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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곡성은 고용위기를 겪는 여러 지방도시 가운데 대기업에 대한 지역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민간연구단체인 랩2050은 최근 곡성을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고용위기가 가장 취약한 곳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금호타이어가 중국 기업에 매각된 후, 곡성 공장은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고 고용불안과 지역경제 공동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곡성을 통해 한국 제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진단하고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본다.[편집자말]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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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GM) 같은 경우는 그동안 여러 징후가 있었죠. (GM) 자동차가 오랫동안 잘 안 팔렸어요. 이미 문제가 불거지면 대응책을 마련해도 쉽지 않은데, 곪아터질 대로 터진 상황에선... (고용위기가) 불가피한 겁니다."

조용하지만 거침 없는 말투였다. 그는 때때로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그는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며 대기업과 노동조합, 지자체 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배 원장은 제조업 붕괴로 인한 고용위기는 한 순간에, 기업 등 하나의 경제주체로 인해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따금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특히 대기업 공장폐쇄로 지역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대기업만 바라보는 게으른 전략"만 쓰고 있는 지자체를 비판할 때 배 원장의 목소리는 가장 커졌다. 

지난달 15일 세종시 한국노동연구원을 찾아 그에게 제조업 고용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해법을 알려면 문제를 먼저 알아야 한다던가. 그는 현재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견뎌내고 있는 조선업계, 한국지엠 공장폐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군산지역 등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배 원장은 결국 '작은 산업'에 실마리가 있다고 봤다. 그는 인삼산업을 육성해 자립도를 키워가고 있는 충남 금산군을 밀착 연구했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찾은 전남 곡성군처럼 금산 역시 한국타이어 공장에 의존하던 소규모 도시였다. 배 원장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확실한 전략은 지역에 남아있는 유통업, 농산물가공업 등 작은 산업을 혁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 투자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경제를 꾸려나가야 튼튼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조선업 잘나갈 때 노사가 아무런 대비 안 해... 무책임한 것"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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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조선업계에 큰 바람이 불고 있다. 결국 '빅2'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아래 현대중)만 살아남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15년 말 우리나라 조선업계 고용수가 20만3000명이었다. 지금은 1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동안 조선업 규모가 많이 커졌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때 사실 조선 수주량이 확 줄기 시작했다. (일본 등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조선업을 그때 키웠는데, 해양플랜트 때문이었다. 유가가 뛰면서 해양플랜트 수주가 늘어나 우리가 돈을 많이 벌었다. '이게 되나 보다' 싶어서 자금이 몰리고, 조선업을 더 키웠다. 그러던 중 셰일가스로 유가가 떨어지니 해양플랜트 수주도 줄었고, 설계 능력이 떨어져 적자도 났다. 플랜트를 만들어놔도 주문한 쪽에서 가져가지 않았다. 

해양플랜트 사업은 굉장한 기술력을 요하는 것인데,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무리하게 뛰어들었다. 남들이 조선 쪽 규모를 줄일 때 우리는 거꾸로 했다. 이후에 구조조정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구조조정도 편향됐었다. 조선은 70~80%가 사내하청업체로 이뤄져 있다. 이 부분이 줄었다. 그리고 물량팀이라고 해서 임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줄었고, 정규직 같은 경우 사무직 등이 줄고 생산직은 덜 감소했다. 구조조정을 당하더라도 정규직들은 명예퇴직금 등 상당히 많이 받고 나갔다. 비정규직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우리 노동조합들이 정규직으로만 조직돼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설움 등은 대변하지 않는다. (노조가) 위선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 현대중, 대우조선해양(아래 대우조선) 쪽 노조는 두 회사 합병에 반대하고 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조선이 잘나갈 때 미래를 위해 노사가 아무런 준비를 안 했다는 것이다. 무책임한 거다. 조선은 경기가 굉장히 출렁거린다. 그럼 노사가 어려울 때를 대비해 뭔가 해놨어야 할 것 아닌가. 회사도 그렇고 노동조합도 그렇고, 잘 벌 때는 정말 돈 엄청 벌었다. 그때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마지막에 어려워지니까 정부한테 돈 빌리고, 그게 무슨 짓인가."

- 노조는 회사 합병 뒤 대규모 해고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같은 나라에 대형조선소 3개, 이게 과연 지속 가능한 모델인가라는 논란도 있다. (현대중-대우조선) 합병 뒤 조선 물량이 적으면 (조선 경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반대로 조선 수주 물량이 많으면 커버할 것이다. 조선업계에는 (선주들이) 선박을 주문하는 주기가 있다. 과거 금융위기 때 그런 주기가 맞아 떨어져 수주 물량이 감소해 어려웠던 점이 있었는데, 이제 새롭게 발주가 시작되는 시기에 있다. 또 예를 들어 유선 같은 경우 펑크가 나면 어마어마한 환경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환경규제가 강화되면 선내 벽을 2중으로 만드는 이런 요구가 있을 수 있는데,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것이어서 조선업계 전망이 그렇게 우울하진 않을 것 같다. 

아마 (현대중-대우조선 설비 가운데)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면 일부 구조조정이 생길 수 있다. 앞서 현대중이 삼호중공업을 인수할 당시에는 별로 크게 문제된 점이 없었다. 오히려 삼호중은 현대중이 인수해서 살았다. 삼호중은 현대중보다 조금 더 저렴한 배를 만들 수 있는데, 현대중의 영업력으로 삼호중에 수주를 나눠줬다."

- 조선업계 대규모 구조조정 문제를 완화할만한 단기적인 해법이 있을까. 
"현대중에는 지금 고령자가 많다. (노동자들이) 뭉텅이로 나갈 것이다. 조선 쪽에 새로운 기능인력을 뽑기 쉽지 않은데, 오히려 이 문제는 (세대교체) 그런 쪽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앞서 조선업계 구조조정 때문에 현재 수주한 물량을 소화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세대교체에 상당히 성공했다. 조선소들이 젊은 인력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업계에) 젊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데, 앞으로 이 인력들이 빠르게 나가겠는가.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적지 않나 생각한다."

"지자체들, 대기업만 바라봐... 관광 등 작은 산업 혁신 고민해야"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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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지역도 고용위기가 심각한 지역 중 하나다. 
"현대중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고,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을 때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자동차가 팔리지 않는 등 위기징후가 나타나면 지역차원에서 뭔가 대책을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맸어야 하는데…. 전북도 마찬가지였고, (지역) 국회의원도 비슷했다. (지자체 등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미리 대처했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손 놓고 있다가, 그쪽(군산)에서는 다시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는데 말이 되는가.

현대중이 군산 인력 600명을 (울산으로) 데리고 갔다. (조선소 폐쇄 후)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정리해고 한 것이 아니라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일부 데려갔다. 문제는 군산 쪽이었다. 굉장히 높은 임금의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제조업이 하나 있으면 그 지역 도소매업체 등이 다 같이 먹고 산다. 조선소의 경우 블록제조업체 등이 따라 붙는다. 생태계가 꽤 큰 것이다. (제조 대기업) 하나만 망하면 상당히, 심각하게 말하면 그 지역이 초토화되는 것이다."

- 군산시 고용위기 문제, 당장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한국지엠은 군산공장터 3~4 군데를 내놨는데 또 비싸게 팔려 하더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공장 터에) 전기차 등 만드는 회사를 유치하면 좋을 텐데 만만치 않다. 또 하나는 전혀 다른 대기업을 유치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많은 지자체들이 대기업이 지역에 투자해서 일자리도 만들어주고, 인프라도 깔고, 이런 것을 다 해주길 바란다.

천수답, 하늘만 쳐다보고 비가 오길 기다려서 농사 짓는 게으른 전략이다. 확실한 전략 중 하나는 현재 굉장히 작지만 지역에 남아있는 산업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군산 사람들도 먹고 살 것 아닌가. 빵집을 하든, 작은 유통업이나 농산물가공업이든, 이런 것 중에 군산지역에 모여있는 산업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 말이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산업 육성에) 성공하면, 숙련공이 (군산에) 모여있다고 하면 투자가 유치되는 것이다. 군산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 유산도 있는데, 이런 부분을 관광과 연계할 수 있다. (목소리를 높이며) 이런 것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지자체가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안타깝다."

고용위기 단기해법? "고용보험 대신 세금으로 실업급여 거둬야"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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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위기지역 지원 예산을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는데 어떻게 보나. 
"그러한 예산은 진통제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노동자가 새로운 산업,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가는데 (고용 관련 예산이) 도움이 안 된다면 소용 없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노력과 지역의 노력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

그는 오히려 실업급여 시스템을 개편하는 쪽이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배 원장은 "실업급여를 확대하려면 고용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사용자도 떨떠름할 것이고, 노동자들도 월급에서 더 떼는 것을 싫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획기적인 방법은 고용보험제도 대신 세금으로 실업급여를 미리 걷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고용신고를 하지 않는 기업들과 노동자들이 꽤 있는데, 세금으로 실업급여를 지급하게 되면 고용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최근 고용위기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 곡성군으로 현장취재를 다녀왔다. 금호타이어 곡성공장 문제로 고용대란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금호타이어가 중국기업에 인수된 것은 금호그룹의 무능, 노동조합의 무책임이 겹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한다. 금호타이어가 한때 잘 나갔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타이어에 완전히 뒤쳐졌다.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은 타이어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 없었다. 노조는 '사장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며 무책임했다. 곡성의 경우 정말 금호타이어 공장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지역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 지역산업과 고용거버넌스 자료를 보니 이탈리아 사례도 언급했다. 특정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 산업지구에 모여있으면서 긴밀한 협업관계를 이룬 성공사례였다. 곡성과 같은 소도시가 배울 점이 있다면?
"금산의 인삼, 완도의 전복 등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유지해오던 산업이 있다면 이를 발전시키고 또 새로운 제품 생산을 고민해볼 수 있겠다. 이탈리아에선 올리브유, 와인 등을 유럽시장 전체에 판매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체계적으로 형성돼있다. 사실 농산물가공업이 쉽진 않지만, 앞으로 중국의 중산층들이 고급음식을 찾기 시작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곡성의 경우 토란 등 특화할 농산물을 정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소박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지자체가 토란을 계획재배하고, 가공은 어떻게 할 것인지 식품연구원 등과 함께 연구하는 식이다. 개별적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장 큰 기대는 하지 말고 10년 이상 시간을 갖고 접근해야한다."

- 제조업 고용위기 해법, 중장기적으로 보면 어떤 것이 있을까.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주먹구구식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에 사람이 안 간다. 혁신도 안 된다. 중소 제조업체에 대졸 엔지니어들이 없다. 임금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포용국가로 가야 한다'는 일반적인 담론 논의만 무성하다. 정말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안타깝다. 

우리나라에 450만개의 제조업체가 있다. 제조업과 연계되는 것이 정말 많다. 연구개발(R&D), 디자인, 마케팅, 사후관리서비스(A/S) 등이다. 그리고 부품업체도 있다. 제조업을 혁신하면 그 성과가 국내외적으로 굉장히 커질 수 있다."

- 인공지능 등 기술발전으로 인해 없어질 일자리 등도 거론되는데, 그렇다고 노동자 재교육 등 해법도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재교육은 필요하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경우 노동자 근속연수가 정말 짧기 때문에 재교육 유인이 크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이면서 동시에 해나가야 한다. 정부에서 스마트공장을 2만개쯤 세운다고 한다. 전사적자원관리(ERP)라는 것이 있는데, 스마트공장에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틀을 활용하려면 일정한 숙련이나 지식이 필요하다. 이 같은 시스템을 어떻게 나에게 맞게 활용할 것인지가 또 다른 과제다. 스마트공장이 현재 중소기업들의 실정에 맞게 활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할 계획이다."

태그:#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제조업, #고용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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