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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시민분향소에서 컵라면과 과자 등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시민분향소에서 컵라면과 과자 등을 올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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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1일,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지옥보다 더한 고통의 날로 남았습니다. 이날 오전 3시 22분경 충남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스물다섯 살, 비정규직, 이름은 김용균. 하청노동자였지만 안전하게 일하고 싶던 그는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손피켓을 든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 사진 한 장 때문에, 모두가 김용균씨의 죽음을 남 일처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태안화력 문제를 취재해 온 신문웅 시민기자에겐 더욱 그랬습니다. 신 기자는 12월 11일 첫 보도 이후 50개가 넘는 글을 쓰며 이 죽음을, 거기에 가려진 춥고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을 보도했습니다.

마침내 12월 27일 국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사망 위험을 줄이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처리했습니다. 아마 신문웅 기자도 멀리 태안에서 마음 졸이며 국회 소식을 기다렸을 것 같습니다. 그와 함께 보름 넘게 50여개의 기사를 쓰고 편집한 박순옥 에디터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기사 읽기] ☞ 새벽에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태안화력 비정규직 또 사망

- 고 김용균씨가 숨진 채 발견된 지 17일이 지났습니다. 어제 국회에선 고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이 통과됐는데, 2주여 동안 관련 기사를 수없이 읽었을 편집기자로서 소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사실 김용균씨의 죽음은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사람이 죽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은 좀 달랐어요. 생전에 용균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피켓을 들고 있는, 그 사진 한 장 때문 아니었을까요. 그 사진 때문에 단순한 사망사고에 그치지 않고 너와 나의 문제로 가깝게 여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사진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에게 이 죽음이 이렇게 알려졌을까요? 사실 <오마이뉴스>도 처음에는 단신 처리를 했다가 나중에 적극적으로 보도를 했거든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이 통과돼 용균씨 어머니가 웃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에요. 어머니가 한시름 놓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았어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빨리 정규직이 됐으면 좋겠어요. 하늘나라의 용균씨도 좋아할 것 같아요."

- 이번 취재는 특히 시민기자와 상근기자의 호흡이 돋보였던 것 같아요.
"그보다는 전적으로 시민기자의 힘에서 나온 보도였어요. 이번에 오마이뉴스는 몇 건의 단독보도를 했어요. ▲ 태안화력이 4명 추락사를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 ▲ 용균씨 시신 발견 후 기계 정비 먼저 했다는 것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방문 전날 물청소했다는 것과 ▲ 어머니 김미숙씨 인터뷰 등입니다.

[단독] 김용균 사망한 태안화력, '4명 추락사' 누락했다
[단독] 서부발전, 경찰신고보다 기계 정비가 먼저였다
태안화력, 이해찬 방문에 대대적 물청소
"잡아도 소용없는 안전줄... 화가 나 짐승처럼 울었다"

사실 이건 오마이뉴스가 아니라 신문웅이라는, 오랫동안 서부발전과 태안화력발전소 문제를 보도해온 시민기자의 얼굴을 보고 제보하거나 인터뷰해 줬다고 생각해요. 신문웅 기자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으로 오랫동안 오마이뉴스에서 활동해 왔어요. 태안화력 비정규직 문제도 장기간 알려 왔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희에게 처음부터 굉장히 우호적이었어요.

초반에 타 언론사에 비해 저희가 적극 이 사안을 보도해 그분들 신뢰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도 싶고요. 또 태안화력 비정규직분들이 정말 적극적이셨어요. 그만큼 용균씨 죽음에 분노해 '이번엔 바꿔 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 통로로 오마이뉴스를 택한 것이죠."

- 신문웅 기자는 사고 당일부터 28일까지 50개 넘는 글을 썼더라고요.
"정말 헌신적으로 보도했어요. 초반에는 거의 24시간 김용균씨 빈소를 지켰고, 그래서 세월호 유족들이 새벽에 조문 온 것도 볼 수 있었죠. 정말 한밤중에도 기사 쓰고, 휴일도 없이 매달리셨어요(지금 이 순간에도 카톡이 ㅎㅎ). 밤에 애 재워놓고 나오면 기사가 와 있고 그런 식이었어요.

오마이뉴스는 서울 중심, 중앙 중심적인 매체잖아요. 그래서 지역에서 일이 터지거나 하면 제대로 보도를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건은 그렇지 않았어요. 시민기자 한 명의 힘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아팠던 김용균씨 관련 기사는 어떤 것이었나요.
"어머니 인터뷰 기사였어요. 그때가 용균씨 죽음 후에 기자회견 등 일정이 사정없이 몰아칠 때였어요. 안 그래도 힘든 부모님을 모셔다 놓고 이런저런 아픈 얘기들을 해야 하니까 인터뷰하자는 얘기를 꺼내는 것도 죄송스럽고 그랬어요. 어머니가 마지막에 "너는 갔지만 엄마는 네가 원했던 그 뜻을 찾아 살 거야"라고 하셨는데, 그 힘든 상황에서 저런 말씀을 하셨다는 게 너무 놀랍고 존경스러웠어요."

- 독자들에게 이번 일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지.
"단지 '끔찍한 죽음'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용광로에 떨어져 죽은 청년, 스크린 도어 수리하다 죽음을 맞은 구의역 김군, 컨베이어벨트에서 죽어간 용균씨. 점점 더 사람들이 반응하는 죽음의 강도가 세어지는 것 같아 힘들었어요. 그리고 위험의 외주화를 가능케 하는 비정규직 문제가 빨리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재인 대통령이 용균씨 유족을 만난다고 하는데,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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