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포스터.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일제강점기를 다룬 여러 상업, 다양성 영화들이 있었다. 특정 인물을 시대 정신으로 투영하거나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을 파헤친 작품들이었다. 필연적으로 영화 속에서 이들의 업적은 비장했고 웅장할 수밖에 없었다. 오는 27일 개봉을 앞둔 <항거: 유관순 이야기>(아래 <항거>) 역시 이 맥락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제목에서 직접 드러내듯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유관순 열사에 대한 영화다. 독립을 위해 만세를 외치다 옥사했다는 짧은 지식 정도로 대부분이 아는 그 위인이다. 1919년 3.1 운동 이후 1세기가 지난 뒤 다시 조망한 것. 영화는 유관순 열사가 3.1 운동 이후 서대문 옥사에 갇힌 뒤 1년을 집중해서 묘사했다. 

배우들이 "죄송하다" 외친 이유

영화는 서대문형무소, 그 중 여옥사 8호실에 주목했다. 유관순(고아성)을 비롯해 시대적 비극에 저항하다 함께 갇힌 여성 30여명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처지와 상황, 환경은 다 달랐지만, 마음 한구석엔 나라를 잃은 슬픔과 이유 없이 억압당하는 억울함으로 찼을 이들의 모습을 영화는 느린 호흡으로 쌓아간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영화임에도 <항거>는 우직하고 미련해 보일 정도로 느린 호흡을 유지한다. 옥사에서 서로를 잘 알지 못해도 마음은 통하는 이들이 어떤 갈등과 역경을 견뎠는지를 상상력을 더해 풀어낸 식이다. 3평 남짓 공간에 들어찬 그 여성들 면면을 주목하려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비장하고 비극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이걸 상쇄시키는 게 바로 이 여성들의 연대다. 배우 고아성을 비롯해 기생 김향화 역의 김새벽, 이화학당 학생 권애라 역의 김예은, 다방 종업원 옥이 역의 정하담 등은 그 시대를 살아낸 다양한 신분의 여성을 상징한다. 대부분 각자 위치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다 끌려온 이들이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지난 15일 언론시사회 당시 고아성은 눈물을 보였고, 참여 배우들 역시 무거운 표정이었다. 이들이 공통으로 한 말이 "죄송하다"였다. 특히 고아성은 "겁이 났었다"는 말을 했다. 그 인물과 그 사건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기에 든 어떤 감정이었다. 연기 이전에 이 배우들은 그 실존 인물에 서야 했고, 그들 앞에 작아지는 자신을 경험했을 것이다. 

위인이기 충분한 이들이지만 적어도 100년 전 그들은 평범한, 아니 어쩌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일쑤였을 터. 배우들이 먹먹함과 어떤 무게감을 이겨내고 오롯이 그때 평범하면서도 다양한 군상을 연기했다는 자체에 박수를 보낼만하다. 

표현 형식과 이야기 전개 방식만 놓고 보면 <항거>는 새롭진 않다. 흑백 화면에 캐릭터들의 현재 모습을, 과거 모습에선 천연색 화면을 택했다는 점이 특징인데 그만큼 당시 역사와 인물들의 비극을 어떤 왜곡 없이 그대로 전달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가려진 투쟁의 역사

<항거>는 두 가지 지점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역사의 맥락에서 지금까진 약자이자 피해자로 묘사된 여성을 운동의 주체로 등장시켰다는 점. 그리고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에 대한 일말의 정죄라는 점에서다. 지금까지 여럿 나왔고 앞으로도 더욱 나와야 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역사도 사실이고, 독립운동의 한 축에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항거>는 그간 역사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여성의 업적, 연대를 나름대로 진정성 있게 담아내려 했다. 이 자체로 우선 평가받아 마땅할 일이다.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를 상징하는 인물이 영화에선 니시다(류경수)다. 정춘영이라는 본명의 이 실존 인물은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일본 경찰이 됐고, 만세 운동에 가담한 여성들을 학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연출을 맡은 조민호 감독이 "사료에 단 두 줄 나오는 정춘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친일파 표본을 제시하려 한 건 아니고, 유관순을 위해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고 말한 바 있다.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에 대한 직접적 메시지는 아니라지만 니시다 같은 부역자 캐릭터를 비중 있게 설정함으로써 관객입장에선 충분히 지난 우리 현대 정치사를 대입해 볼 여지가 있다.

한 줄 평 : 기교 없이 전달한 진실과 진심의 힘 
평점 : ★★★☆(3.5/5)

 
영화 <항거> 관련 정보
감독 및 각본 : 조민호
출연 :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류경수
제작 : 디씨지플러스, 조르바필름
제공 및 배급 : 롯데엔터네인먼트
러닝타임 : 105분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9년 2월 27일




 
항거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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