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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할머니 카페'의 카페지기 김정순 할머니. 김 할머니가 어묵을 든 채 손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광양 "할머니 카페"의 카페지기 김정순 할머니. 김 할머니가 어묵을 든 채 손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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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형편이 더 안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을 돕지 못한 게 죄스러워. 핑계지만, 그 동안 손자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어. 올해부터는 주변 이웃을 좀 돌아보려고 해."

지난 8일 만난 김정순(80) 할머니의 말이다. 김 할머니는 전라남도 광양시 마동의 가야공원 주차장에서 '포장마차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광양사람들 사이에선 '할머니 카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카페지기 할머니는 '늙은 큰애기'로 통한다. 그만큼 나이에 비해 얼굴이 곱고 젊다는 얘기다.

"노점상이 불법인 줄은 알지. 그런데 어쩌겠어? 먹고 살아야겠는데, 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포장마차를 차렸지. 주변에 다른 장사가 없어서, 민폐를 끼치지 않아도 되니 불행 중 다행이었어. 아직까지 내쫓지 않고, 눈감아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광양시와 시민들이. 고마운 마음에 시작한 게 공원 청소야."

김 할머니가 남편(장기범·86)과 함께 가야공원과 화장실 청소에 나선 이유다. 포장마차를 차리면서 시작했다. 올해 19년째다. "내 업소 주변이니, 내가 관리하는 게 당연하지." '다른 계절은 그렇다 치고, 겨울에 많이 힘들겠다'는 말에 대한 김 할머니의 대답이다. 
 
김정순 할머니가 커피를 담은 컵에 물을 따르고 있다. 김 할머니는 여기서 커피와 어묵, 핫도그 등을 팔고 있다.
 김정순 할머니가 커피를 담은 컵에 물을 따르고 있다. 김 할머니는 여기서 커피와 어묵, 핫도그 등을 팔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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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할머니 카페'에서 파는 어묵. 김정순 할머니의 생계를 이어주는 품목 가운데 하나다.
 광양 "할머니 카페"에서 파는 어묵. 김정순 할머니의 생계를 이어주는 품목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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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살던 김 할머니 부부가 인연이라곤 하나도 없는, 생면부지의 땅 광양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한 건 19년 전이다. 집을 나간 아들이 숨어서 지내고 있던, 아들친구 집을 찾아온 게 인연이었다.

"아들이 빚 보증을 섰다가 돈도, 집도 전부 말아먹었어. 이사람 저사람한테 쫓겨 숨어 지내다가 결국 도망을 갔지. 아무 것도 없이 빈 손으로. 아들을 찾아 전국을 다 다녔어. 수소문 끝에 알아냈는데, 광양 친구집에 있다더라고."

김 할머니 부부는 광양에서 지내고 있던 아들을 만나 '다시 시작하자'고 설득했다. 그때 당장의 생계를 위해 시작한 게 붕어빵 장사였다. 붕어빵 장사는 밑천 없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았다. 그 사이, 하나뿐인 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급성 백혈병이었다. 김 할머니 부부는 부모 없이 남은 손자 둘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김정순 할머니가 손님이 없는 틈을 이용해 잠시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정순 할머니가 손님이 없는 틈을 이용해 잠시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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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손자들만 보고 살았어. 설날과 추석날 하루씩만 쉬고, 날마다 장사를 했어. 포장마차를 하며 코흘리개 손자들을 다 키웠네. 이제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됐으니, 우리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아."

말끝을 흐린 김 할머니가 잠시 포장마차 밖을 쳐다본다. 김 할머니는 핫도그를 굽고, 라면과 계란, 어묵, 커피를 팔며 올해 나이 80대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남편도 부쩍 수척해졌다. 건강도 좋지 않다.
  
김정순 할머니가 구워 낸 핫도그. 광양 '할머니 카페'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김정순 할머니가 구워 낸 핫도그. 광양 "할머니 카페"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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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 할머니의 일터인 포장마차. 주민들 사이에선 '할머니 카페'로 알려져 있다. 광양시 마동 가야공원 주차장에 있다.
 김정순 할머니의 일터인 포장마차. 주민들 사이에선 "할머니 카페"로 알려져 있다. 광양시 마동 가야공원 주차장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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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이 많아. 김장을 했다고, 김치를 가져다주는 분도 계시고. 동짓날에 동지죽도 가져다주고. 설날을 앞두고선 떡국 떡도 가져다줬어. 여기 간판과 메뉴판도 동네사람들이 만들어줬어. 고맙고, 고맙지. 핏줄 하나 없는 우리한테, 다 가족 같은 분들이야. 내가 해줄 게 뭐 있나. 커피 한 잔 타주는 것으로 보답할 뿐."

김 할머니의 장사도 예년 같지 않다. 오래 전,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 20만 원도 벌었다. 요즘엔 5만 원을 벌기도 버겁다. 하지만 욕심은 없다. 나이가 많이 들었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노령연금도 받고 있다.

"장사는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침마다 나갈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행복하고. 공원을 청소하며 관리하는 것도 보람이지. 하는 데까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려고 해."

소박한 김 할머니의 바람이다. 그 소망을 응원한다. 
 
김정순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다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올해 나이 80살이 됐음에도 피부가 곱다.
 김정순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다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올해 나이 80살이 됐음에도 피부가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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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립니다.


태그:#할머니카페, #김정순, #가야공원, #포장마차, #광양 가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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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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