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험악한 꿈> 메인포스터 영화 <험악한 꿈> 메인포스터

▲ 영화 <험악한 꿈> 메인포스터 영화 <험악한 꿈> 메인포스터 ⓒ 판씨네마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성장과 로맨스가 겹쳐지는 지점에 'Two lovers on the run'이라고 알려진 하위 장르가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외부적 위력이나 그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여정을 함께하는 과정을 그려나가는 작품들이다. 이 범주에 속한 작품들은 대체로 과거의 이야기나 영화의 뒤편에 숨겨진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스토리의 밀도를 높이기보다, 현재 상황을 전개하는 방식이나 장르적 환기(Atmosphere)를 형성하는데 더욱 몰두하는 특징을 갖는다. 지난 2017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데인 드한 주연의 작품 <투 러버스 앤 베어>(2017)가 대표적인 'Two lovers on the run'의 장르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이퀄스>(2016) 또한 이 부분을 차용해 변주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 <험악한 꿈> 역시 이 하위 장르의 특성을 전형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보이드 갱>(2014)을 통해 토론토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드니 빌뇌브, 자비에 돌란과 더불어 캐나다 영화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단 몰랜도 감독의 신작 <험악한 꿈>. 이 작품은 주인공인 조나스(조쉬 위긴스 역)가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케이시(소피 넬리스 역)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가 경찰관인 아버지 웨인(빌 팩스톤 역)로부터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함께 도망을 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려진다.

02.

영화는 'Two lovers on the run' 범주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특히, 인물들이 가진 과거의 아픔이나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축약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부분과 정확히 일치한다. 때문에 작품 속 조나스와 케이시의 관계 형성에 대한 부분이나 케이시, 웨인 부녀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과 같은 세부적 내러티브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 관계의 형성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이미지 신을 통해 설명되거나 인물의 대사를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작품의 특징적인 부분은 두 인물이 도망을 치는 과정 이후의 사건 전개를 스릴러 형식을 차용한 방식으로 진행해간다는 점이다. 나단 몰랜도 감독은 중반부 이후의 장르적 변용을 위해 조나스와 케이시가 웨인으로부터 도망치기 전의 스토리 속에 그 근거들을 심어 놓는다. 이야기의 전개적 시점에서 설명하자면 전반부의 내용이 두 사람의 도망을 위한 밑그림이 되는 셈이지만, 장르적 시각에서 보자면 웨인이 두 사람을 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려지도록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 판씨네마


03.

이 작품에서 케이시의 아버지 웨인이 지역의 경찰이라는 사실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조나스와 케이시는 물론, 조나스의 아버지인 엘버트(조 콥든 역)에게까지 현실적인 장벽을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가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무관하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경찰 자체가 정의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말이다. 웨인이 정의와는 거리가 먼 경찰이라는 설정은 다른 세 가지 설정에 영향을 끼친다. 행동으로 옮기기 이전의 조나스가 외부에 요청하는 도움을 무력화하는 요인으로서의 작용과 그의 악행을 저지할 외부적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요인으로서의 작용, 마지막으로 조나스와 웨인의 관계에서 형성된 일방적인 지위 전복을 위해 100만 달러를 활용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근거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설정에 대한 작용은 또다시 첫 번째와 두 번째 작용이 세 번째를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활용되면서 집약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케이시가 아버지 웨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저지하던 도중 자신 또한 동일한 상황을 겪고 난 이후에 조나스는 주변 어른들에게 이를 고발하고자 한다. 자신의 아버지는 물론, 경찰 서장에게까지 말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그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지만, 이는 앞서 밝혔듯이 웨인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묵살당한다. 아버지인 앨버트는 경찰이 권력이 두려운 한낱 농부일 뿐이며, 서장은 한통속이다. 그가 마약 거래와 살인을 통해 획득한 100만 달러 역시 마찬가지다. – 조나스가 웨인의 범죄를 직접 확인해가는 과정이 그려지는 이 지점의 제한된 공간과 시각적 제약의 연출은 긴장감을 고양시키며 몰입을 강화한다. – 웨인의 행위는 그가 어떤 사회적 직위를 갖고 있더라도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지만, 자신의 악행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의 수장과 결탁하며 그 가능성을 차단한다.

따라서, 조나스가 그의 100만 달러를 들고 도망을 감행하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도피하는 과정에 필요한 자금에 대한 문제도 있겠지만, 현재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전복시키고 애초에 형성될 수 없었던 동등한 관계를 구조화하기 위한 협상적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100만 달러를 위해 웨인은 처음으로 조나스에게 협상이 가능한 조건을 제시하게 된다.

04.

소년이 사랑하는 소녀를 위기로부터 구해 현실에서 달아난다는 설정으로부터 이 작품은 어떤 일말의 희망을 갖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절망적일 정도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무력한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특히, 도피 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들을 뒤쫓는 케이시의 아버지 웨인과 경찰 서장에게 꼬리를 밟히고 만다는 점이다. 뒤를 쫓는 두 사람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지점은 조나스와 케이시가 이제 막 집을 떠나 세상에 내던져진 미성년자라는 점에 더 무게가 실리게 한다. 그들 나름대로는 자신들을 쫓아오는 두 사람을 따돌렸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포인트를 따라 추적해 오는 어른들. 아이들의 빈약한 속임수에 속을 만큼 어른들의 연륜으로 채워진 세상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상황이 악화되어 갈수록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작은 균열이 발생한다는 것 또한 이 장르가 묘사하고자 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며, 이 영화 <험악한 꿈>도 예외는 아니다. 상황이 나쁘지 않을 때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유일한 세상이 되어 그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어주지만, 상황이 나빠지면서 그 마음이 잘못된 생각과 행동의 변명과 이유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상대를 지키기 위한 마음 때문에 나의 소중한 무엇을 포기한다는 일의 양면성이다. – 조나스는 가족을 케이시는 평생을 함께해 온 애완견 블레이즈를 버린다. – 타인을 위해 기꺼이 감내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 무게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운 것이며 신성하고 희생적인 것임이 균열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 판씨네마


05.

이 작품에 드러나는 또 다른 폭력적인 면,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조나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 한다. 그는 케이시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과는 다른 모습의 폭력을 감내하는 인물이다. 그 나이에 마땅히 누려야 할 학창 시절을 포기한 채 그 시절 전부를 가족의 생계를 위한 농장에 억류당하고 있는 그의 삶에 폭력이 수반되고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알코올 중독에 찌든 어머니와 자신의 아집에 빠져 제대로 된 벌이도 되지 못하는 농장 일에만 매달리는 아버지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부양해야 하는 그의 삶을 보면서 말이다.

어쩌면 동병상련의 경계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어쩌지 못하고 감내하는 케이시의 모습에서 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가둬진 분노를 함께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는 타인을 구원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구원과도 같다. 영화의 처음에서 헛간에 들어온 뱀 한 마리조차 놓아주려 일부러 뒷산으로 향하던 조나스를 기억할 것이다. 이 장면에서 조나스의 아버지는 그에게 다음부터는 그냥 죽이라고 말한다. 조나스의 아버지와 케이시의 아버지가, 뱀과 케이시가 오버랩된다. 대상이 무엇인지를 떠나 조나스에게 있어 구원이란 그런 것이다.

06.

이 작품에서는 두 사람이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케이시의 구원 또한 조나스의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다시 말해, 위기로부터 소녀를 구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소년의 구원자적 역할이 강한 색채를 보인다고 해서 단순히 소년은 자발적인 존재로, 소녀는 그에 따르는 피동적 존재로 구분 지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삶을 뒤쫓아오는 끈질긴 폭력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을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케이시가 행함으로써 그녀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역시 스스로에 대한 구원과 자신을 지켜낸 조나스에 대한 구원을 함께 이루어낸다.

물론, 두 사람의 구원에 차이는 존재한다. 조나스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그 동기가 확실하게 형성되었다는 것이며, 케이시는 그가 보여주는 구원 속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 영화가 성장의 지점을 그려내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영화 <험악한 꿈> 스틸컷 ⓒ 판씨네마


07.

비록, 과정 속 그들의 행동이 정의로웠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으나 스스로의 정의를 지켜낼 수 없는 그릇된 세상 앞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세상을 지켜나가는 모습에는 분명 뜨거운 무엇인가가 담기어 있다. 세상에 때가 타버렸다는 비겁한 어른들의 변명과는 달리 이전의 자신에게 소중했던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아직 10대인 소년과 소녀가 어른들이 주도하는 세상에 발을 딛는 모습을 보며 사랑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더 나아가 이러한 고난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고 밝힌 나단 몰랜도 감독의 연출 의도가 영화의 끝자락에서 더욱 진하게 떠오른다.
 
영화 무비 험악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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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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