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오버워치> 다. 2016년 출시된 블리자드 사의 FPS(1인칭 슈팅) 게임인 <오버워치> 이야기다. <오버워치>는 출시 후 지금까지 게임 인기 순위 10위권 안에 항상 위치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와 유저 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오버워치가 논란(?)에 휘말린 적도 있다.

지난 2016년 블리자드 사는 <오버워치> 하면 바로 생각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캐릭터인 '트레이서'에 성소수자라는 설정을 추가했다. 일부 유저들은 블리자드가 게임에 PC(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트레이서가 성소수자일 리 없다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 <오버워치>는 또 한 번 '같은'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블리자드는 새로운 <오버워치> 단편 소설 '바스테트'를 발표했다. 소설에는 인기 캐릭터 '솔져 76'에게 동성 연인이 존재한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마이클 추 시나리오 작가 역시 개인 SNS를 통해 솔져76은 성소수자가 맞다고 밝혔다.

솔져 76은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노병 캐릭터다. 이번에도 역시 '개연성이 없다', '과도한 PC 적용이다' 등 부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트레이서가 성 소수자라는 게 밝혀졌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1776년에서 따온 76을 이름에 붙이고 있는 것처럼, 솔져76은 보수성의 상징이다. 성소수자라는 설정은 솔져의 기존 캐릭터 붕괴이다."

한 누리꾼의 이 댓글은 많은 공감을 얻고 있었다.

우리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좁다
 
 오버워치 공식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솔져76 캐릭터의 프로필 화면 캡처.

오버워치 공식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솔져76 캐릭터의 프로필 화면 캡처. ⓒ 오버워치 공식 홈페이지

 
일부 게이머들은 트레이서와 솔져76의 사례를 두고 "게임 캐릭터의 생명력은 유저들의 상상력을 통해 생긴다"고 말한다. 달리 이야기하면, 스토리나 설정에 대한 개연성이 필요하다는(상상력에 대한 발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당연한 말이다. 스토리에 대한 적절한 '떡밥'은 게임 진행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다. 만약 새 스토리에 개연성이 사라지거나 기존 설정과 연관성 없는 요소가 많아진다면 게임은 재미 없어지고 유저들은 떨어져 나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우리 '상상력의 폭'이다. 지금 한국사회에 사는 우리는, 게임 속 캐릭터에 대해 얼마나 폭 넓게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력은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지금 옆에 있는 사람, 친구나 가족이 소주보다 맥주를 더 좋아한다고 상상할 수는 있지만 성소수자라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어떠한 사람의 '개인성'(personality)은 우리의 상상력 밖에도, 스토리의 개연성의 범위 밖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특히 성소수자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편이다. 예컨대 이전까지 방송에 나오는 '게이'는 요리를 잘 하고, 여성스러운 말투를 쓰며 화려한 스타일의 옷을 좋아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은 그동안 매스미디어가 만들었고 또 여러 번 답습해 왔다.

방송에 딱 한 가지 유형의 성소수자만 나온다면, 우리는 이를 성소수자의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 다른 유형의 성소수자들은 자연스레 지워진다. 개연성이라 불리는 고정관념이 누군가의 개인성을 삭제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다.

게임 안에서 솔져76은 여성스럽지도 화려한 옷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적을 사정없이 공격하는 영웅 캐릭터다. 이러한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성소수자라는 개연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만일 솔져76이 그 클리셰를 답습하는 캐릭터였다면, 솔직히 정말 재미없었을 것이다.

더 많은 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해야 한다
 
 블리자드 사 수석 시나리오 작가 마이클 추의 트위터 캡처.

블리자드 사 수석 시나리오 작가 마이클 추의 트위터 캡처. ⓒ 마이클 추 트위터

 
<오버워치>에는 사실 장애인, 노인, 청소년, 유색인종 등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설정을 가진 캐릭터가 많이 존재한다. 그런데 앞서 이러한 설정들에 대해서는 반감이나 불쾌감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과도한 'PC 적용'이라는 비난 역시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하필이면 성 소수자라는 설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그만큼 만연하다는 증명이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만약에 <오버워치> 캐릭터 중 누군가가 '이성애자'라고 생각을 해 보자. 스토리와 어떠한 연관도 없고, 그 어떠한 '떡밥'도 없이 특정 캐릭터에게 이성의 연인이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면 어떨까. 트레이서, 솔져76 논란과 동일한 반응이 나왔을까? 아니,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불필요한 설정 끼워넣기라는 비난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성애자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성소수자 캐릭터들이 게임이나 미디어에 쉽게 등장하지 못했던 이유일 것이다. '개연성에 대한 비판'이란 말로 포장되는 공격에 너무도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성소수자인 프레디 머큐리가 동성과 키스하는 장면을 두고 스토리 진행과 상관 없이 자극적인 장면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게임이라는 대중 매체에, 좁게는 <오버워치>라는 인기 게임에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을 환영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개인성은 개연성에 앞서기 마련이고, 그래야 한다. 더 나아가 더 많은 퀴어, 장애인, 유색인종 등 소수자성을 지닌, 그리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 캐릭터들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는 더 넓은 상상력을 지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수자들이 '끼워넣기'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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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 솔저76 트레이서 블리자드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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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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