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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노피렌에서 칼레타곤살로로 가는 배에서 만난 파타고니아 여행자들. 파타고니아는 물가가 비싸고 자연이 아름다워서, 많은 여행자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 왼쪽은 프랑스인 여행자 매튜 모울 씨, 오른쪽은 독일인 여행자 요하네스 바셀 씨
 호르노피렌에서 칼레타곤살로로 가는 배에서 만난 파타고니아 여행자들. 파타고니아는 물가가 비싸고 자연이 아름다워서, 많은 여행자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 왼쪽은 프랑스인 여행자 매튜 모울 씨, 오른쪽은 독일인 여행자 요하네스 바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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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 머나먼 곳까지 와서 기어이 마주하는 것은, 세계의 끝도 우리가 사는 곳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서글픈 확인인지도 모르겠다."

칠레 7번 국도, 카레테라 아우스트랄

파타고니아. 남미의 남쪽 끝. 나아가 '세계의 끝'이라고도 불리는 땅. 남미에 오기 전에 내가 파타고니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뿐이었다. 마추픽추와 우유니는 사진으로 자주 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파타고니아는 베일에 싸인 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칠레 입국을 앞둔 볼리비아에서야 그곳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100만 제곱킬로미터, 한반도 다섯 배 크기의 땅. 파타고니아라는 이름은 1520년 이 지역을 탐험한 마젤란 원정대가 거인족이라고 묘사한 원주민을 가리키는 '파타곤' 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원주민은 장신족 떼우엘체 족으로 추정된다.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들의 폭압으로 인해 현재 파타고니아 원주민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생전 처음 아메리카 땅에 와서 189일째, 거인과 요정들이 살 것만 같은 얼음나라 파타고니아에 들어섰다.

파타고니아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카레테라 아우스트랄 Carretera Austral, 남부 고속도로'라고 불리는 칠레 7번 국도에 대해 알게 됐다. '자전거 여행자와 히치하이커들이 많다'고 이 길을 소개한 블로그 하나를 읽고 무작정 그 길에 끌렸다. 푸에르토몬트에서 국경 마을 빌라오히긴스까지 1240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도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명색이 '고속도로' 지만 공사 중이거나 자갈이 깔린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보다 훨씬 많아서, 길을 걸으면서, 또 스무 번이 넘는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먼지를 많이 마셔야 했다.

 
파타고니아 북부에서 열하루 동안 야영을 하며, 스무 번의 히치하이킹, 네 번의 항해, 기나긴 도보여행 끝에 마침내 도착한 칠레, 아르헨티나 국경. 차도 배도 없는 국경이라 누구든 걸어서 산을 넘어야 한다. 힘겨움을 잠시 잊게 해준 풍경. '미봉'으로 불리는 피츠로이산. 찰스 다윈이 박물학자로 승선했던 영국 해군 함정 비글호의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세계의 끝에서도, 아픈 식민주의 역사의 흔적을 자주 마주해야 했다.
 파타고니아 북부에서 열하루 동안 야영을 하며, 스무 번의 히치하이킹, 네 번의 항해, 기나긴 도보여행 끝에 마침내 도착한 칠레, 아르헨티나 국경. 차도 배도 없는 국경이라 누구든 걸어서 산을 넘어야 한다. 힘겨움을 잠시 잊게 해준 풍경. "미봉"으로 불리는 피츠로이산. 찰스 다윈이 박물학자로 승선했던 영국 해군 함정 비글호의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세계의 끝에서도, 아픈 식민주의 역사의 흔적을 자주 마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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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아름다운 길을 많이 걷고, 걷다가 지치면 지나가는 차에게 손을 들어 도움을 구하고, 차가 잘 안 잡히고 힘들면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11월 25일, 도시에서는 히치하이킹이 어렵기 때문에 일단 시골로 이동하기 위해 터미널로 갔다. 정보도 준비도 부족해서인지 막연한 계획은 시작부터 꼬였다. 북쪽 오소르노에서 푸에르토몬트까지 100킬로미터 거리의 버스는 2000페소(한화 3300원)였다. 그게 보통의 버스 가격이다. 그런데 푸에르토몬트에서 남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차이텐으로 가는 버스 가격은 14000페소,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파타고니아 물가가 비싸다지만 버스 가격이 일곱 배라니, 너무 심했다. 당장 저가 비행기를 예약해 남부 파타고니아의 관광지로 이동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늦었다. 터미널에는 와이파이도 없고, 급하게 찾는 비행기는 엄청 비쌀 것이다. 현지인들에게 물어 물어 시내버스로 갈 수 있는 푸에르토몬트의 남쪽 끝 라아레나 La Arena로 이동했다. 세상에나, 그곳에는, 더이상 도로가 없었다.

지도로 볼 땐 남쪽 끝까지 길이 이어진 것처럼 보였고, '7번 국도'니까 육지가 없으면 다리라도 놓여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이곳은 빙하가 녹으며 형성된 매우 들쭉날쭉한 피오르 지형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많아서 자주 길이 끊기고 배를 타야 했다. 버스도 보트에 실려서 호수나 바다를 건너야 하니, 비싼 요금도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짧은 구간의 배는 무료로 운영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구간은 배삯이 비쌌다. 물 위에서는 히치하이킹도 할 수가 없다.

파타고니아 히치하이커

무거운 배낭, 비포장도로의 먼지, 자주 없는 버스, 쉽지 않은 히치하이킹,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더 비싸지는 물가. 북부 파타고니아 배낭여행에서의 어려움들이다. 또 한 가지 힘든 점은 강풍과 추위였다. 인적과 마을이 드물고 숙소는 비싸기 때문에 파타고니아의 많은 배낭여행자들은 캠핑장이나 길가의 대자연 속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 다행히 목숨을 위협하는 강도나 짐승은 없다.

11월 말, 12월은 파타고니아의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라지만 밤이 오면 아직 추웠다. 내 침낭은 겨울용이 아니라서 모든 옷을 다 껴입고 비닐까지 감고 자도 추운 날이 많았다. 그 모든 불편함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푸른 호수와 바다, 눈 덮힌 산과 숲의 땅, 북부 파타고니아는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칠레 관광청은 이곳을 '파타고니아 베르데, 초록 파타고니아'라고 부른다.

파타고니아 남부의 세계적인 관광지들에 비해 대중화된 지역은 아니어도 1월, 2월 여름철엔 여행자들이 많다는데 아직은 버스도 차도 사람도 적어서 나의 아메리카 여행 중 가장 조용한 곳으로 느껴졌드. '오지란 이런 곳이구나' 생각했다. 긴 구간 마을도 없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거대한 설산 골짜기를 걷다가 비바람을 만날 때면, 한낮인데도 섬뜩한 무서움이 느껴졌다. 그런 험한 길에서도 기꺼이 차를 태워준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이 없었다면, 나는 파타고니아 어느 산맥에서 얼어 죽거나 늑대와 콘도르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는 여행을 해나갈 수 있었다. 두고 두고 감사할 일이다.

지구 반대편, 파타고니아 사람들

처음 듣는 지명들, 낯설어서 곧 잊어버릴 마을들, 호르노피렌, 칼레타곤살로, 푸유과피, 코이아이케, 트랑킬로, 코치알렌을 지나, 7번 국도의 끝 빌라오이긴스까지 9일이 걸렸다.

호르노피렌에서는 배를 기다리며 캠프장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몇 개의 텐트를 칠 수 있는 공터와 식당을 운영하는 작은 숙소였다. 이 깊은 오지에도 와이파이가 있어서 지인들에게 생존을 알리고, 모처럼 샤워를 한 뒤 잠이 들었다. 배가 하루 한 대밖에 없다는 걸 아침에서야 알았다. 파타고니아에서는 교통편을 미리미리 확인해야한다는 걸 배웠다.

출항 시간을 놓칠세라 서둘러 텐트를 걷고 숙소를 나서는데 주인 부부가 다른 투숙객들 몰래 나를 불렀다. '우주대스타' 방탄소년단 팬은 아닌 것 같은데, 흔치 않은 아시아인이 신기했는지, 덩치 작고 꾀죄죄한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부부는 뜨거운 커피와 아보카도를 듬뿍 바른 빵을 내 손에 들려주었다. 말이 안 통해도 정은 통했다.

현지인들의 식량 사정도 그리 풍요롭지는 않은 척박한 오지 파타고니아. 빵과 햄, 약간의 야채가 그들의 주식이다. 남미 남부의 목동 '가우초'들은 양고기, 마테차, 설탕, 세 가지만 먹고 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예상치 못한 친절이 너무 감사해서 그만 핑글, 눈물이 맺히고 코끝이 빙글빙글 돌았다. 울면서 달리면서 커피는 반이나 쏟아졌지만, 뱃속은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뜨거워졌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정이 넘치는, 부부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호르노피렌 항구 옆, 캠프장과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 뜨거운 커피와 아보카도를 듬뿍 바른 빵을 내 손에 들려주었다.
 호르노피렌 항구 옆, 캠프장과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 뜨거운 커피와 아보카도를 듬뿍 바른 빵을 내 손에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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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만 명이 사는 코이아이케는 7번 국도 중간에 위치한 도시다. 도시에서는 대자연에서처럼 자유롭게 텐트를 치기가 어렵다. 중앙광장 밴치에 앉아 순찰 도는 경찰들이 퇴근하면 야영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수레를 밀고 가던 팝콘상인이 말을 걸어왔다. 내 배낭과 음식봉지만 보고서도, 그는 가난한 여행자인 내 처지를 모두 짐작했다.

"안녕. 어디서 왔니? 나는 팝콘 파는 사람이야. 이 팝콘 수레는 중국에서 수입된 거다. 너 잘 곳 없으면 우리집으로 가자!"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조심하라고 배웠기에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서는 의심부터 한다. 게다가 이미 한 번 가방을 탈탈 털린 적이 있으므로, 몇 초 동안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나쁜 사람 같지 않아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판단하려고 배낭을 메고 따라나섰다.

팝콘 수레를 졸졸 따르는 세 마리의 개는 배고픈 거리의 개가 아니라 그가 기르는 개였다. 그의 이름은 마르코 Marco. 코이아이케의 외곽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었다. 집없는 개들을 데려다 키우듯,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갈 곳 없는 나그네에게 선의를 배풀었다. 자신의 침대까지 내어주려고 하기에 소파로 충분하다고 말렸다. 따로 난방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집은 텐트와 비교할 수 없이 포근했다. 파타고니아 야영 생활은 벽과 지붕의 고마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코이아이케의 팝콘 상인 마르코 씨와 중학생 조카 윌프레 군
 코이아이케의 팝콘 상인 마르코 씨와 중학생 조카 윌프레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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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오렌지와 자본주의

코이아이케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코치알렌에서는 바람이 많이 불어 야영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한 시간을 고민하다가 광장 옆 캠프장에 숙박비를 내고 텐트를 쳤다. 얇은 판자로 된 벽이나마 있으면 훨씬 도움이 된다. 호르노피렌에서 2000페소였던 캠프장 비용은 남쪽으로 오는 사이 6000페소로 늘었다. 흙바닥에 텐트만 치는데 만 원 돈이라니, 물가 때문이라도 어서 파타고니아를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스와 석유 공급이 어렵기 때문에 난로에 나무를 때어 데운 물로 겨우 샤워를 했다.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는 심심한 마을이기에 여행자들은 저녁이 되면 난로 옆에 모여 앉아 음식과 이야기를 나눈다. 캠프장 관리인들은 플라이 피싱으로 강에서 막 잡아 온 물고기를 굽고 와인을 땄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아 맛만 보겠다 손사래를 쳤다.

"사양하지 말고 많이 마셔요. 파타고니아 추운 밤에 텐트에서 푹 자려면 포도주가 최고야."
술이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그날 밤에는 추위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잘 자고 일어났다.

파타고니아에서 만난 사람 중에 대대로 그곳에 사는 사람은 적었다. 대부분 인구가 많은 칠레 중부나 북부 출신인데 파타고니아의 자연이 좋아서 왔다가 눌러앉은 사람이 많았다. 옆 텐트의 투숙객 프랑코 사파타 Franco Zapata씨도 중부 출신으로, 산이 좋아서 국립공원의 레인저(관광 관리자)가 되었다. 정규직이 아니어서 비수기에는 도시 코이아이케 등지에서 바텐더로 일한다. 그가 권하는 마테(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남미 역사를 잘 모르지만 아옌데 대통령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어.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고, 칠레도, 브라질도 사회주의 정권이 있었잖아. 여기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남미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 냉전 시기에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적인 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군부 쿠데타와 독재가 벌어져서 실패했지.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고. 콘도르 작전이라고 들어봤니? 남미 국가의 비밀경찰들이 협력해서 사회주의 세력을 몰아낸다는 명목으로 벌인 작전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실종됐어. 그 과정에서 미국이 칠레에게 엄청난 양의 무기를 팔아먹었다는 게 나중에야 밝혀졌지.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어. 하지만 군부가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어. 주로 어르신들이야."

"한반도는 세계대전 이후에 소련과 미국의 영향으로 반으로 쪼개졌어. 쿠데타와 군사정권의 독재도, 강대국 미국의 영향도 비슷하다. 너 아니? 칠레랑 한국은 딱 열두 시간 차이가 나. 정확히 지구의 반대편이지. 그런데 근대사가 이렇게 비슷한 게 신기하지 않니. 온 세계에 강대국이 손을 안 댄 나라는 없나봐. 대단해... 씁쓸하고..."
"군사정권은 나라를 빠르게 개발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당시에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은 전부 '공산주의자'로 지목당했지."

"왜, 정말 똑같다. 남한에서는 그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불렀어."

프랑코가 오렌지를 하나 까서 나누어 주었다.

"우와, 오렌지! 이 귀한 걸! 고마워. 여기 파타고니아 북부에서 이건 완전 특식이지. 나한테는 스페셜 푸드야."
"하하하. 이거 아마 미국 캘리포니아나 과테말라에서 왔을 거야. 우리가 미국이랑 개발 자본주의룰 비판하고 있지만 그 자본주의 덕분에 지금 여기 파타고니아에서 머나먼 과테말라의 오랜지을 먹을 수 있는 거잖아. 아이러니한 일이지."
 
마테를 마시는 프랑코 사파타 씨. 산을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다.
 마테를 마시는 프랑코 사파타 씨. 산을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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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레 비아헤로, 가난한 여행자들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식빵과 소세지와 양상추, 다른 여행자에게 받은 아몬드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요리도구는 없기에 길에서 먹는 식사는 대부분 이 정도 음식들이다. 시장이 반찬이라 식빵도 맛있고, 또 언제 슈퍼마켓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땅콩 하나도 소중한 식량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 소박한 식단이 조금은 서글프다. '인도 여행에서 바나나가 싫어지고, 파타고니아 여행에서는 식빵이 싫어졌다'고 일기장에 적는다. 하지만 역시, 바나나와 식빵은 배고픈 여행자의 중요한 양식이다.

종종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풀풀, 숨을 멈추고 음식을 비닐로 덮는다. 멀리서 힘겹게 자전거 한 대가 다가왔다. 핸들 앞 바구니에 검둥 강아지가 타고 있었다. 레게 스타일로 머리를 땋아올린 아르헨티나 여행자 브루노 소사 Bruno Sosa씨와 외톨이 강아지 시와 Ciwa였다. 외로운 길을 가다 만난 같은 처지의 여행자가 반가웠는지 브루노는 자전거를 멈추고 이야기를 건넸다. 아몬드 몇 개를 주었는데 지나치게 고마워하더니 갑자기 숲으로 달려가 나무열매를 따 주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고 브루노는 영어를 못했지만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는 '포브레 비아헤로 pobre viajero', 가난한 여행자였다.

"너 이거 알아? '아마리요 Amarillo(노란색)' 동그란 열매가 파타고니아 길가에 많아. 사실 별로 맛은 없지만 약간은 단맛이 있어. 나는 길에서 배고플 때 이걸 많이 따먹어."

파타고니아 대자연이 품은 야생 열매를 처음으로 먹었다. 코끝이 찌릿해져 왔다. 뭐든지 비싸고 추운 얼음나라에서 대가없이 뭔가를 섭취할 수 있다니, 역시 자연은 신비롭고 감사하다. 브루노의 가르침에 따라, 종종 길가의 노란 열매를 따먹었다. 사실 별로 맛은 없어서, 배부르고 음식을 구하기 쉬운 마을에 머물 때는 손이 가지 않았다. 나의 가벼운 입맛과 마음은, 처지에 따라 금방 자주도 바뀐다. 나중에 토레스델파이네 박물관에서 사진자료를 보고서야 그 노란 것이 나무열매가 아니라 버섯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강아지는 엄마, 아빠가 없어. 코이아이케에서 만나서 지금은 새로운 가족이 됐지. 아기라 그런지 덜컹대는 바구니 안에서도 잠을 참 잘 자.
우리는 자전거로 아르헨티나 엘찰텐까지 갈 거고, 거기서부터는 히치하이킹으로 우수아이아까지 갈 거야. 나는 이번이 두 번째 파타고니아 여행이야. 엘찰텐은 작은 마을이지만 온 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야. 하루는 이쪽 산, 하루는 저쪽 산으로 걸으면서 일주일 정도는 머물면 좋을 거야.
이제 내리막길이니까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갈게. 또 인연이 되면 엘찰텐에서 만나자. 부엔 비아헤! 좋은 여행하기를!"

나도 가난한 여행자지만 브루노는 유료 캠핑장도 이용하지 않고 식량도 많이 들고 다니지 않는, 좀 더 가난하고 배고프고 힘겨운, 하지만 그래서 자연과 더 가까운 여행을 하고 있었다. 길 위에서는 배낭과 짐의 무게가 참 크게 느껴지는데, 자전거로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건 무척 어려울텐데, 어떻게 강아지까지 태우고 다닐까. 강아지는 짐이 아닌 생명이고 그의 새로운 가족이니까, 무게로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마음이 따듯한 브루노와 귀여운 강아지 시와가 금세 남쪽으로 멀어져갔다.
 
파타고니아 여행자 브루노 소사와 그의 새로운 가족, 강아지 시와
 파타고니아 여행자 브루노 소사와 그의 새로운 가족, 강아지 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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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없는 국경을 넘어

칠레 7번 국도의 끝 빌라오이긴스에 도착했다. 여기서 30000페소(한화 50000원) 요금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만 남쪽으로 갈 수 있다. 비바람 때문에 배가 결항되어 며칠을 머물렀다. 호수 반대편은 국경, 칠레 검문소에서 아르헨티나 검문소까지 약 17킬로미터 산길을 걸어서 넘어야 한다. 차가 아예 다니지 않는 국경은 평생 처음이었다.

아르헨티나 검문소까지 가면 또 호수가 나온다. 배도 있지만 비싸서, 호수 반대편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17킬로미터를 더 걸었다. 총 34킬로미터의 국경 산길은 거칠고 길을 분간하기 힘든 늪지대가 많았다. 발이 푹푹 빠져 신발이 진흙으로 흠뻑 젖고 두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맸다. 그래도 호수 너머로 보이는 피츠로이 산이 너무 아름다워서 힘이 났다. 배낭만 메고도 힘든 산길을, 자전거 여행자들은 자전거를 끌고 지고 넘었다.

'둘도 없는 미봉'이라는 피츠로이 산이 있는 엘찰텐은 전에 들어본 적이 있다. 마침내 북부 파타고니아 오지를 지나 남부 파타고니아 관광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후의 파타고니아 여행은 비교적 수월했다. 엘찰텐의 피츠로이와 토레호수, 엘칼라파테의 페리토모레노 빙하, 푸에르토나탈레스의 토레스델파이네 산행, 칠레의 땅끝 푼타아레나스와 아르헨티나의 땅끝 우수아이아까지.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이라 버스도 많았고 잘 곳과 음식을 찾기도 쉬웠다.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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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등산객들의 성지 파타고니아
 세계 등산객들의 성지 파타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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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또다른 시작

11월 23일 발디비아에서 12월 23일 우수아이아까지, 파타고니아에서 꼬박 한 달. 코이아이케 팝콘아저씨네 소파에서의 하룻밤, 엘찰텐 도미토리에서 머문 사흘을 빼고는 한 달 내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가끔 야영을 할 때는 무서웠는데, 그것도 매일 하다 보니 폐가 마당에서도, 야산과 들판에서도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주민들이 '강도, 도둑이 없다' 고 자부하는 곳이고, 그 자부심에 신뢰가 가는 곳이었다.

파타고니아를 종단하며 종종, '세상의 끝이고 뭐고 돌아가고 싶다, 이미 충분히 남극만큼 춥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남부에는 남미 각지로 비행기가 다니지만 북부에는 비행기는커녕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았다. 지나고 나면 추위 정도야 금방 잊어버리고, 그 또한 추억이 된다.

푼타아레나스와 우수아이아, '세계의 끝'이라고 불리는 곳에 기어이 도착했지만, 그곳은 또다른 시작의 땅이었다. 앞바다에 커다란 섬과 설산들이 떠있어 끝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지 않았다. 영화와 미디어, 관광 홍보물 따위를 통해서 사람들은 이곳을 세계의 끝라고 인식하고 호기심을 갖지만, 사실 모든 대륙과 많은 나라들에는 동서남북 수많은 땅끝이 있다. 어쨌거나 이곳은 다른 땅끝들보다 조금 더 특별한, 아메리카 대륙이 끝나는 곳, 남극과 가장 가까운 땅이다.

몸을 날려버릴듯 바람이 세찬 얼음의 땅 이곳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각자의 일터로 출퇴근을 하고, 통장 잔고를 걱정하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친구들, 이웃들과 함께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살아가는 나날. 푼타아레나스와 우수아이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계의 끝이라고 불리는 이곳이 모든 삶의 시작일 것이다. 다시 북쪽으로, 그리고 아마도 아프리카로 이어나갈 나의 여행도 여기부터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세계의 사람들이 이 머나먼 곳까지 와서 기어이 마주하는 것은, 세계의 끝도 우리가 사는 곳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서글픈 확인인지도 모르겠다.

12월 21일 리오그란데 강변 들판에는 강풍이 불어 밤새 텐트가 찢어질 듯했다. 우수아이아 숙소는 많이 비싸고 강풍은 여전해 자그마한 공항에서 밤을 보내며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천만 원이 넘는다는 남극여행, 꽤 비싸다는 펭귄섬과 세상 끝 등대 투어는 깔끔하게 포기, 내 여행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지구본에서 보던 세계의 끝,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곳의 바다와 산과 바람을 만난 것으로 충분하다.

한 달 동안 종단한 파타고니아에 작별을 고한다. 차오, 황량한 벌판을 달리는 과나코야! 차오, 눈덮힌 산맥을 비행하는 콘도르야! 차오, 세계의 끝에 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칠레의 끝, 항구도시 푼타아레나스
 칠레의 끝, 항구도시 푼타아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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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라 불리는 우수아이아
 세계의 끝이라 불리는 우수아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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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세계여행, #남미여행, #파타고니아, #우수아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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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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