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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충쇼를 보았다.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없었다. 불가피, 혹은 필연.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데려온 꼬맹이 손님들까지 모두 돌아간 뒤였다. 셋째가 똥꼬가 간지럽다고 했다. 별스럽지 않게 씻어주었는데 다 씻고 난 뒤에도 아이가 계속 간지럽다는 것이다.

요충 생긴 셋째... 엄마는 심심할 새가 없다

심지어 너무 간지럽다며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지금은... 21세기잖아?' 아닌 게 아니었다. 아이의 엉덩이를 살펴보다가 그 작은 똥꼬에서 새하얀 요충이 하나 꼬물거리는 게 보였다. 가만히 보니 하나 더 있었다.

'아...!' 정말 울고 싶기도 했고, 웃기기도 했다. 이게 무슨 때아닌 요충쇼란 말이냐. 요충이란 건 그 옛날 생물책에서나 보았던 희귀 생물이 아니었단 말인가. 재빨리 검색해 보니 최근에도 요충이 심심찮게 생긴다고 한다.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와 안심을 느꼈다. 그나마 요충은 약 한 번으로 박멸할 수 있을 뿐더러 1년 가량 예방된다니 다행이다.

셋째의 요충 소식에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호기심이 충만해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 뒤에 요충의 생김과 촉각까지 느껴보고 싶은 아이, 징그럽다며 소리지르다 못해 셋째와 같은 변기 안 쓰겠다고 화내는 아이, 그 두 아이 사이를 오가며 재미있어하는 아이까지... 그 와중에도 셋째는 자기가 민폐를 끼쳤다면서 속상해 했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나 겪을 수 있어. 사실은 언니들 가운데 변비가 심해서 말이지 어쩌구 저쩌구..."

셋째는 울다가 웃으며 마음을 진정시켰고 이내 잠들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나머지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요충은 여러 가지 경로로 생길 수 있는데 손을 잘 씻으면 예방된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하나가 수습되니 엄마 심심할세라 또 한 건이다.

머릿니 대소동까지... 아이가 많으니 일도 많다

지난달에는 셋째가 학교에서 이를 옮아와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아이들 학교 사정으로 1월 초까지 수업이 있었는데 셋째 반에서 이가 돌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자를 받은 지 일주일 만이었다. 당장 셋째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부터 싹둑 잘랐다. 그러고도 이 샴푸로 5명의 여인들이 머리를 감고 줄줄이 앉아 참빗질을 한 지 어언 열흘 만에야 이의 기세가 꺾였다.

이 사건의 여파로 큰애와 둘째도 눈물을 머금고 머리카락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 기부를 위해 1년 넘도록 머리카락을 길렀던 큰애는 자른 머리카락을 붙들고 대성통곡까지 했다.

어디 이뿐이랴.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많다.

때론 웃기고 슬프며, 화가 나고 힘이 빠지기도 한다. 어떤 때는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고, 분노에 휩싸여 소리를 지르거나 자책하기도 한다.

어제는 할 일을 찾아보려 여기저기 구인 사이트를 뒤지다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40km씩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 모두 만만치 않다. 특히나 네 딸들에게 생길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헤아리면 장거리 출퇴근은 쉬운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10분이면 출근이 가능한 곳에 이력서를 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다른 데 내 보지 뭐. 이런 심정으로.

그렇다고 아이들 때문에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르게 보기로 한다. 가지가 많으면 바람도 많고, 뿌리도 많이 뻗겠지. 가까운 데서 일하게 되면 내 시간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얹어서. 이렇게 자기최면이라도 걸어야 나도 살지 않겠냐! 막 이러면서. 으흐흥.

태그:#요충, #머릿니, #넷과함께, #딸들, #가지많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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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다고 혹은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나, 내 모습을 사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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