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의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는 우리은행 위비는 지난 8일 또 하나의 경사(?)를 맞았다. 2019 신인 드래프트에서 4.8%의 낮은 확률을 뚫고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따낸 것이다. 우리은행은 망설임 없이 '박지수(KB스타즈) 이후 최고의 거물신인'으로 불리는 183cm의 장신가드 박지현을 지명했다.

중학 시절부터 일찌감치 그 재능을 인정 받은 박지현은 숭의여고 1학년 때 출전한 2016 U-17 농구월드컵에서 16.5득점 7.7리바운드 2.8어시스트 3.3스틸 0.7블록슛을 기록했다. 전 세계의 쟁쟁한 유망주들이 모인 세계 대회에서 박지현은 득점 1위, 스틸 2위를 차지했다. 고교시절 연령별 청소년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한 박지현은 작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의 일원으로 참가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년의 박지수나 올해의 박지현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2013년에도 한 명의 특급 신인이 여자농구 팬들을 들뜨게 한 적이 있었다. 비록 20대 초반의 나이에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기대만큼 성장하진 못했지만 이번 시즌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다시 기량을 끌어 올리고 있는 선수다. 현재 평균득점 1위(70.2점)를 달리며 하나은행의 '닥공농구'를 이끌고 있는 '61점 소녀' 신지현이 그 주인공이다.

신인왕 수상 직후에 찾아온 불의의 십자인대 부상
 
 신지현은 WKBL의 미래로 성장하던 중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두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말았다.

신지현은 WKBL의 미래로 성장하던 중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두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말았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여자농구 '레전드' 전주원(우리은행 코치)의 초중고 직속 후배이기도 한 신지현은 선일여고 1학년 때까지는 그저 가능성을 가진 여러 유망주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신지현의 이름이 농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경기가 있었다. 1월에 열린 WKBL총재배 전국여자중고농구대회 대전여상과의 경기였다. 

신지현은 이 경기에서 홀로 61득점을 기록하는 믿기 힘든 활약을 펼치며 농구팬들애게 이름을 알렸다. 61점은 여자부는 물론 서장훈, 현주엽(창원LG 감독), 하승진(전주KCC) 등 차원이 다른 신체조건과 실력으로 고교 무대를 지배했던 남자 선수들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었다(하지만 신지현의 기록은 2014년, 지금은 KB에서 뛰는 숭의여고의 김진영이 66득점 2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년 만에 경신됐다).

'61점 소녀'로 불리며 여자농구 최고의 기대주로 떠오른 신지현은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하나은행의 지명을 받았다. 하나은행은 이미 1년 전 장신 슈터 강이슬과 포인트가드 자원 김이슬을 지명했지만 폭발적인 득점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신지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신지현은 프로 첫 시즌 경기당 평균 10분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귀여운 외모로 많은 팬들을 몰고 다녔다. 

그리고 신지현의 높은 기능성을 확인한 박종천 전 감독은 2014-2015 시즌 프로 2년 차에 불과한 신지현을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기용했다. 물론 에이스로 활약하던 고교 시절에 비하면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신지현은 5득점 1.94리바운드 2.6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2015년 올스타전에서는 중부선발 최다득표(전체 최다득표는 KB의 변연하)를 차지했고 2014-2015 시즌 신인왕까지 선정되며 성공적인 풀타임 첫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신지현은 주전으로서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던 2015년 9월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시즌을 한 달 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재활까지 최소 6개월, 경기 감각 회복까지는 1년 정도 걸리는 장기 부상을 당한 것이다. 2015-2016 시즌을 통째로 거른 신지현은 부상 회복 속도가 늦으면서 2016-2017 시즌 역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여자농구 전체가 주목하던 가드 유망주의 갑작스런 추락이었다.

부상 복귀 후 두 번째 시즌 만에 데뷔 후 최고 성적
 
 신지현에게 가장 반가운 일은 무릎 부상 전의 운동 능력을 거의 회복했다는 점이다.

신지현에게 가장 반가운 일은 무릎 부상 전의 운동 능력을 거의 회복했다는 점이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신지현은 2017-2018 시즌 코트로 복귀했지만 이미 하나은행은 전문 포인트가드 없이 경기를 치르는 것이 익숙한 팀이 됐다. 신지현은 17경기에 출전해 평균 13분 37초를 소화했지만 2.94득점 1.12리바운드 1.53어시스트로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3점슛 성공률이 46.2%로 향상된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였지만 지난 시즌 신지현의 3점슛 시도는 단 13번에 불과했다.

하나은행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지난 시즌 팀 내 최다 어시스트(3.82개)를 기록했던 살림꾼 염윤아(KB)가 이적하면서 포인트가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특히 하나은행은 신지현을 비롯해 김이슬, 김지영, 서수빈 등 기량이 비슷한 가드 유망주들이 많은 팀으로 유명하다. 같은 포지션에 경쟁자가 많다는 것은 팀에겐 반가운 일이지만 신지현 입장에선 그리 좋을 게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신지현은 이번 시즌 팀 내 가드 자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출전시간(22분29초)을 기록하며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번 시즌 하나은행이 치른 22경기에 모두 출전한 신지현은 7.73득점 2.14리바운드 3.05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개인 기록은 대부분 신인왕을 수상한 2014-2015 시즌을 능가하는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사실은 신지현이 두 시즌을 통째로 날리게 했던 무릎 부상의 부담을 떨쳐 버렸다는 점이다. 신지현은 이번 시즌 부상 전에 보여줬던 빠른 스피드와 과감한 돌파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아직 슈팅에는 다소 기복이 있지만 과감하게 던지는 외곽슛도 점점 호조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신지현의 평균득점은 외국인 선수 샤이엔 파커(18.14점)와 국가대표 슈터 강이슬(12.36점) 다음으로 팀 내에서 3번째로 높다.

신지현이 이번 시즌 팀 내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신지현이 하나은행의 붙박이 포인트 가드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입단할 때 받았던 주목도를 생각하면 신지현의 성장 속도는 농구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큰 부상을 이겨내고 코트에 복귀해 더욱 성숙한 기량을 보이고 있는 신지현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높은 만 23세의 젊은 돼지띠 유망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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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2018-2019 WKBL KEB 하나은행 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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