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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투병 중 사망한 김재윤군. 어머니 허희정씨는 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병원의 의무 보고 법제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투병 중 사망한 김재윤군. 어머니 허희정씨는 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병원의 의무 보고 법제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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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윤이는 두 살이던 2014년 11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았다. 백혈병 중에서도 완치율이 90%에 이르는 타입이었다. 3년간 꾸준히 항암치료를 받아 가족들은 2018년 봄이 되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2017년 11월, 열이 있던 재윤이는 평소에 치료를 받던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체온은 38.5도 정도였지만 재발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며 주치의는 골수검사를 받자고 했다. 검사는 산소호흡기와 응급세트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일반주사실에서 이루어졌다. 골수 채취를 위해 마취약을 투여하고 10분 후 재윤이에게 청색증과 산소포화도 저하가 왔다.

기록에 따르면 기관 삽관과 심폐소생술이 시행되었고 오후 7시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로 전실된 지 6시간 만에 심정지가 왔고, 결국 다섯 살 재윤이는 사망했다. 주치의가 전해준 골수검사 결과 재윤이의 백혈병은 완치돼 있었다.

주치의 주장에 따르면 사망의 직접 원인은 흡인성 폐렴이었다. 심폐소생술 도중 위액과 혈액이 기관지를 타고 폐로 들어가 폐렴이 발생해 사망했다는 것이다. 재윤이의 갑작스런 사망 원인을 묻는 재윤이 엄마 허희정씨에게 "억울하면 절차를 밟아 피해 청구를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고 김재윤 어린이 의료사고 사망사건 기자회견 (故)김재윤 엄마 허희정 씨가 2018년 8월 13일 영남대병원 앞에서 개최된 “6살 재윤이 의료사고 사망사건 원인 규명과 사과, 수면진정제 안전사고 재발 방지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한 환자안전사고 의무보고 관련 환자안전법 개정안 통과를 간곡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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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안전사고 시 '자율' 아닌 '의무' 보고 중요한 이유

2016년 7월 27일 시행된 환자안전법에 따르면 중대한 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에 보고하게 되어 있으나 이는 '의무'가 아닌 '자율'에 따르게 되어 있다. 환자안전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료계 반대로 '의무' 조항이 삭제된 것이다.

미국, 호주, 싱가포르, 일본 등에서는 사망 등 중대한 환자안전사고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재윤이는 예방이 가능한 사고로 사망했지만 해당 대학병원에서는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보고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재윤이 사건에 대해 보고한 것은 엄마 허희정씨였다.

- 재윤이 사망 이후 병원의 입장은?
"병원에서는 심폐소생 과정에서 발생한 흡인성 폐렴이 사인이라며 사과는 하지 않았어요. 억울하면 절차를 밟아서 피해 보상을 받으라는 입장이죠. 문제를 제기해도 병원에 전화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

그래도 의료진을 원망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3년 동안 함께 재윤이 치료를 위해 노력해 준 분들이니까요. 다만 재윤이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사고로 떠났다는 것을 병원에서 인정하고 사과 한마디 해 줬으면 했죠. 아이를 잃었는데 보상이 무슨 소용이에요. 그런 걸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 못 하는 것 같아요."

- 재윤이 사건에 대해서 보건복지부에 직접 보고하셨는데.
"재윤이가 그렇게 가고, 석 달 동안 멍하니 지냈어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환자안전사고'에 대해 알게 됐고 일명 '종현이법'이라고 불리는 환자안전법에 대해 알게 됐죠. 법이 시행된 후 2년간 보고 건수는 9천여 건에 불과했고, 그나마 낙상이나 약물오류 등 비교적 경미한 사고만 보고됐어요.

재윤이 같은 사고에 노출될 수 있는 소아 백혈병 환자들이 전국에 수없이 많아요. 어린아이들에게 진정제가 투여될 때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공유만 됐어도 재윤이 같은 사건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병원에 보고했는지 알아보니 의무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2018년 6월에 환자 보호자 자격으로 재윤이 사건에 대해 보고했어요."

- 환자안전법 개정을 위해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의료진이나 병원이 미워서가 아니에요.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나 어처구니없는 부실한 대응으로 아이를 떠나보내게 만든 데 대한 사과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재윤이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았어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재윤이는 허망하게 갔지만 다른 아이들은 보호해야 하잖아요.

'이런 일이 있었으니 주의해야 한다'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보고가 의무가 아니라면 병원에서 왜 나서겠어요. 의료계에서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갈등 조장할 수도 있고, 의료비 증가 운운하며 반대하는데 꼭 필요한 법이라면 고쳐가면서 할 수 있잖아요. 우선은 시스템을 만들자는 거죠."

- 환자안전법 개정, 왜 중요한가?
"이런 일이 더 이상 없도록 하려면 환자안전사고에 대해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죠. 그리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고요. 그런다고 해서 허망하게 가는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제2, 제3의 재윤이는 없었으면 해요. 재윤이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유가족 입장에서 싸워봐야 소용도 없고,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잊어버리고 말았을 거라고요. '의료진들 사이에 그런 일들이 공유가 되었더라면' 그런 가정을 반복해서 하게 돼요. 그런 생각들 때문에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요."
  
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의무 보고 법안은 국회에 묶여 있어

더불어민주당의 남인순 의원은 2018년 2월, 자율보고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환자가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입은 경우 등 중대한 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해당 의료기관의 장에게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환자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그 신고를 게을리한 의료기관의 장 또는 그 신고를 방해한 자에 대하여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을 신설했으나,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일명, 재윤이법)
 
고 김재윤군의 어머니 허희정씨가 2018년 8월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병원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고 김재윤군의 어머니 허희정씨가 2018년 8월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병원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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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안전법 개정 활동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는지.
"얼마 전에 정신질환 환자에게 임세원 교수가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국민적인 관심과 추모 속에 '임세원법'이라는 법률이 제정된다는 얘기도 들려 와요. 안전한 진료환경 만든다는 취지도 좋고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할 때도 있어요.

의료진들도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고, 안전한 진료환경 만드는 일 너무나 중요하죠. 하지만 환자들 안전에 대한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아요. 의료사고 피해자들이나 유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닌데 국회나 정부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 환자안전법 개정안에 제동이 걸렸는데.
"의사 출신 윤일규 의원이 잘못된 수술 또는 의약품 투여를 정의하기 어렵고, 이를 확인하는데 몇 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의료인의 방어 진료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문제 제기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다시 법안소위로 보내져 재논의 한다는 사실을 기사에서 봤어요.

환자안전사고를 보고하는 것은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고받은 자료를 분석해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인데, 의료사고처럼 법원에서 판결이 나야만 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신 것 같아요. 너무 아쉽고 답답해요."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종현이 사건으로 환자안전법이 통과되었고, 이 법이 취지대로 발휘되려면 환자안전사고 보고와 학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해요. 그런 면에서 환자안전사고를 반드시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는 일은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어요.

누구나 병원에 가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환자안전을 위한 법은 단순히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가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저 또한 의료사고 유가족이 되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이런 활동으로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보호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어디예요. 우리 재윤이를 살려내라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달라는 겁니다."

태그:#환자안전법 개정안, #환자안전사고, #재윤이법, #종현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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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노동자.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으나 암 진단을 받은 후 2022년 <아프지만, 살아야겠어>, 2023년 <나의 낯선 친구들>(공저)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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