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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에 터잡고 살고 있는 이석호 작가
 공세리에 터잡고 살고 있는 이석호 작가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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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 마을에 가면 공세리 성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에는 예술가도 있다. 메마른 감성에 온기를 불어 넣어 주는 예술가가 이웃으로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받은 일일지도 모른다.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마을의 곳곳에는 마치 숨은그림처럼 몰래 숨어 있는 '조각들'이 있다. 마을 문패다. 이 마을에 사는 청주민예총 소속의 이석호(64) 작가가 제작한 것이다.

그는 6년 전 충북 청주시에서 공세리 마을로 이사 왔다. 청주에서 초중고를 나왔고, 청주대학교 조소과에 진학했지만 군 제대 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만 했다.

미처 마치지 못한 미술공부에 대한 열망 때문일까. 운이 따랐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서각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군수와 면장 등 직장 상사들에게 손재주를 인정받으면서 가욋일로 마을의 현판 제작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작가는 그렇게 25년 동안 서각 작업을 해 왔다. 요즘은 그의 재능 일부를 '공세리 마을 살리기'에 기부하고 있다.

이 작가는 "처음 서각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서각은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다. 물론 그전부터 서각은 죽 있어 왔다. 하지만 대중화되지는 않았다"라며 "지금도 서각은 공예인지, 예술인지, 기술인지 그 기준이 모호하다. 작품이 잘 팔리지 않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서각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진지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그는 요즘,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나 화병 등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물론 틈틈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한다. 지금도 현판제작을 소일거리 삼고 있다고 했다. 지지난해와 지난해에는 충북 증평군 도깨비 동화마을에서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동화마을의 도깨비와 붓은 그가 조각한 작품이다. 작가인 동시에 생활인이기도한 그는 요즘 틈틈이 마을 만들기 사업에도 시간을 쏟고 있다. 지난 12일 공세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 '꿈 공방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를 들어 보기 위해서다.

- 청주에서 이사를 오셨다고 들었다. 공세리에 온 계기가 무엇인가.
"공세리에 온지 6년이 됐다.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었다. 퇴직 후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다가 잘 안됐다. 미얀마에서 살 생각으로 살고 있던 전원주택을 세를 주게 되었다. 집은 이미 전세로 나갔고, 미얀마 사업은 무산 되서 갈 곳도 없었다. 이참에 외지에 나가 살아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다가 공세리 성당을 찾게 되었다. 공세리 성당에 매료되어 이곳에 머물게 됐다."

"차 안 마셔도 돼요, 눈치 보지 말고 쉬다 가세요"

 
이석호 작가의 공방, 그 안에는 이석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석호 작가의 공방, 그 안에는 이석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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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공세리에 왔을 때 어떻게 지냈나.
"공방 옆 2층 건물에서 카페를 했다.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어 팔았는데 그냥 저냥 먹고 살만했다. 하지만 서각 작업에는 방해가 됐다. 커피 판매에 전담하다 보니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이사 오면서 커피는 판매하지 않고 있다.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놀러 오면 차라도 한 잔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서각 작품만 구경하고 가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작품을 사지 않아도 좋으니 마음 편히 와서 구경하고 가셨으면 좋겠다. 혹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작업하는 모습을 보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웃음)"

- 청주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나.
"지금은 청주시로 편입된 청원군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청원군 상하수도 사업소에서 27년 동안 일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는 중에 취미로 서각을 했다. 그러다가 전문화가 된 경우라고 보면 된다."

- 자연스럽게 서각을 한 계기로 얘기가 넘어 간 것 같다. 서각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나에겐 스승이 없다. 서각을 혼자 독학했다. 누군가 작업을 하는 과정을 지켜 보다 보면 음각을 파는 법과 양각을 파는 방법이 쉽게 보였다. 시골 마을에 가보면 마을회관 이름이 현판으로 되어 있다. 당시 직속상관이던 면장이 서예에 능했다. 마을 회관을 새로 지으면 면장님이 현판 글씨를 직접 썼다. 면장님이 쓴 글씨를 나무에 새기는 서각 작업을 내가 했다. 이후, 청원군 신채호 사당과 손병희 선생 생가 터 전시관 현판도 제작하게 됐다. 겁 없이 시작했는데 의외로 호응이 좋았다."

"우리 세대 물러나도 마을을 이끌 수 있는 청년들이 이사오길..."

- 마을 곳곳에 있는 서각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다른 작품도 많았을 것 같은데 문패를 콕 집어 제작했는데...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하면서 문패 이야기가 나왔다. 재능기부 형태로 재료비만 받고 만들었다. 두 달여 동안 작업해서 120개 정도의 문패를 만들었다. 앞으로는 집집마다 우체통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각 집의 특색에 맞는 우체통을 만들어 보고 싶다."

- 공세리 마을로 귀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나.
"젊은 친구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내 경우에도 앞으로 10년, 75세 정도까지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 우리 세대가 일선에서 물러나더라도 마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청년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취미를 가지고 공세리 마을로 와서 즐겁게 살길 바란다. 공세리 마을 주민들이 요즘 진행하고 있는 마을 사업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와서 살 수 있는 마을, 그들의 일거리가 있는 마을, 그런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석호 작가가 제작한 문패.
 이석호 작가가 제작한 문패.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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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세리 서각작가 , #이석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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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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