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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문화원은 매월 셋째 주 금요일 주민들을 상대로 '지역별 테마가 있는 역사기행'을 실시한다. 지난 15일은 경기도 평택을 다녀왔다.

참여자 대부분이 고령자인 관계로 동절기에는 숫자가 다소 줄어들었지만, 당일 약속한 8시 20분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잠실야구장 건너편 정신여고 앞에 대기 중인 전세 버스에 모두가승차한 것만 봐도 열성이 대단함을 알 수가 있다.

29명을 태운 버스가 평택 시청 근처에서 평택시가 추천한 김연숙 역사문화 해설사를 동승시킨 후 본격적인 시내투어에 들어갔다.

해설사의 해설에 의하면 한자로 평택은 평평할 평(平)자에 못택(澤)자를 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평지와 연못이 많고 산이라고 할 만한 산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평택은 농지가 많았고, 따라서 궁궐 소유의 농토가 많아 평택의 지명에 유난히도 궁(宮)자가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삼남대로가 통과하는 교통요지였다. 지금도 평택항을 비롯한 해상교통의 요충이고 여러 갈래의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육로 교통요지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미군부대 이전 등으로 인한 도시기능이 발달하면서 도농복합 도시로 빠르게 발달하는 곳이다.

첫 번째 역사 기행지, 대동법 시행 기념비

대동법은 1608년 처음 실시됐다. 당시로는 각 지방의 특산물을 내던 공물이 국가의 소용시기와 백성의 납부 시기가 맞지 않는 등 부작용이 있어, 각 지방 대소 구분 없이 토지의 결수에 기준해 쌀로 환산 납부하거나, 산간에서는 무명으로 납부하게 했다고.

평택시 소사동에 있는 대동법 시행 기념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0호다. 1659년 김육이 충청감사로 있을 때 삼남지방(당시는 평택이 충청도)에 대동법을 실시하면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고르게 배분한 공로를 잊지 않고 오래오래 기억하도록 하기위해 삼남지방을 통하는 길목에 주민들이 설치했다고 한다.

김육에 대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시대에 꽤 개혁적인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동법을 시행한 김육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공덕비
▲ 대동법시행기념비 대동법을 시행한 김육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공덕비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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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역사 기행지, 평택향교와 팽성객사

어느 지방을 가나 향교는 대부분 있는 것 같다. 팽성읍 객사리에 있는 평택향교 역시 조선초기 고장의 어진 선비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 교육을 위해 창건됐다. 일제시대에는 농민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경기도 문화재 자료 4호로 지정돼 있으며 낮으막한 언덕위의 장송을 배경으로 한 건물 배치가 조화롭고 아늑함이 예사롭지 않은 명당 같기도 하다.

  
외3문
▲ 평택향교 외3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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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언덕아래 평택향교
▲ 평택향교전경 노송언덕아래 평택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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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는 지방출장을 가거나 하는 관리들이 묵었던 숙소라고 하며 때로는 임금도 묵을 수 있는 곳이란다. 팽성읍 객사는 성종 19년에 크게 지었으며 2번의 수리를 했다.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객사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의 얼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양조장으로 썼다는 해설사의 얘기를 들으며 이것도 일제의 만행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들의 숙소
▲ 팽성객사 관리들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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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부분이 왕이 유숙하기도 한 숙소
▲ 팽성객사 가운데 부분이 왕이 유숙하기도 한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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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역사 기행지, 안정리 농성

동행한 탐방객 대부분이 송파구 거주인 들이라 그런지 토성에 올라서자마자 " 작은 풍납 토성이네!"라고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작은 토성이다. 평지에 축성한 이런 소규모 토성은 삼국시대 초기 국가형성단계에서 볼 수 있는 형태라고 한다. 바다가 가깝고 평야지대인지라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한 성이라는 설과 평택임씨의 시조인 충절공 임팔급의 동상이 세워져있는 만큼 그 토착세력들이 근거지로 축성한 토성이라는 설이 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은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는 토성의 높이나 외벽 경사도 등을 봤을 때 왜구나 적을 막기 위한 성이 아니라 평야가 넓은 지역인 만큼 생산량이 많은 농산물을 쌓아두고 도둑을 막기 위한 농성(農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진눈깨비를 맞으며 토성 위를 걷는 것도 운치가 있어 좋다.
 
진눈깨비 맞으며 걷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 농성1 진눈깨비 맞으며 걷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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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 어울리는 토성입니다.
▲ 농성2 솔이 어울리는 토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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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역사기행지, 평택농업박물관과 자연테마 식물원

오성면 숙성리에 있는 농업박물관은 평택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을 한다고 한다. 약 300평 규모의 전시장에는 50년대, 60년대 우리 농가에서 흔히 사용했던 대부분의 농기구와 각종생활 도구가 연대별로 잘 정리돼 있어서 과거로의 여행 같았다.
 
오리깨를 비롯한 농기구들
▲ 농업박물관 오리깨를 비롯한 농기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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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찧을때 사용하던 원동기 등
▲ 농업박물관2 방아찧을때 사용하던 원동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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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과 연못이 많았다는 평택, 50~60년대 고향 순천에서 농토가 없는 이웃집 아저씨가 봄이면 "평택으로 농사지으러 갔다가 가을이면 쌀 열 가마 값을 벌어 와서 논 두마지기를 샀다"는 옛이야기가 생각날 정도로 들이 넓은 평택기행이었다.

태그:#송파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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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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