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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의거 후 뤼순감옥으로 이동 전 찍힌 안중근 의사 모습, 행색은 초라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의연하다.
 하얼빈 의거 후 뤼순감옥으로 이동 전 찍힌 안중근 의사 모습, 행색은 초라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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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기념관, '단지'한 안의사의 사진이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단지"한 안의사의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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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기념관, 왼손 네번째 손가락 끝을 단지한 안의사의 사진이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왼손 네번째 손가락 끝을 단지한 안의사의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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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우라(Корея ура)!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11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 승차장에서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초대 총리대신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며 현장에서 외친 말이다. 우리말로 "대한민국 만세"라는 뜻이다.

의거를 마친 안 의사는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들에게 체포됐다. 이후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의 일본 감옥으로 옮겨졌다. 다음해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안 의사는 6번의 재판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안 의사는 "하얼빈의거는 한국독립전쟁의 한 부분이며,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행한 것이므로 만국공법에 의해 나를 (전쟁 포로로) 처리해줄 것"을 재판부에 당부했다. 그러나 일본 재판부의 결정은 이미 일제 외무성의 명령대로 '사형'이 정해진 상황, 안 의사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됐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고 3월 26일 순국한다.

일본에서 처음 퍼진 발레타인데이, 사형선고일과 겹쳐...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안 의사의 사형선고일이 198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 급격히 퍼진 '발렌타인데이'와 겹치게 된 것. 발렌타인데이는 1960년대 일본 제과회사 모리나가가 사제 발렌티노를 추모한다며 만든 일종의 이벤트 기념일이다. 사제 발렌타인은 로마시대 황제의 허락 없이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결혼시켜준 죄로 순교했다.

일본 모리나가 제과가 이에 착안해 1960년 당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발렌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보내요"라는 광고를 신문에 게재했고, 발렌타인데이는 연인들의 기념일이 돼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때문에 최근에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발렌타인데이 대신 안 의사 사형선고일을 챙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실제로 안중근의사교육문화재단은 '2월 14일을 도마 안중근의 날로 제정하자'며 이날 부산 남구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발렌타인데이, 안중근의사기념관 직접 가보니...
 
안중근의사기념관, 중앙에 안의사의 석상이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중앙에 안의사의 석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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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기념관, 안의사의 석상이 있다. 2층 전시실에서 바라본 모습.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의사의 석상이 있다. 2층 전시실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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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오마이뉴스>가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았다. SNS를 중심으로 '발렌타인데이만큼 안 의사의 사형선고일도 챙겨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이날 안 의사 기념관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서울 남산 백범광장 우측에 넓게 자리한 안중근의사기념관, 한마디로 평소와 다름없었다.

기념관 관리인도 <오마이뉴스>를 만나 "1년에 큰 행사는 안의사 의거일인 10월 26일과 순국일인 3월 26일"이라면서 "사형선고일인 2월 14일은 기념관에서 따로 챙기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평소처럼 차분하게 방문객을 맞이했다.

수원에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은 송희섭씨도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니까 굳이 방문한 것은 아니"라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니까 와야지라는 생각을 올초부터 해왔고, 오늘 시간 나서 왔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안의사기념관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들은 '2월 14일이 안의사 사형선고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남산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길에 들리거나, 3.1운동 100주년이라 걸음을 옮겼다는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관람객 중에는 '발렌타인데이니까' 일부러 찾았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서울 천호동에서 검도장을 운영하는 이려성씨는 제자들과 함께 기념관을 찾아 "발렌타인데인데 안 의사를 더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이 일었다"면서 "아이들에게 지금의 우리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안중근 의사가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알려주고 싶어 함께 왔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안 의사와 관련된 전시물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제자들에게 설명했다.

안중근기념관,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의사의 재판과정이 재연돼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의사의 재판과정이 재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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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기념관, 안의사가 의거시 사용했던 총이 복제품으로 전시돼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의사가 의거시 사용했던 총이 복제품으로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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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기념관은 상당히 잘 만들어진 공간이다. 1970년 처음 기념관이 만들어진 뒤 2010년 안중근 의사 동상이 세워진 지금의 서울 중구 남산 중턱에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들어서자마자 확인 가능한 안중근 의사의 석상을 보면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안중근기념관은 2010년 건축과 동시에 서울특별시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념관 전시물도 외관만큼 탁월하다. 3개의 상설전시실에는 안중근 의사의 일생이, 안 의사의 의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것인지를 여러 자료와 사진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과 뤼순 법정에서의 재판과정이 밀랍인형을 통해 완전하게 재연돼 있다. 안 의사가 어떻게 의거에 성공했고, 죽음을 맞이했는지 온전히 보여준다. 뤼순감옥을 재연한 공간에서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안 의사의 옥중 유서와 육필원고, 휘호, 안 의사 실물이 담긴 사진도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전시 말미 안의사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기념관은 이 사진을 편지와 함께 관람객에게 보내준다. 좌측이 기자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전시 말미 안의사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기념관은 이 사진을 편지와 함께 관람객에게 보내준다. 좌측이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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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참여형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전시 말미, 안 의사와 함께 사진을 찍는 코너가 있다. 사진을 찍으면 안의사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단지(손가락을 자르다)' 서명이 담긴 안의사의 온라인 편지를 받아볼 수 있는데 그 안에는 "이곳까지 찾아오다니 그대의 발걸음이 참으로 대견스럽다"는 글도 있다.

순국 당시 안 의사는 두 동생에게 유언으로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 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라면서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 의사 유해는 하얼빈의거 110년이 됐지만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다. 중국 뤼순 감옥 근처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태그:#안중근, #발렌타인데이, #코레아우라, #안중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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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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