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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태우기(2014)
 달집태우기(2014)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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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처럼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정월 대보름이 코앞이다. 우리 조상들은 일 년 중 가장 밝은 보름달이 뜨는 이날을 설날만큼이나 중요시했다. 사람들은 풍물놀이와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풍년·풍어를 기원했고, 다양한 민속놀이로 화합을 도모했다. 지난해 근심·걱정을 모두 털어내고 희망찬 새 출발을 다짐했던 것.

예전에는 설날부터 풍물패가 조직돼 마을 곳곳을 돌며 악귀를 쫓아냈다. 당산나무 아래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우물가에서는 칠년대한 가뭄에도 물이 솟구치게 해달라고 빌었다. 마을행사가 끝나면 집집을 돌며 스며든 잡귀를 쫓아내고 가족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그 옛날 풍물굿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신명을 돋워주는 동네잔치였다.

대보름은 밥(오곡밥)도 아홉 번, 나물도 아홉 가지에 찬 음식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특히 제삿밥을 여럿이 나눠 먹는 옛 풍속에서 비롯된 '백가반(百家飯)'을 즐겼다. 그래서 이집 저집으로 밥을 얻으러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대보름날 여러 집에서 얻어온 오곡밥을 먹으면 그해 건강하고,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으며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오곡밥은 장수를 상징했다. 따라서 오곡밥을 얻으러 다니기는 어른보다 열 살 안팎의 아이가 더 많았다. 보름날 아침이면 어른도 아이도 누덕누덕 기운 옷차림으로 얼굴에 숯검정을 바르고 쭈그러진 양재기나 깨진 바가지, 소쿠리 등을 들고서 밥을 얻으러 다녔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하고 각설이타령을 부르기도 했다.

째보선창 인심축제... 점심은 공짜
 
우물가 맴도는 군산 나포풍물패
 우물가 맴도는 군산 나포풍물패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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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은 기해년 정월 대보름이다. 이날 오전 11시 전북 군산시 해망로(째보선창 공용주차장)에서 '째보선창 인심 축제'(아래 인심축제)가 열린다. 인심축제는 풍물패 길놀이를 시작으로 우리동네 이야기 콘테스트, 장기자랑, 농심줄 돌리기, 강강술래, 타악기 드럼 연주 등 다채롭게 펼쳐진다.

인심축제를 기획한 김연만씨는 "행사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과 손님,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다. 옛날에는 정월 한 달 내내 명절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요즘엔 전통명절 개념이 도식적으로 변하고 풍습도 사라져가고 있어 아쉽다"며 "가족동반으로 오셔서 찰밥이랑 홍어회랑 맛있게 드시고 세시풍속도 경험하면서 가족의 '수복강녕'을 기원해보시라"고 권했다.

행사를 주최한 째보선창번영회 권남균 회장은 "째보선창 번영회는 선창가 주민과 상인 30여 명으로 구성된 문화공동체"라며 "낙후된 동네 환경을 개선하고 주민 화합을 위해 작년에는 마을 신문을 발간했고, 솔선수범해 거리 청소도 하고, 매주 회의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 등 주민주도 도시재생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권 회장은 "인심축제는 기획부터 음식 만들기까지 주민 주도로 준비됐다"며 "축제는 주민들이 정성들여 만든 풍부한 먹을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 등 다양하게 진행된다. 정월 대보름은 밥을 얻어먹는 날이기도 하니 인심 넘치는 째보선창에 많이 오셔서 점심도 맛있게 드시고, 민속놀이에도 직접 참여해보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째보선창 발자취 담긴 사진전
 
군산 동부어시장(1960년대)
 군산 동부어시장(1960년대)
ⓒ 군산 수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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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선(안강망)
 1960년대 중선(안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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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한편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째보선창 모습이 담긴 사진 50여 점이 전시된다. 근대식 어항이 조성되기 전 째보선창(죽성포구) 모습을 비롯해 1920년대 후반 군산 부청에서 조선총독부로 보낸 째보선창 고정 잔교 평면도, 1933년 10월에 점등한 민야암 등대, 초창기 어업조합 건물, 군산 부영 수산시장 등이 소개될 예정이다.

광복 후 사진으로는 1950년대 선창가에 즐비했던 팥죽장수, 떡장수, 모주장수 등을 비롯해 금강 하구의 다양한 돛단배, 어시장 위판 모습, 1960년대 동부어시장 건물, 하늘에서 내려다본 째보선창과 주정공장, 부두에 정박한 중선배(목선 안강망), 준설선의 준설 작업,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입항하는 어선 등의 흑백 및 컬러사진을 선보인다.

1969년 국내 최초로 동중국해 어장을 개척, 정부의 어업정책을 바꿔놓은 만수호(안강망 20톤) 진수식 사진을 비롯해 출어를 앞둔 어선들이 얼음을 적재하던 쇄빙탑, 갯벌에 파묻힌 폐선들, 선창가에 산더미처럼 쌓인 생선상자, 부둣가에 즐비했던 젓탱크, 1960~1970년대 군산-고군산군도를 오갔던 옥구호(60톤) 사진들도 아련한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한다.
 
째보선창 어원

군산 째보선창은 조선 시대 옥구군에 속했던 죽성포구의 별칭이다. 나지막한 석산(石山) 주위로 흐르는 금강 지류(일명 세느강)와 대밭이 성(城)처럼 마을을 감싼 모습이어서 '죽성리' 혹은 '대재'라 불렸다고 전한다. 이 지역은 봄 안개 자욱한 대나무숲 풍광이 그지없이 아름다워 '군산 팔경(죽성춘로)'에 들기도 하였다.
 
지명유래도 사뭇 해학적이다. Y자로 살짝 째진 강안에 석축을 쌓아 조성한 포구가 째보(언청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 또 하나는 이곳에 힘센 째보가 살았는데 이곳에서 날품팔이나 노점을 차리려면 그에게 자릿세를 상납해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째보 객주가 사는 선창이라 하여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기록에 따르면 1923년 동부어시장(군산부영 동빈시장)이 들어서고 이어 죽성포구 부근 갯벌 3000평이 매축된다. 1928년에는 죽성포구~항만(내항), 항만~도선장 사이 강변 매립공사가 완공된다. 따라서 째보선창이란 지명은 동부어시장이 건립되고 포구에 근대식 어항 시설이 갖춰지는 1920년대 중반부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태그:#정월대보름, #군산 째보선창, #인심축제, #권남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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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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