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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인사이드'는 청와대,통일부,외교부,국방부,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정보'가 있는 칼럼입니다.[편집자말]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수호 예비역 장성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9.1.30
▲ 국기에 경례하는 예비역 장성단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수호 예비역 장성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9.1.3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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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군 후배들인 육·해·공 전 장병들은 위장 평화와 공산화 가능성이 높은 남북공조를 수행해 대한민국 국민·영토·주권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헌법 제5조에 명시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할 것인가. 분명하게 선택하라. 그리고 선택을 결행하라." - 1월 30일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이 발표한 대군(對軍)성명서 중

지난 1월 30일 공식출범한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아래 대수장)의 강경행보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수장은 9.19남북군사 합의서 채택 등으로 안보태세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등 기존 예비역단체들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400여 명의 예비역 장성들이 새로 만든 단체다.

지난해 11월 21일 9.19 군사합의 반대 등을 외치며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9.19 군사합의 대토론회'를 주최했던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일동'이 대수장의 모체가 됐다(관련 기사: 예비역 장성모임 "남북군사합의, 안보태세 위협" 주장). 대수장이 출범식 당일 채택한 대국민성명과 대군성명서를 보면 과연 이들의 주장을 예비역 장성들의 순수한 우국충정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종북 정치인들을 목숨 걸고 거부하라"

이들은 대국민 성명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실천은 조금도 진척이 없는데, 한국의 안보 역량만 일방적으로 무력화·불능화시킨 9.19 남북군사분야합의서는 대한민국을 붕괴로 몰고 가는 이적성 합의서"라며 "조속한 폐기가 그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신원식 전 합참차장(예비역 육군 중장)이 낭독한 대군성명서는 현역 군인들을 향해 군통수권자의 명령에 불복하고 집단행동을 부추기는 듯해 사실상 내란을 선동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대수장은 "군인은 조국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라며 "종북 정치인들의 망국적 행위들을 목숨 걸고 거부하라"라고 하는가 하면,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각 군 총장, 해병대 사령관은 헌법 정신에 입각에 2019년 2월내로 9.19 남북군사분야 합의서 폐기를 결의하고 전 군에 폐기를 지시하라"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다음달 1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 '한미동맹 수호'와 '북핵 폐기 없는 종선선언 반대' 등을 내걸고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자유는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군 원로로 대접받는 예비역 장성들이 노골적으로 항명과 집단행동을 선동하는 일은 이미 두 차례 군사쿠데타의 악몽을 간직한 국민들에게 협박과 엄포에 다름 아니다. 탄핵국면에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군대여 일어나라"고 외치는 것과는 무게감이 다른 것이다.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지만 대수장 공동대표 및 고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12.12 쿠데타와 5.18 광주 유혈진압 혹은 군사정권 아래 자행된 북풍공작 등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항명할 것을 공공연히 선동하는 군 원로들의 모습에서 기자는 67년 전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했던 이종찬 장군을 떠올린다. 항명은 항명이되 그 내용은 사뭇 달랐다.

참군인이란 무엇인가

1952년 5월 26일 전시수도 부산.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에게 유리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면서 야당이 우세했던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이에 반대했다. 병력동원을 종용하는 대통령의 재촉에 오히려 그는 "군인 된 자 수하를 막론하고 국가방위와 민족수호라는 본분을 떠나서는 일거수일투족이라도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육군훈령 제217호를 예하부대에 하달하는 것으로 맞섰다.
 
이종찬(1916~1983) 장군은 우리 역사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 원칙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 이종찬 장군 이종찬(1916~1983) 장군은 우리 역사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 원칙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 위키피디아 퍼브릭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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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참모총장의 항명에 직면한 이 대통령은 분노했다. 유재흥 육군참모차장을 불러 "이종찬을 즉시 포살(총살)하여 전군의 시범으로 하라"고 명령할 정도였으니. 총살은 면했지만, 이 장군은 이일로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나 한직인 육군대학 총장으로 좌천돼 4.19 혁명이 날 때까지 7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이 시기, 군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이 장군에게 여러 경로로 자유당 정권을 둘러엎자는 쿠데타 제안이 들어왔지만, 그는 예의 '군의 정치 불개입' 원칙을 내세워 모두 거절했다.

그는 일본 육사를 나와 공병 소좌(소령)로 종전을 맞았다. 사실 그의 가계는 뿌리 깊은 친일파 집안이었다. 할아버지 이하영은 일제로부터 한일병합에 협력한 공을 인정받아 자작(子爵) 작위를 받았고, 아버지 이규원 역시 '시종원경'을 지내며 부친 작위를 물려받은 소위 '습작자'다. 일본군 영관급 장교 경력 때문에 이 장군 자신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 장군은 일제에 부역했던 과거를 진심으로 뉘우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창군 과정에서도 자숙하고 반성하면서 야인을 자처했다. 1949년 5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소환조사를 받았지만,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작위 세습을 거부한 점이 감안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쿠데타는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라던 이종찬 장군

그는 이후에야 국군에 합류해 육군 대령으로 임관, 국방부 제1국장에 보직됐다. 이러한 이 장군의 행적은 남들보다 한발이라도 먼저 임관하려 과거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국군에 들어왔던 대다수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 군인들과는 분명 다른 행보였다.

아이러니하지만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이 장군의 신념은 12년간의 일본군 복무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일본군부가 2.26사건 등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군부가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결국 패망으로 치달았던 역사를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의 신념은 이것이었다.

"쿠데타는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두 번, 세 번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에도 비판적이었다. 지인에게 12.12 군사반란과 5.17 계엄확대 조치에 대해 "군과 나라의 기강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것"이라고 개탄했던 이 장군은 이 일로 수사를 받았고, 그가 회장을 맡고 있었던 성우구락부도 1980년 12월 해체됐다. 이후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이 성우회란 이름으로 재창설된 것은 1989년 12월의 일이다.

더 이상 군을 흔들지 말라

서슬 시퍼렇던 5공 시절, 군 원로들이 합법적 지휘체계를 파괴하고 자신들이 목숨을 바쳐 보호해야 할 국민을 학살했던 '새까만 군 후배'들에게 호통이라도 치는 기개를 보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군대는 무력으로 적을 섬멸하는 집단이다. 그래서 군인은 사물을 피아(彼我)로 구분하는 데 익숙하고,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일이 일상화된 사람들이다. 남북 간의 대치가 첨예했던 시절, 군에 평생을 바쳤던 예비역 장성들의 눈에 북한은 협력의 대상이기보다 무릎 꿇려 항복을 받아내야 할 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을 종북 정치인으로 폄하하고, 이 정부의 통일 노력을 국가파괴의 범죄행위로 낙인찍어 예비역 장성의 이름으로 군의 집단행동을 사주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가치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을 국군통수권자로 명시함으로써 문민통제에 대한 헌법적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의 정책 결정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군은 철저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좋은 쿠데타는 없다. 모든 쿠데타는 그 자체로 악이다. 대수장의 예비역 장성들이 그토록 군을 사랑한다면, 군을 더 이상 흔들지 말라. 이종찬 장군이 일제 부역이라는 적지 않은 흠결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참군인'의 표상으로 기억되는 이유를 한번 곱씹어 보길 바란다.

태그:#대수장, #남북군사합의서, #이종찬, #문민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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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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