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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토르(Kotor) 구시가지의 아담한 골목길. 많은 여행자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코토르의 골목길은 가까운 두브로브니크, 베네치아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의 해변도시들은 반짝반짝 빛나며 번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이곳 코토르는 덜 다듬어진, 원석 같은 중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 사람을 따라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에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광장들을 만나게 된다. 이 작은 광장들을 몬테네그로에서는 '뜨르그(Trg)'라고 한다. 단어가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약어같이 보여서 코토르를 안내해 준 이바나에게 물었더니 'Trg'가 광장이라는 의미의 한 단어라고 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에서도 모두 광장을 뜨르그라고 하는데, 이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면 시내 중심부에는 항상 이 광장들이 있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교회
 
고도 코토르에서 가장 큰 광장이며 코토르 종교의 중심이다
▲ 루카 광장 고도 코토르에서 가장 큰 광장이며 코토르 종교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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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루카 광장(Trg Luka)'이 나온다. 역사적인 고도, 코토르에서 가장 큰 광장이 이 루카 광장이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동쪽에 자리한 조그마한 교회가 '성 루카 교회(Church of St. Luke, Sveti Luka)'이고, 광장 북쪽의 큰 교회가 '성 니콜라스 교회(Church of St. Nicholas)'이다. 이 두 교회는 규모뿐만 아니라 외양도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 묘한 대비를 이룬다. 작은 광장 사이에 자리한 이 성당은 서로 마주 보며 코토르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더 작은 교회 건물인 성 루카 교회가 훨씬 더 오래 전에 지어졌기 때문에 광장은 루카 광장이라고 불린다. 성 루카 교회는 한눈에 봐도 오래 전에 지어진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흰 석재로 지어진 벽면이 종탑으로 올라갈수록 검게 그을린 듯 변색된 색상이 아주 강렬하다. 마치 시골 마을의 작은 교회 같은 이 루카 교회는 작은 집처럼 포근한 느낌을 준다.

성 루카 교회는 1195년에 코토르의 영주에 의해 가톨릭 성당으로 처음 건축됐다. 건물은 아담하지만 이 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당시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성 루카 교회는 이콘화와 프레스코화의 수호성인인 사도 루카(St. Luka)에게 바쳐졌다. 사도 루카는 화가로 활동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처음 그렸다고 해서 화가들의 수호성인이 됐는데, 복음서를 남긴 사도 누가(Loukas)를 말한다.
 
이콘화와 프레스코화의 수호성인인 사도 루카에게 바쳐진 교회이다
▲ 성 루카 교회 이콘화와 프레스코화의 수호성인인 사도 루카에게 바쳐진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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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카 교회는 코토르에 닥친 다섯 번의 지진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행운의 교회로도 유명하다. 특히 코토르에서는 유일하게 1667년과 1979년의 대지진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른 교회들은 무너졌는데 이 교회만 살아남았으니 모두들 이 교회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대지진을 피해 간 이 교회는 수백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더 소중하게 보인다.

성 루카 교회는 8백 년이 넘는 건축물 자체의 역사 외에도 큰 의미를 가진 곳이다. 17세기 중반까지 가톨릭 성당과 학교로 사용됐던 성 루카 교회는 정교회 신도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정교회 교회로 바뀌었던 것이다. 오랜 전쟁을 통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이 땅에서 물러난 이후 세르비아 정교회(Orthodox)를 믿는 인구가 코토르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정교회 신자들이 이 교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놀라운 종교적 포용성은 성 루카 교회 내부로 들어가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 한 교회 내부에 2개의 제단이 남아 있는 것이다. 12세기에 만들어진 가톨릭 제단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옆에 정교회 제단이 마련돼 있다. 가톨릭과 정교회가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두 종교간의 화합을 상징하는 이 교회는 복잡한 역사로 얽힌 몬테네그로와 코토르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회 벽면에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초기의 성화는 남쪽 벽 일부에 남아 있었다. 색 바랜 성화 속의 성인들은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외국의 여행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쪽 벽 외에 다른 벽에 남아있는 성화들은 대부분 17세기에 그려져서 화려한 느낌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이 정교회 계열의 성화들은 한국인들에게는 약간 낯선 이콘 성화여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교회 내부의 바닥을 살펴보다가 흠칫 놀랐다. 교회 바닥에 코토르 시민의 무덤들이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는 이 교회에 묻힌 시민들의 이름과 생몰년도가 기록돼 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성 루카 교회에서 시민들의 장례를 거행하고 교회 안에 매장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종교를 믿게 마련이고 죽을 때에도 종교 안에 묻히기를 희망할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 기능은 세계 어디를 가나 동일한 것 같다. 이러한 종교적 역사성 때문에 성 루카 교회는 코토르 시민들에게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코토르의 시민들 중에서는 동방 정교회를 믿는 사람들이 70%로서 가장 많다. 이슬람을 믿는 시민들도 21%나 되지만, 가톨릭을 믿는 시민은 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코토르에서의 가톨릭 인구는 줄어들어서 대부분의 가톨릭 교회는 이제 정교회 교회로 바뀌었다. 구시가 안의 교회 11곳 중에서 가톨릭교회로 남은 곳은 트리폰 성당(St. Tryphon Cathedral) 한 곳뿐이다.
 
정교회의 모든 행사는 이곳에서 개최될 정도로 중요한 교회이다
▲ 성 니콜라스 교회 정교회의 모든 행사는 이곳에서 개최될 정도로 중요한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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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토르의 여러 정교회 교회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심이 되는 교회는 루카 광장의 성 니콜라스 교회(Church of St. Nicholas)이다. 교회 건물이 워낙 커서 코토르 내 정교회의 모든 행사는 이곳에서 개최될 정도로 코토르 종교의 중심지이다. 구시가를 다니면서 붉은 지붕 사이로 보이던, 꼭대기에 2개의 푸른 돔을 가진 교회가 바로 성 니콜라스 교회였다. 예쁜 종탑 색깔만큼이나 외관이 깔끔한 교회건물이다.

성 니콜라스 교회는 19세기에 건축됐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09년에 네오 비잔틴 양식으로 다시 건립됐다. 코토르 내의 많은 옛 건축물들이 미술관이나 전시관, 상점으로 바뀌었지만 코토르 인들의 신앙의 중심이었던 성 니콜라스 교회는 건립 당시 사용되던 그대로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조각상 대신 성화
 
성상 숭배 금지로 인해 조각상은 없고 성화들이 가득하다
▲ 교회 성화 성상 숭배 금지로 인해 조각상은 없고 성화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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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그 동안 보아 왔던 서유럽 가톨릭 성당의 내부와는 많이 다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로마제국이 쇠락해 분리되던 시절, 동로마에서는 교회 재산을 몰수할 목적으로 성상 숭배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성당 내부에 그리스도의 조각상은 보이지 않는다.

정교회가 탄생할 당시의 성상 제작 금지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교회 내부에는 수많은 이콘화 등 벽화 만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성화 미술관에 들어온 듯 나는 수많은 그림 속에 둘러싸여 있었다. 성화 속의 성인들이 마치 나를 둘러싸고 바라보는 듯 했다.

교회 내부의 입구 쪽에는 4개의 대형 성화가 있고, 그 안에 4명의 성인들이 각각 앉아 있다. 마침 교회 입구에 있던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4대 복음서를 남긴 이들의 성화가 종교의 길로 인도한다
▲ 사도 마가와 요한 4대 복음서를 남긴 이들의 성화가 종교의 길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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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화의 주인공들은 누구인가요?"
"그림 속의 성인들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입니다. 날개 달린 사람이 배경인 성인이 마태이고, 배경에 황소가 있는 성인이 누가입니다. 등 뒤에 사자 그림이 있는 성인이 마가이고, 뒤에 독수리 문양이 있고 긴 수염을 가지고 있는 성인이 요한입니다."

"사도 마태 뒤에 사람이 있는 것은 마태복음이 천사가 주는 영감을 받아 예수의 희생에 초점을 맞추어 썼기 때문이지요. 누가 뒤에 황소가 있는 것은 누가 복음이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그 제물이 황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라고 광야에서 소리치는 마가복음의 장면이 마치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다고 하여 사자는 마가를 상징합니다. 가장 높이 나는 독수리는 하늘로부터 왔다는 신성을 나타내기 위해 가장 심도 있는 복음을 남긴 요한을 상징합니다."

 
성경의 복음서를 기록하거나 읽는 자세를 하고 있다
▲ 사도 마태와 누가 성경의 복음서를 기록하거나 읽는 자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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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도사들은 모두 글을 읽거나 적고 있는데요. 무엇을 열심 전하려고 한 것입니까?"
 
성 니콜라스 교회의 성화를 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몰린다
▲ 교회 내부 성 니콜라스 교회의 성화를 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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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 즉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 적은 성인들이지요. 이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채택해야 하는 태도에 대한 지시사항들을 적고 있지요."

나는 성 니콜라스 교회를 나와 고개를 들어 가파른 절벽을 따라 이어진 성벽을 바라보았다. 코토르 성에 이어진 검은 산, 로첸(Lovćen) 산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안에 코토르 성을 내려다보는 듯한 작은 교회가 서 있었다. 건강의 여신 교회(Church of Our Lady of Health).

14세기 유럽을 휩쓸고 간 페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1518년에 지은 교회이다.

저 높은 산에 교회를 지은 사람들의 마음. 교회를 받치고 있는 험준한 바위와 성벽이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듯 신비롭다. 여행시간이 촉박하지만 건강의 여신 교회를 목표로 올라가기로 했다.
 
험산 위에 세워진 교회의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다
▲ 건강의 여신 교회 험산 위에 세워진 교회의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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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교회에서 내려다 본 코토르 성. 이곳에 서니 이 세상의 멋진 전경은 마치 이곳에서 모두 보는 것 같다. 코토르 성의 육지를 감싸는 듯한 코토르 만의 바다가 발 아래 아스라히 내려다보였다.

주변에는 교회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종교 없는 내가 마치 코토르의 중세 종교 속에 온전히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코토르는 그래서인지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태그:#몬테네그로, #몬네네그로여행, #코토르, #코토르여행, #루카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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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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