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시선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상대와의 호흡도 중요했지만, 하나 더 이야기하면 리액션? 영화 속 민경이 상대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반응할까? 이걸로 인해서 인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촬영하면서 이 두 가지를 고민했다."

2018년 <버닝>의 전종서,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 <박화영>의 김가희, <마녀>의 김다미 등 다양한 여배우들이 활약했다. 이는 나름의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며 한국 영화에 새 활력을 불어넣었다. 2019년 이를 잇는 신예가 등장했다.

김중현 감독의 영화 <이월>에서 민경 역을 연기한 조민경이다. <이월>은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준비하는 20대 민경이 겪은 춥고 외로운 어느 2월에 관한 이야기다.

"선배님들의 응원을 들을 때 힘이 생긴다. 제가 그분들보다 인지도가 없더라도, 한 방향에 있었다는 것에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다. 소중한 경험을 한 작품이 <이월>이다."

조민경에겐 이번 작품이 첫 영화다. 그동안 연극 무대 중심으로 활동해 카메라가 낯설었지만 그에겐 배움의 시간이었던 것. 그는 "정신없이 찍었다. 연극, 뮤지컬을 많이 했었는데 카메라 앞에서는 연기가 처음이라 어색하고 어렵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역을 맡아 공부가 많이 되었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배우 자신보다 작품 속 인물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조민경을 지난 13일 을지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기쁨과 슬픔을 관객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작품 속의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 조민경

배우 조민경 ⓒ 김광섭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

그는 영화 <이월> 개봉 이후 '관객에게 영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더 많은 관객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제가 맡은 역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관객 본인의 모습이 보여 흥미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기분이 좋고, 감사한 일이다."

영화 속 민경은 월세가 밀려 쉴 곳을 잃고, 돈과 만두를 훔쳐 일자리를 잃었다. 낮에는 수강신청하지 않은 채 몰래 강의를 듣고, 밤이면 아파트 신축 현장의 컨테이너를 찾아 잠을 잔다.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는 술을 먹고 사고를 쳐 수감 중이다. 몸과 마음이 추워질수록 침낭 속의 민경은 애벌레처럼 움츠러든다. 하지만 민경은 고단한 취업 준비생 보통의 모습에서 조금 어긋난 인물이다.

첫 장면에서부터 민경의 행동은 심상치 않다. 자살을 시도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친구 여진(김성령 분)을 쭈그려 앉아 내려다보며 그의 얼굴에 호 하며 숨을 내쉰다.
 
"친구를 바라보면서 숨으로 바람을 부는 행동이 세 번 정도 나온다. 첫 장면을 찍을 때도 감독님이 설명해주셨는데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지 않나. 빨리 깨워서 병원이나 경찰에 연락해야 하는데, 제가 하기에 어려운 행동을 할 때마다 인물과 괴리감을 느꼈다."

그가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당황한 이유 중 하나다. 조민경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직접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며 살지는 않아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라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김중현 감독은 그가 인물 민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소설과 시집을 선물하고 영화를 추천했다고 한다. 조민경은 "황정은 소설가의 <아무도 아닌>과 최정례 시인의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를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영화는 여러 작품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하나 그리고 둘>이었다. 그 다음에는 감독님과 한 신, 한 신 같이 읽어 내려가면서 인물이 가진 시선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고백했다.
 
 영화 <이월>

영화 <이월> ⓒ 무브먼트

 영화 <이월>

영화 <이월> ⓒ 무브먼트

 
'이해'가 필요한 영화 <이월>

"한 단어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이해라는 단어가 필요한 영화인 것 같다. '<이월>에 나오는 인물을 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가 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 이런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지금도 호불호 갈리는 지점이 '이해' 부분인 것 같다. 공감보다는 이해."

여진이 깨어나 지방에서 요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민경에게 미묘한 심경 변화가 나타난다. 조민경은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이 순간과 여진에게 죽음에 이르는 의미심장한 방법을 조언하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꼽았다. 그는 "'나에게 이런 얼굴이 있구나', '이런 인상이 있구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당황했다. 가장 힘들었던 신이기도 하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민경은 여진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여진의 상처를 말하거나, 여진이 실망했을 때 묘한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데 여전히 여진은 민경보다 잘 웃는다. 여진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집을 새로 지어줄 아빠가 있다. 민경은 부러움을 넘어 여진이 싫다.
<이월>을 찍을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그에게 민경의 모습과 닮은 지점이 있는지 물었다.

"힘들거나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알게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밉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저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그런 감정이) 들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않았다는 불안감?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

촬영을 마친 이후인 2년 동안 조민경은 민경이라는 인물과 <이월>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는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웅덩이 속으로 다시 빠질 것 같은 두려움

민경이 잠시나마 따뜻함을 느끼는 때는 그가 아저씨라고 부르며 돈을 받고 잠자리를 가지던 이혼남 진규(이주원 분)의 아파트에서 살면서다. 그곳에서 진규의 어른 같은 8살 아들 성훈(박시완 분)과 만난다. 민경은 성훈이 라면을 끓이는 모습에서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한다. 민경이 라면을 끓여주려고 하자, 성훈은 말한다. '누가 대신해 주면 생각나서 싫어요.' 동정받기 싫었던 민경 자신의 얼굴을 성훈에게서 본다.

"(박)시완이도 긴 영화는 처음이었다. 게임을 같이 하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친하게 나오는 장면들이 많았다. 시완이는 계산하고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그 상황 안에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 초등학생인데, 굉장히 편안하게 찍은 것 같다. 물론 다른 인물도 편했다."

성훈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함께 설거지를 하면서 둘은 정이 들었다. 하지만 민경은 썰매장에서 성훈을 버린다. 후회했을 때는 이미 성훈이 사라진 후다. 늦은 밤 아파트에 돌아왔을 때, 민경은 애써 태연한 척하는 성훈과 마주한다. 민경은 성훈에게
"집에 갔다 왔어. 이제 진짜로 집이 없어졌다"고 말하며 "무서운 이야기 해줄까? 아주 옛날에 전쟁이 났었는데"라며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다 웅덩이 속으로 사라진 여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훈이 무섭지 않다고 하자 민경은 무섭다고 슬퍼한다. 성훈은 "나 없어져서 화났어? 앞으로 안 그럴게"라며 민경을 이해하려고 한다.
 
 배우 조민경

배우 조민경 ⓒ 김광섭

 
이 시대의 민경들, 힘을 내자

여진의 집과 진규의 아파트, 그리고 월세 밀린 지하방을 떠돌다 민경이 계속 되돌아오는 곳은 차갑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컨테이너다. 하지만 마지막에 묘한 해방감을 맛보는 공간 또한 컨테이너다.

"감독님이 해주셨던 말은 민경이가 혼자 걸었던 길, 여진이와 산책하거나 아이를 학교에 데려주면서 왔던 길을 바라볼 때, 선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선물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던 것 같다. 민경이가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봤으면 좋겠다는 게 컸다."

그는 민경이 죽지 않고 시험에 붙어 공무원 생활하며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민경이 고달프고 스스로를 힘겹게 하는 삶을 살았던 게 커서."

또한 그는 이 시대를 사는 민경들이 힘을 내서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조민경은 "힘이 빠지지 않나.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어떤 것이 힘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다 동원해 힘을 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민경처럼 삶이 두렵고 불안한 이들에게 <이월>을 추천했다.

"모든 분이 보시면 좋겠지만, 본인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큰 것 같다. 인물을 보고 이해와 공감이 되는 분들을 만나면 감사하거든. 한번 보고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많다. 감독님의 의도 아닌 의도이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보시면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꽤 많이 보인다.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여러 번 봐주셨으면 좋겠다."

'지금 자신의 2월은 어떤가'라는 물음에 조민경은 2월과 3월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는 답을 했다. 이어 그는 "내 미래는 이럴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 않나? 막막하고 불안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잘 지내고 잘 견디고 있는 것 같다. 제게 힘을 주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덧붙였다.

일문일답

- 일상은 어떤가요?
"아르바이트, 오디션을 반복해왔던 것 같아요. 영화 개봉이 끝나고는 어떻게 또 다른 것을 준비할까? 하며 새로 찍을 것들 준비하고 있어요."

- 최근 관심을 두는 것이 있다면?
"수영도 배우고, 헤어메이크업도 배워요. 그때그때 관심 생기는 것을 빨리 배우는 편이에요."

- 피아노는 계속 치나요?
"피아노는 잘 안 치게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우울할 때 가끔 치는 것 같아요. 쇼팽, 베토벤 등 입시 준비 때 쳤던 곡을 많이 쳐요. 뉴에이지, 영화 음악도 치고요. 올해는 옛날에 쳤던 곡을 다시 칠 수 있게 연습해야겠다 생각해요."

- 언제 우울한가요?
"내가 나를 봤을 때 부족한 것이 인정될 때?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어려울 때가 힘든 것 같아요. 내가 못하는 부분? 당장 가질 수 없는 것? 너무 하고 싶은 작품에서 떨어졌다던가, 진짜 하고 싶은데 자격요건이 안될 때 힘든 것 같아요."

- 기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가만히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실 때? 커피가 맛있을 때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좋은 문장, 공감되는 문장을 읽을 때 기분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 여진 역을 맡은 김성령과의 호흡은? 
"저보다 두 살 어리지만 대학교 선배예요. 자주 만나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사적으로 가까워지면서 편해졌죠. 워낙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친구예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원래 연기도 잘하기도 하고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2019년 3월호에도 실립니다.
조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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