가운데 여섯 곳 이상은 이미 무인단말기주문시스템을 갖춰놓는 등 우리나라에도 무인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무인시스템이 확산되고 가속화되면서 키오스크, 즉 무인단말기를 만드는 업체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무인화 서비스는 특히 신기술 습득이 빠르고 바로 적용이 가능한 젊은 세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게다가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문화가 젊은 계층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면서 무인화의 확산에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는 양상이다. 제품을 고를 때 점원 등이 다가와 설명을 해주거나 특정 제품을 권유하는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에게는 영어로 접촉을 의미하는 '콘택트(contact)"의 반대어인 '언택트(접촉을 의미하는 콘택트에 부정 및 반대를 뜻하는 언(un)을 붙인 신조어)' 문화가 크게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 SBS

 
이에 대해 상명대 소비자학 이준영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들의 경우 우리가 보통 '관태기의 세대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 관계 권태기라고 해서 대면 자체를 꺼려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비대면 서비스라든가 무인화 서비스 같은 기술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거스를 수 없는 무인화 바람, 그 명과 암

방송에서는 무인화의 확산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 가운데 하나로 노동시장의 충격을 꼽고 있었다. 세계경제포럼은 로봇 산업의 발달로 7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반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2백만 개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LG경제연구원 역시 'AI에 의한 일자리 위험 보고서'를 통해 전체 일자리의 43%가 AI나 무인시스템으로 대체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 SBS

 
LG경제연구원의 김건우 연구원은 "단순한 상품 판매를 하는 직종뿐 아니라 전통적인 사무직이라고 할 수 있는 화이트칼라직 그리고 기계조작직 이런 특정 직군들이 자동화, 특히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서비스업 직종 중심으로 자동화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보기에 서비스업이 자동화됐을 때 어떤 일자리로 이를 메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 SBS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무인화의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젊은 계층과는 달리 노년 계층에게 무인단말기는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도심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의 다수는 제품 주문을 사람이 아닌 무인단말기가 대신하고 있었다. 특히 특정 시간대에는 점원이 있어도 무인단말기를 이용한 주문만 받곤 했다. 대부분의 노년 계층에게는 기계 다루는 일이 익숙지 않아 단말기 앞에서 몇 차례 주문을 시도하다가 아예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곤 한다. 무인단말기가 설치된 매장에는 가지 않겠다는 어르신들의 하소연은 결코 엄살이 아닌 것이다.

리서치 전문기업 엠브레인이 지난달 10일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인결제기기 이용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50대의 선호도는 2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42%의 선호도를 보인 20대에 비해 무려 두 배가량 낮은 수치다. 만족도가 낮은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대부분은 "사용방법을 모르거나 어렵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장애인에게 무인단말기는 어떻게 다가올까? 공공시설과 상업 점포 등 여러 종류의 무인단말기를 직접 다뤄본 장애인들에게는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발매기가 너무 높아 휠체어를 탄 이들에게는 화면 자체가 잘 보이지 않거나, 점자 표시가 있는 버튼과 음성 서비스가 없어 터치스크린은 무용지물인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 SBS

 
이에 대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 이용석 정책실장은 "우리나라에는 키오스크와 관련한 규격이 있다. 규격대로 의무화되었으면 한다. 다음으로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키오스크를 전체의 10%면 10%, 이런 식으로 최소한의 분량이라도 할당하여 설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라며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고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조류다. 무인화 바람 역시 모든 영역에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고령자와 장애인 등 특정 계층은 무인화의 높은 파고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되레 소외되어가는 양상이다. 방송에서는 앞으로 이들 계층에 대해 보다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무인화... 그늘과 미래' 편의 한 장면 ⓒ SBS

 
아울러 방송의 말미를 장식했던 상명대 소비자학 이준영 교수의 다음 발언은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센 파고 앞에서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해답의 일부를 제공해준다. 귀 기울여봄직하다.

"사람이 주는 직접적인 따뜻한 감성 또는 스킨십 같은 것들이 앞으로는 훨씬 더 고급화된 서비스로 자리를 잡을 수도 있고, 이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뉴스토리 무인화... 미래와 그늘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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