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9회)

사랑하면 그렇다. 온통 상대방의 생각으로 가득차고, 이 마음은 삶에 활력소가 되어 준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에는 이런 남자가 둘 나온다. 차수현(송혜교)의 전 남편 정우석(장승조)과 현 남자친구 김진혁(박보검). 둘 다 진심으로 수현을 사랑하며,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려 애쓴다.

그런데 결과는 다르다. 수현은 진혁을 만나면서 "참는 걸" 그만두고 처음으로 '자기 자신'으로 살기로 다짐하며 변화를 시도한다. 이런 변화는 우석의 사랑을 받으면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진혁의 사랑은 어떻게 수현을 변화시켰을까?

묵직하고 속 깊은 우석의 사랑 vs. 맑고 순수한 진혁의 사랑

우석과 진혁. 수현을 향한 사랑은 두 사람 모두 진실되다. 우석은 맞선 자리에서 "저기 제가 정우석씨 마음에 들어야 하나봐요"(5회)라고 자포자기하듯 말하는 수현에게 첫 눈에 반한다. 이런 수현을 지켜주고 싶었을 그는 자신과 결혼 후 옷 입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수현을 보며 무척 마음 아파한다. 하지만, 그 역시 부모의 뜻대로만 살아온 처지.

부모에게 정면으로 맞설 힘이 없는 그가 수현을 위해 택한 방법은 이혼이다. 일부러 '바람을 피우는 척'하면서 이혼 사유를 만들어 내고 이혼을 통해 수현을 자신의 집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즉, 수현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자신만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도운 것이다.
 
 tvN '남자친구'에서 속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정우석(장승조 분)

tvN '남자친구'에서 속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정우석(장승조 분) ⓒ tvN

  
그 후 우석은 수현을 바라보며, 수현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남모르게 돕는다. 비록 수현이 그의 도움을 알고 화를 내고, 그가 사랑을 표현할 때마다 거절을 하더라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할 바를 하면서 그녀를 지켜주려 최선을 다한다. 비록, 수현은 그의 진심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녀를 응원하는 그의 사랑은 묵직하고 속깊다.

반면, 진혁은 너무나 순수하게 수현을 사랑한다. 서로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 채, 심리적 방어가 옅어지는 휴가지서 수현과 만난 진혁은 시작부터가 우석과는 달랐다. 지금 이 순간 보이는 그 모습 그대로 만난 두 사람.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그저 해맑다. 몇 번의 우연한 만남 뒤 진혁은 수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예사롭지 않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좋아하는 감정인지 확신과 의심이 투쟁하게 내버려두면 어떨까요?"(5회)라고 말하며 감정에 머물러 있자고 한다. 그 후 둘은 '썸' 타는 사이로 발전하고, 다시 공식적인 연인관계가 된다.

사실, 반복되는 우연과 지나치게 맑은 진혁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정우석의 묵직하고 현실적인 사랑과 비교해 유치해 보이기도 하는 진혁의 사랑. 그런데 바로 이 사랑에 수현이 변한다. 수현은 공식석상에서 '썸타는 남자친구'가 있음을 선언한 후, 이렇게 말한다. "태경그룹에 팔려간 차수현도 아니고, 호텔에 목숨거는 차수현 대표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 이유없이 욕먹게 하는 차수현도 아니야."(7회)라고. 그리고 엄마(남기애)에게도 이렇게 당당히 말한다. "처음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보려고"(8회).

이는 진혁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넘어,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어보겠다는 다짐이다. 이혼이라는 파격적이고 현실적인 토대를 마련해 준 우석의 속 깊은 사랑에도 꿈쩍하지 않던 수현이 순수하기만 한 진혁의 사랑에 변화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우석에게는 없지만, 김진혁에게는 있는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솔성'의 차이다. 인간중심 상담을 창시한 칼 로저스는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도록' 변화시키는 촉진적 관계의 조건을 제시했다. 지금까지도 모든 상담이나 심리치료 장면에서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세 가지 조건은 '진솔성(혹은 일치성)' '무조건적 긍정적 수용' '공감적 이해' 다.

'진솔성'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감정과 생각, 말과 행동을 일치되게 표현하는 것, '무조건적 긍정적 수용'은 상대방이 표현하는 어떠한 어려움이나 생각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수용해주는 것을 말한다. '공감적 이해'는 상대방의 감정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느끼며 이를 이해해주는 태도를 말한다. 로저스는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스스로의 성장경향성을 발휘해 기꺼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용기를 낸다고 했다.

아마도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무조건적 긍정적 수용'과 '공감적 이해'는 어느 정도 실천할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드라마 속 우석과 진혁 모두 수현의 행동을 판단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수현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겼다. 때문에 우석은 이혼을 선택해 수현을 도와주려 했고, 진혁은 수현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행동과 말로 아픔에 동참하고 함께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솔성'에서 우석과 진혁은 명백한 차이를 보인다. 우석은 수현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4회 속초 호텔에 머물고 있는 수현에게 선물을 보내는 장면에서 그는 '오다 주웠다'라며 진심을 숨긴다. 10회 수현에게 꽃을 보내는 장면에서도 우석은 '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진실 되게 표현할까'보다 "뭐라고 써야 우리 차수현씨 마음에 훅 들어갈까"라고 고민한다.

아마도 그의 이런 태도는 집안의 기대대로만 행동해야 했던 그의 성장배경으로부터 형성됐을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보지 못한 우석에게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를 솔직히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실되지만 진솔하지 못한 우석의 사랑은 수현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한다.
 
 tvN '남자친구'서 진솔한 사랑을 보여주는 김진혁(박보검 분)

tvN '남자친구'서 진솔한 사랑을 보여주는 김진혁(박보검 분) ⓒ tvN

  
진혁의 진솔함과 개방성

반면, 진혁은 자신의 마음 속 감정을 인식하고 이에 일치하게 말과 행동을 한다. 그는 쿠바에서 수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자친구 있는지' 물어보는 쪽지를 남겼을 만큼,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고 이를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는 수현이 회사 대표임을 알고서도 마찬가지다. 진혁은 이 조건이 장애물이 될 수는 있지만, 이것이 마음 속 감정까지 부인해야 하는 요소는 아니라고 이해한다.

그는 감정의 흐름에도 마음을 열어둔다. "의심과 확신이 투쟁하게 내버려둬보자(5회)"는 그가 불확실한 감정에 개방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사였다. 또한 '썸 타는 사이로 가보자' '이젠 남자친구다'라며 진혁은 관계 자체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는다. 진혁과 수현처럼 사랑에 빠진 경우라도 관계가 어떻게 될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누가 더 사랑하는지를 재어보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느라 애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자신의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고 이를 표현해 내는 진혁은 이런 '기싸움'을 하지 않는다.

이런 진혁의 진솔함은 태경그룹과의 싸움에서 오는 난관을 극복해가는 데도 개방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9회 새해를 맞이하며 즐긴 둘 만의 데이트가 기사화되어 미안해하는 수현에게 진혁은 "대표님, 이거 다 자연스런 일이잖아요"라고 말한다. 또, 10회에는 불편해진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들이 휘몰아쳐와요. 그래서 나는 숨고 싶은가, 당황스러워 잠시 주춤하는가.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는데. 해답은 없지만 풀어낼 각오는 단단한데"라고 말한다.

우리 주변의 환경은 언제든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가 어떤 것이든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맞설 것은 맞서겠다는 각오는 가장 유연하면서도 현실적이고 힘 있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진혁의 이런 태도는 태경그룹의 움직임을 남몰래 감시하는 우석의 방식보다 수현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다.

진혁의 진솔성은 보통 사람들이 도달하기 힘든 수준이다. 때문에 그의 캐릭터는 때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드라마 속 그의 부모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이런 모습에 타당함을 더해준다. 진혁의 부모는 진혁에게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알면서도 다그쳐 묻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준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이런 태도로 그를 대했을 것이고, 믿음으로 지켜봐주는 부모 곁에서 진혁은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믿고 이를 표현하는데 익숙해졌을 것이다.
 
 tvN '남자친구'의 한 장면

tvN '남자친구'의 한 장면 ⓒ tvN

   
결국, 드라마 속 수현이 '자기 자신'으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긍정적 수용과 공감적 이해에 더불어 진솔함까지 갖춘 진혁과의 관계였다. 진혁이 제공한 이 세 가지 요소는 수현이 애써 억눌러왔던 '성장경향성'을 깨웠고, 태경그룹과 맞서 싸우며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힘을 불어 넣어 줬다.

이처럼, 한 사람의 수용적이고 공감적이며 진솔한 태도는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다. 칼 로저스는 이같은 촉진적 관계가 교육현장과 기업, 정부기관, 외교기관 등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나갈 때 세상은 보다 평화로워지며, 서로의 성장을 견인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했다.

10회, 진혁은 정원을 내어줄 수 없다며 마음을 닫은 쿠바의 정원주를 찾아간다. 그리고 정원주의 상황을 수용하고, 아픔에 공감하며, 추억이 깃든 놀이터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 놓는다. "진심이 통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은 "연금술사인가봐"라는 수현의 대사처럼 마법을 발휘하며 정원주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이는 칼 로저스가 말한 촉진적 관계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사랑마저도 계산해 표현하며 타인의 속마음을 일단 의심하고 따져보는 것이 처세로 인정되는 요즘. 드라마 속 인물들을 변화시키는 진혁의 진솔함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남자친구 송혜교 박보검 장승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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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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