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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행복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갈수록 돈의 가치가 중시되어가는 세상에서 이는 누구나 한 번쯤, 아니 수차례 생각해 보고 또 고민해 보았음직한 화두다. 이와 관련하여 '이스털린의 역설'은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일정 부분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더 늘어나도 행복은 그에 비례해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이는 실제 연구 결과로도 입증된 바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의 대니얼 캐너먼 교수가 미국인 45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소득 수준이 늘어날수록 그에 비례해 실제 삶의 만족도와 정서적 수준 또한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수입과 행복의 비례 관계는 꾸준히 증가하지는 않는다. 연소득 7만5000달러까지만 유효하였으며, 이후로는 수입이 그 이상 늘어도 행복 수준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통계가 있다.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통계청의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600만 원 미만인 경우 '만족'보다 '불만족'이 많았으며, 600만 원 이상이 되어야 비로소 '만족'이 '불만족'을 넘어선다. 소비 만족도 역시 비슷했다. 월평균 소득이 600만 원 이상은 되어야 '만족'한다는 비율이 '불만족'보다 많아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연소득으로 따져봤을 때 7200만 원가량은 되어야 삶의 만족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심리적 기준 내지 마지노선이 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큰 돈을 손에 쥐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이에 유달리 집착하는 이유 또한 그로부터 기인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현실에서는 일정 수준의 욕구를 채울 정도의 소득만 충족되면 그 이상의 돈은 쓸모가 없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삶의 양태는 지나칠 정도로 획일적이다. 학원을 다녀서라도 또래에 비해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하고, 최대한 평판이 좋은 학교에 진학, 공통으로 요구 받는 스펙, 아니 그 이상을 쌓은 뒤 어느 누구에게 언급해도 모두가 끄덕일 법한 규모의 안정된 회사에 취업하여 열심히 역량을 발휘하면서 온전한 회사 인간이 되는 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회사 인간은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회사에 대한 귀속 의식이 무척 강해 한 번 입사하면 은퇴할 때까지 충성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다 보니 회사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인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조직에 의해 부여된 권위마저 고스란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심지어 이들은 퇴사 이후에도 그 권위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변화 또한 받아들이지 못해 이른바 '꼰대'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더욱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삶의 양태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있는 사람은 비주류, 그러니까 별종으로 취급당하거나 못난 놈이 되기 일쑤다. 각급 단위의 학교 교육도 그렇거니와 사회 진출 이후에도 모두가 오로지 한 방향만을 바라보는 사회다. 유연성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며, 개성이나 창의성과는 진작부터 담 쌓아온 지 오래다. 다행히 근래 이러한 뻔한 방식의 삶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소하게 다가왔던 '욜로' '소확행' '워라밸' 등의 개념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온통 빨리빨리 만을 외치며 현재를 희생양 삼아 미래를 준비하던 노력형의 고달픈 삶의 양태에서 과감히 벗어나 조금은 느긋하게, 아울러 무엇보다 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면서 삶을 충분히 즐기고 그로부터 만족감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겐 소득이 얼마인가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적으면 적은 대로 또한 많으면 많은 대로 자신에게 각기 적합한 방식으로 삶을 즐기면서 살아간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소비 행태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이러한 소비 행태의 등장은 N포세대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감이 너무도 고달프기에 그로부터 벗어나고픈 욕구가 작은 일탈의 형태로 둔갑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최근 몇 년 동안 화두가 되었던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표현 속에 응축돼 있는 삶의 고단함으로부터 비롯된 일종의 반작용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행복을 돈의 가치와 고스란히 등치시키는 일은 매우 슬프면서도 어리석은 짓이다. 미래 때문에 현실의 삶을 지나치게 혹사시키거나 방전시키는 행위 역시 마뜩잖다. 이런 가운데 벌어들인 소득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소소한 일상 그 자체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현실의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변화 욕구는 지나치게 획일적인 우리네 삶의 양태와 행복의 가치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당신은 얼마의 돈이면 행복하시겠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행복, #소득, #소확행, #워라밸, #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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