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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즐겨 하는 취미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봄 되면 프로야구를 관전하고, 겨울에는 영화를 본다고 얘기할 것이다, 얼마전 까진. 술 마시기가 가장 먼저 나오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30대 중반까지는 종종 스키장에 가서 설원(雪原)을 달리기도 했건만, 40대가 되면서부터는 '눈으로 보는' 것 말고 몸을 써서 하는 취미 활동이 없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TV만 보는 주말을 매주 보낼 수는 없기에, 내가 과연 뭘 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온라인 쇼핑몰의 취미 카테고리를 찾아들어가 현존하는 취미 관련 상품을 찾아봤다. 대부분 운동 기구 아니면 악기였다. 사실,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이 가장 필요하나 재미가 느껴지는 종목이 선뜻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취미 카테고리가 아닌 장난감 카테고리에서 특이한 광고배너가 눈에 띄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롯데월드타워의 블럭완구 제품이었다. 블럭완구는 거의 30년 전 초등학생일 때 마지막으로 조립해보고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완구는 블럭의 크기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레고(LEGO)의 제품보다 훨씬 작았다. 바로 '나노블럭' 이라는 제품이었다.

매주 휴일, 무언가를 한다는 것
 
롯데월드타워 블럭
 롯데월드타워 블럭
ⓒ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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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Nano) 는 그리스어로 '아주 작다' 라는 의미인데, 10억 분의 1배를 뜻하는 미터법 단위이다. 기존의 블럭보다 더 작은 블럭이라 통칭 '나노블럭'으로 불리는 것이다.

책상에서 조립이 가능해 공간도 많이 차지 하지 않고, 어린 시절 장난감을 조립할 때의 재미도 기억이 나서 바로 주문했다. 그리고 며칠 뒤 큰 박스에 담긴 나의 첫 번째 나노블럭 완구가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박스 포장을 뜯고, 엄청난 숫자의 블럭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비닐에 담긴 블럭들을 쏟아내고, 그림 설명서를 보면서 조립을 시작했다.

어릴 때 레고블럭을 조립하던 기억이 살아나 조립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큰 실수를 했다. 블럭들을 한 박스에 전부 다 부어버린 것이다. 5000개가 넘는 작은 블럭들이 전부 섞여버렸다.
 
롯데월드타워 블럭
 롯데월드타워 블럭
ⓒ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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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실수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노블럭은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최소 색깔 별로 작은 박스에 분리해서 담아야 블럭을 찾는 시간을 훅 줄일 수 있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블럭을 조립하는 시간보다, 블럭을 찾는 시간이 더 걸리게 만드는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에 쫓겨서 빨리 완성을 하려고 시작한 취미가 아니라, 매주 뭔가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재미를 느끼기 위한 것이었다.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아내듯, 작은 블럭을 찾아내며 천천히 조립했다. 매주 휴일에 뭔가를 하는 취미가 하나 생긴 것이다.

약 4주 정도 걸려서, 드디어 처음으로 시작한 롯데월드타워 블럭이 완성이 되었다.
 
롯데월드타워 블럭
 롯데월드타워 블럭
ⓒ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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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어른이 무슨 장난감을 가지고 노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작은 블럭들이 하나의 건물 형상으로 완성이 되는 순간 작은 성취감이 느껴졌다. 작은 모형이지만 마치 건물을 만들었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건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나는 바로 또 다른 나노블럭 완구를 찾아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제품을 주문했다.
 
디즈니랜드 성 블럭
 디즈니랜드 성 블럭
ⓒ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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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나노블럭은 '디즈니랜드 성' 이었다. 박스를 개봉하고, 봉지에 담긴 블럭들을 보니 마치 스키장 정상에서 슬로프를 내려가기 직전 잠시 숨을 고르며 아래를 내려다 보는 느낌이 들었다. 
 
디즈니랜드 성 블럭
 디즈니랜드 성 블럭
ⓒ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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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체구의 어른이 손톱보다도 작은 블럭을 책상에 앉아서 약 2시간 정도 조립하면 가장 먼저 어깨가 아프고, 그 뒤로 허리도 아파온다.

취미는 즐겁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그런 증상이 감지되면 나는 바로 조립을 중단한다. 그런데 휴일에 오전에 한번 조립을 시작하면 저녁에도 조립을 하고 싶어진다. 블럭 조립도 약간의 중독성이 있었다. 하지만 손도 쓰고, 머리도 쓰는 중독이니 그리 나쁘지는 않다.

또 한달이 지나, 디즈니랜드 성도 완성이 되었다.
 
디즈니랜드 성 블럭
 디즈니랜드 성 블럭
ⓒ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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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블럭은 두 번을 해봤으니, 또 다른 스타일도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세 번째로 선택한 나노블럭은 해적선이다.
 
해적선 블럭
 해적선 블럭
ⓒ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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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건물보다 크기는 작지만 조립하는 게 약간 더 어렵다.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블럭을 조립하는 재미이다. 사람은 도전을 즐기는 동물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플라스틱으로 일체형으로 찍어낸 모형을 사는 것이 아닌, 일부러 작은 조각들을 붙여서 완성을 시키기 때문이다.

해적선을 완성하고 새롭게 또 시작할 나노블럭이 뭐가 될지 벌써 설렌다.

태그:#나노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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